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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되는 증오와 보복의 단절을 위해... 그을린 사랑
ldk209 2011-07-26 오후 4:09:40 742   [1]

 

반복되는 증오와 보복의 단절을 위해... ★★★★☆

 

※ 영화의 결론 및 중요한 설정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는 Radiohead의 <You And Whose Army?>를 배경으로 수용소로 보이는 곳에서 발뒤꿈치에 세 개의 점 문신을 한 소년이 머리를 깎이는 모습으로 시작한다. 매서운 눈빛 또는 텅 빈 눈빛으로 카메라를 응시하는 소년을 뒤로 한 채 영화는 현실의 캐나다로 넘어간다. 어느 날 갑자기 의식을 잃고 쓰러진 어머니 나왈 마르완(루브나 아자발)은 쌍둥이 남매 잔느와 시몽에게 이상한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난다. 죽은 줄 알고 있었던 아버지와 있는 줄도 몰랐던 형을 찾으라는 유언. 이 유언을 지켜야만 장례를 허락하겠다는 전언. ‘목구멍 속의 칼 같은 유년시절’을 보낸 시몽은 유언 집행을 거부하지만 잔느는 아버지를 찾기 위해 중동에 있는 어머니의 고향으로 떠난다. 그곳에서 알게 된 어머니의 충격적인 과거. 기독교도와 이슬람교도의 반복되는 보복이라는 얼룩진 역사의 한가운데 있던 어머니의 과거. 그러나 이 남매에게 기다리고 있는 더욱 끔찍한 진실.

 

<그을린 사랑>의 배경은 70~80년대 중동의 한 지역이다. 영화에서 사용되는 지명은 가상의 공간이지만 내용이 의미하는 바는 정확히 레바논을 지칭한다고 할 수 있다. 기독교와 이슬람의 반목. 이스라엘의 레바논 남부지역 장악과 폭탄테러로 인한 레바논 기독교 민병대 팔랑헤 지도자의 사망 및 이들에 의한 팔레스타인 난민 학살 등 현실의 레바논 역사는 <그을린 사랑>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그런데 참 묘한 느낌이다. <그을린 사랑>은 2010년 부산국제영화제 최고의 화제작이었으며, 2011년 아카데미 최우수 외국어 영화상 후보에 올랐던 작품이다. 당시 아카데미 수상작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선 폭력적 복수를 끊어내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졌던 덴마크의 <인 어 베러 월드>. 사실상 주제가 겹치는 두 영화가 비슷한 시기에 제작되어 후보로 올랐다는 건 지금 이 세계가 날선 폭력 위에 아슬아슬하게 기대어 서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느낌을 준다. 그래서인지 이 두 영화는 최근 발생한 노르웨이 테러와 같은 끔찍한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보이기도 한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끔찍한 사건은 발생했다.

 

어머니 나왈은 자식들에게 진실을 알려주기 위해 기나긴 여정을 유언으로 남긴 것이다. 우리는 모두 진실을 알고 싶다고 말한다. 정말로 그러한가? 진실은 대게 끔찍한 고통을 수반한다. 학교에서 배우는 우리의 역사책에 기록되어 있지 않은 일제시대 조선민중에 의한 화교 학살 사건은 어떠한가? 일본의 간도침략에 대해 조선민중이 환호했다는 사실은 또 어떠한가? 아마 누군가에게는 박정희가 천황에게 충성 맹세를 한 일본군 출신이었으며, 해방 후에는 남로당 소속이었다는 사실이 부인하고 싶은 끔찍한 진실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를 포함해 많은 사람들이 진실을 의도적으로 회피하거나 교묘한 논리로 부인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그러나 그러한 진실을 마주 대하는 고통의 통과나 극복 없이는 한 인간이나 사회, 인류가 성장할 수 없다는 것,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것 또한 명백한 사실이다. 그래서 어머니의 유언에 대한 두 남매의 상반된 반응은 진실을 목도하는 것에 반응하는 인격체로서의 대표적인 두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진실을 알기 위해 다가서는 것과 회피하는 것.

