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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악랄한 영화 고갈
yghong15 2010-10-25 오후 1:24:20 610   [0]
처음에 열 두 명이 들어간 상영관에서 영화가 끝난 후에 걸어나온 것은 다섯 명이었다. 일곱 명은 영화 상영 도중에 상영관을 떠났다. 성기 노출 및 훼손 장면이 등장하지만 그것때문은 아니다. 그런 장면은 나오기도 전에 사람들이 줄지어 상영관을 떠났다. <고갈>은 관객에게 하나부터 열까지 친절한 구석이라고는 전혀 없는, 그런 영화이기 때문이다.

배경이라고는 공장 굴뚝이 즐비하게 늘어선 황폐한 갯벌과 찌든 흔적이 역력한 공장 담벼락길, 무기력한 기운이 감도는 모텔방이 전부다. 바닷가(새만금)를 배경으로 했다지만 바다는 한 컷도 보여주지 않는 이 영화는, 관객을 사로잡을만한 서사는 당연히 없으며, 화질과 음질 모두 불편하다.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서사란 섹스와 일상과 불안이 전부이고, 화질은 8mm 필름으로 촬영한 것을 확대하여 부옇고 침침하며, 음질은 일상의 소음을 부각하여 가뜩이나 없는 대사마저 온전히 알아듣기 어렵게 만들었다. 이런 불친절한 환경 속에서 관객은 영화로부터 완전히 소외될 수밖에 없다. 놀랍게도, 영화는 관객이 받게 될 이같은 소외감을 추진력으로 사용하고 있다. 어딘가에 동화되지 못하고 툭 떨어진 채로 겪게 될 지옥이야말로 이내 극한의 공포로 치환될 것이기 때문이다.

<고갈>에서 사용하는 불안의 이미지란 시커먼 그림자를 끊임없이 토해내는 육중한 공장 굴뚝과 스산한 바닷바람에 서서히 산화되어가고 있는 앙상한 철골 구조물들이다. 사막같은 갯벌 위에 단단히 뿌리를 박고 서있는 이것들은 중간중간 그 모습을 드러내고 내내 그 비명을 질러 보는 이로 하여금 조급하고 불편하게 만든다. 그것이 산업화 과정 위에 놓인 현대인이라면 가질 수밖에 없는 어쩔 수 없는 불안감인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한 것은 시간이 갈수록, 공장 굴뚝의 출현이 잦아질수록 그 불안감은 빠르게 증폭되다가 끝내는 터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그리고 그것은 정말로 폭발하고야 만다. 지옥의 문이 열리는 것이다. 붉은 기운이 감도는 모텔방에서 느리고 지루한 클래식이 흘러나오는 가운데, 여자의 머리를 가만가만 다듬어주던 배달부는 여자의 머리를 흉포하게 밀어버리는 악마가 됐다. 여자의 몸을 살 때 외국인 노동자들이 뒤집어쓰던 가면을 배달부가 뒤집어쓴 후에 그 주둥이를 열었을 때다. 음향효과가 가장 큰 역할을 했다면 큰 역할을 했다고도 말할 수 있겠다. 중성적인 배달부의 음성이 일그러지고 상영관 전체가 불쾌한 진동으로 휩싸인다. 뾰족한 이빨이 너덜거리는 가면을 뒤집어쓰고 손에 든 가위로 제 성기를 훼손하고 여자의 머리칼을 막 손에 쥔 배달부는 그야말로 악마였고, 타는 듯이 붉은 불빛에 일그러져서 거의 주문을 웅얼거리듯이 들리는 클래식 음악이 지배하는 모텔방은 그야말로 지옥이었다. 관객은 꼭 제 차례를 기다리는 죄수처럼 처참한 마음으로 지옥을 목격하게 되는 것이다.

이후 처음에 등장했던 갯벌 시퀀스의 반복. 다만 남자와 여자 사이에 아이(생사는 판가름할 길이 없다)가 하나 더 끼어있을 뿐이다. 어떻게 보면 <고갈>은 완전대칭의 영화다. 전반부와 후반부의 시퀀스들이 대칭으로 배열되어있는 것 이외에도, 초반에 소시지를 먹던 장면과 모텔방에서 매춘하는 장면의 연이은 배치, 먹던 짬뽕 국물에 오줌을 갈기는 장면, 구토하듯 태아를 낳는 장면 등으로 미루어보았을 때 입과 성기를 동일시하려는 시도가 꽤 자주 엿보인다. 이처럼 많은 것을 의도적으로 대칭시킴으로써 처음과 끝이 실은 다른 것이 아님을, 초반의 지루한 일상과 불안의 반복조차 지옥으로 보려는 시도는 아니었는지. 그리고 배설하듯 낳은 아이에게 황폐한 갯벌을 물려주게 된다. 모든 희망이 배제되는 순간이다.

그게 진짜 무서운거다.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누구나 막막함을 느낀다. 그러나 그 끝은 극히 일부만이 맛보게 된다. 대부분은 모르고 넘어갈 지옥을 끝내 보여준다는 것. 거기서 벗어날 길은 아무 곳에도 없다는 것. 그래서 이 영화는 세상에서 가장 악랄한 영화다. 영화를 보고 있으면 조금씩 탈진해가는 기이한 현상을 경험하게 된다. 그래서 이 영화의 제목이 <고갈>인지도 모르겠다. 어두운 상영관에서 앞도 흐릿하고 칙칙하게 보일 때의 소외감과 불안감을 한 번씩 느껴보는 것은 좋다. 하지만 그 끝을 반드시 경험해야만 하는가에 대해서는 조금 회의적이다. 그래서 나는 이 영화를 모두가 보았으면 좋겠지만, 또 아무도 보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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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갈(2008, Exhausted)
제작사 : 곡사 / 배급사 : 곡사
공식홈페이지 : http://blog.naver.com/goksa_fil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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