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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그 굳게 닫힌 문을 열어라! 말죽거리 잔혹사
titter 2004-01-29 오후 11:27:50 917   [1]
복학생이자 우리학교 ‘짱’인 언니가 학교생활을 무사히 마칠 수 있도록 옆에서 친한 친구로 도와주라고 내게 직접 부탁을 한 사람은 바로 담임선생님이셨다. “나쁜 친구들하고 너무 가까이 지내니까 그렇지.” 내 성적이 떨어지자마자 나를 불러 야단을 치며 이 말을 했던 사람도 바로 담임선생님이셨다. 그럼 난 이 언니와 친한 친구로 지내야 했던 것일까. 아니면 나쁜 친구라며 먼 거리를 유지해야 했던 것일까. 나쁜 친구들에 ‘짱’이자 그 당시 내 짝이었던 언니가 포함되어 있는 것은 정황상 틀림없는 사실이었는데 말이다. 성적이 20등이나 떨어져 엄마를 학교에 모셔오기까지 해야 했던 현수의 성적은 무슨 이유로 그렇게 떨어진 것이었을까. 나쁜 친구들과 가까이 지냈기 때문에?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어서?

수학시간에 칠판에 불려나가 막힘없이 문제를 풀어내고, 쉬는 시간에는 교과서를 보고, 청소시간에도 대강대강 청소를 하거나 혹은 빈둥빈둥 노는 것이 아니라 착실히 대걸레질을 하고 싸움은 해본 적이 없던 현수는 우식과 친해지면서 조금씩 변해간다. 모범생이었던 현수가 점점 그 궤도를 이탈해가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현수의 변화가 결코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점점 더 당당해지는 멋진 변화라고 칭찬을 해주고 싶어졌으니까.

전학 온 첫 날, 학교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현수는 교복칼라를 요구하는 선배에게 자신의 교복칼라를 내어준다. 선배의 말에 복종을 해야 하는 것이 아무리 당연했다 할지라도 현수는 소심했었다. 조금 더 심하게는 비겁했었다. 모범생하면 떠오르는 이미지 중 하나인 소심함을 현수 역시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현수를 단순한 모범생이라고 생각하면 착각이다. 우식과 친해지기 이전부터 현수는 당당함을 지니고 있었다. 다만 그것을 발휘하는 방법을 몰랐거나 자신 안의 당당함을 너무 약하게 생각했던 것이 문제였지만 말이다. 복학생의 협박을 받고 또 그 복학생의 악명에 대한 이야기를 짝으로부터 듣고서도 현수는 비겁하게 피하거나 굴하지 않았다. 짝의 가방을 뒤지는 복학생에게 과감히 그의 잘못을 지적한다. “지금 너 뭐하는 거야?” 라고. 여기서 현수의 당당함을 찾아볼 수 있는 것이다.

농구시합을 함께 하고 또 그 둘의 환상적인 호흡으로 인해 시합의 승리까지 거머쥐게 되면서 우식과 현수는 친구가 된다. 버스 안에서 선배들에게 희롱을 당하는 자신이 첫눈에 반한 은주를 발견한 현수는 선배들에게 찾아가서 자신의 당당함을 다시 한 번 드러낸다. “저 형, 죄송한데 가방 돌려줘요.” 후배의 말을 들어줄리 없는 선배들이고 여기에 싸움 잘하는 우식이 가세하며 은주를 위해 그 둘은 선배를 두들겨 팬 후배들이 되어버렸다. 사건의 다음 날 현수와 우식은 예상과 같이 3학년교실에 불려가고 일방적으로 맞게 된다. 우식은 그 일방적인 폭행을 참지 못하고 쪽팔리다는 이유로 3학년 한 교실의 학생들을 상대로 싸움을 벌인다. 그리고 그 싸움을 구석에서 지켜보고 있던 현수도 주먹을 휘두르게 된다. 싸움을 해본 적이 없다던 현수의 첫 싸움이었다. 쪽팔리는 것, 억울하게 당하는 것을 참기만 하는 것이 싫었던 우식에게서 조금씩 배워가고 있는 것이 아니었을까. 폭력은 어떤 수단으로도 정당화 될 수 없다고? 물론 그렇지만 폭력의 시대였으니까. 당연히 안 싸우고 이기는 것이 진짜 싸움을 잘하는 것이겠지만 그 방법을 터득하기에 그들은 아직은 어렸고 혈기가 왕성했으니까.