 

남매가 알게 되는 어머니의 과거는 하나 하나가 충격적이다. 난민촌의 남자와 사랑에 빠져 임신하게 된 어머니. 그 아이를 낳자마자 어디론가 보내야 했던 어머니의 아픔. 아들을 찾기 위해 모든 사람이 빠져 나오던 남부지방으로 홀로 거슬러 가던 나왈은 기독교 민병대의 학살과 아들이 있던 수용소가 불에 탄 것을 목격하곤 자청해 기독교 민병대 지도자를 암살, 감옥에 갇히게 된다. 정치범을 수용하는 감옥에서 15년형을 살게 된 나왈은 고문관의 강간으로 아이를 임신했고 그 아이들이 바로 쌍둥이 남매 시몽과 잔느였던 것이다. 여기까지만 해도 두 남매에겐 감당하기 힘들 정도의 고통스런 진실인데, 이보다 더욱 끔찍한 진실이 이들을 기다리고 있다.

 

마지막 진실이 드러나는 순간, 그 진실을 알려줄 이는 시몽의 눈을 가리며 “눈을 가리는 건 당신을 보호하기 위해서야”라고 말한다. 이는 진실로부터의 격리, 진실을 알기 보단 차라리 무지를 택하는 것이 낫다는 걸 의미한다. 눈을 가리고 귀를 막아라. 과연 그 상태에서 그대로 진실을 모른 채 막을 내리는 게 나았을까? 그랬다면 나왈이 원했던 것, “침묵이 깨어지는 것”, 증오와 보복의 반복이 단절될 수 있었을까? <인 어 베러 월드>에서 폭력의 악순환이 단절되는 것은 폭탄을 설치했던 엘리아스가 스스로 폭탄의 피해자가 되었을 때, 그러니깐 가해자가 피해자로 전환되는 순간, 또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합일되는 순간에 비로소 그 가능성이 현실성으로 전환되었던 것처럼, <그을린 사랑>에서도 1+1이 2가 아니라 1임을 알게 되는 순간이야말로 가장 충격적인 순간임과 동시에 비로소 평화가 찾아올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리게 되는 순간인 셈이다.

 

물론 그것만으로 증오와 복수의 반복이 중단되고 평화가 찾아오지는 않는다. 거기엔 진실을 알게 된 것 그리고 그로 인해 받은 고통 이상의 결단이 필요하다. 어쩌면 이 결단이야말로 가장 어렵고 힘든 순간일지도 모른다. 영화는 이 지점에서 열린 결론으로 나아가지 않고 나왈의 편지와 목소리를 빌어, “함께하는 것이 최고의 미덕”이라는 관용을 제시한다. 비록 그것이 개인적인 결단을 필요로 하는 것일지라도 이 얼마나 우아하며 품위 있는 마지막이란 말인가.

 

※ 매우 정치적인 메시지임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결론처럼 <그을린 사랑>의 화면은 시종일관 우아함을 잃지 않는다.

 

※ 영화는 큰 글씨로 쓰인 중간 제목들을 삽입시켜 원작인 연극에서의 막의 느낌을 주며, 관객이 길을 잃지 않게 하려는 일종의 이정표로서의 역할을 부여한다.

 

※ 처음 이 영화의 대략적인 스토리를 듣고는 <그르바비차>를 떠올렸다. 세르비아계가 저지른 조직적이고 집단적인 강간의 흔적인 딸의 존재에 대해 애증을 가지고 있는 어머니. <그르바비차>의 가장 뛰어난 미덕이라면 쉽게 감동과 충격을 줄 수 있는 플래시백(과거 회상 장면)을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 점에서만 보면 <그을린 사랑>은 플래시백을 너무 편하게, 과도하게 사용하고 있다.

 

※ 영화 초반 이론수학을 전공하는 잔느는 교수에게 어머니의 유언에 대한 조언을 구한다. 그 교수는 “영혼이 평화롭지 못하면 이론수학은 불가능하다”는 얘기를 해준다. 고통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진실을 추구하는 것은 바로 영혼이 평화로워지기를 원하기 때문 아닐까.

 

※ 노르웨이의 극우 테러 사건에 대해 노르웨이 총리는 “더 강한 민주주의와 더 큰 관용의 정신으로 보복하겠다”라는 입장을 발표했다. 비록 정치공학적으로는 다른 평가를 내릴 수 있어도 <그을린 사랑>의 정신과 일맥상통한다고 느껴지는 대단히 우아하면서도 품위 있는 대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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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을린 사랑(2010, Incend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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