은주와 친해질 수 있는 기회 혹은 은주에게 첫 눈에 반했다고 고백할 수 있는 기회를 먼저 잡은 것은 현수였다. 우식은 이미 은주에게 퇴짜를 맞은 다음이었고 비 오는 날의 한 우산 속의 동행은 너무도 멋진 기회였다. 하지만 현수는 라디오 엽서를 통해 고백할 생각만 하느라 자신의 마음을 제대로 전하지 못한다. 그리고 그 사이 우식은 다시 은주에게 멋진 고백을 하고 은주의 사랑을 얻고 만다. 현수가 아주 어렵게 이루려고 했던 것을 우식은 너무 쉽게 이루고 만 것이었다. 여기서 현수는 다시 한 번 배웠을 것 같다. 자신의 당당함을 제대로 쓸 수 있는 방법을. 첫사랑을 친구의 여자로 봐야만 하는 현수의 아픔은 현수를 조용히 조금씩 성장시키고 있었다.

우식과 은주가 헤어지는 과정에서 그 이별의 불똥은 현수와 우식을 갈라놓게 된다. 현수와 은주가 함께 라디오를 듣는 광경을 보았던 우식은 어쩜 현수에게 열등감을 느끼고 있을지도 몰랐다. 그래서 더욱 현수 앞에서 은주를 화제로 거들먹거리고 싶었는지도 몰랐다. 그런 우식을 현수는 받아드릴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그 둘은 무차별 난타전의 싸움으로 그동안의 관계를 정리하고 만다. 우식과 싸움을 했던 현수는 그로인해 체벌을 받는 과정에서 무자비하게 자신의 뺨을 때리는 선생님의 손을 잡고 만다. 우식과 싸움을 한 것만으로 이미 자신의 마음은 벌을 받고 있는데 단지 싸움을 했다는 사실만으로 이런 무자비한 대우를 받아야 함을 참을 수 없었던 것이었을까. 우식과의 사이는 멀어졌지만 싸움은 함부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배우며 현수는 또 한 번 성장을 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여러 번의 성장을 통해 이번에 현수는 은주의 사랑을 얻는다. 그러나 그 사랑은 너무 짧았다. 어쩌면 우정을 잃어가면서 얻어야했던 사랑이었기 때문에 그럴지도 몰랐다. 이미 다리에는 칼로 상처를 입었고 분명 1대 1의 싸움이라고 했지만 승기를 잡았던 우식의 뒤를 다른 누군가가 발로 까면서 우식은 선도부장, 종혁과의 싸움에서 지고 만다. 패자로 쓰러진 우식을 부축해준 사람은 바로 현수였다. 그러나 우식은 교실로 돌아오자마자 가방을 싸서 나가버린다. 우식을 부르는 현수의 외침에 가볍게 손짓으로만 인사를 대신하고. 그리고 우식은 은주와 가출을 한다. 현수는 비를 맞고 은주 방 창문 밑에 서서 은주 이름을 부르며 후회했을지도 모른다. 우식을 그렇게 보내버렸던 것을. 좀 더 붙잡지 못했던 것을. 아니면 우식의 여자가 되기 전에 은주에게 사랑고백을 하지 못했던 것을. 은주의 이름을 부르며 우식도 함께 생각했을 현수, 그는 그렇게 또 한 번의 아픔으로 또 한 번 성장을 하고 있었다.

아무런 희망이 없었던 우정도 잃고 사랑도 잃었던 그 시간 속에서 현수는 머무르지 않는다. 희망을, 자신이 가야할 길을 찾아낸 것이다. 자신의 당당함을 드러내 보이는 길. 무엇이 옳은 것인지를 보여줄 수 있는 길. 그는 동급생에게 명령을 하고 잘못된 것을 잘못되었다고 말했다는 이유로 동급생을 무자비하게 폭행하는 선도부장, 종혁을 타도하기로 한 것이었다. 그렇게 하기 위해 몸을 단련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결국 종혁을 타도하고 그의 무리들도 함께 타도하고 만다. 그리고 당당하게 옥상에서 걸어 내려온다. 그런 현수를 잡으라는 선생님들의 명령에 과감히 유리창을 깨고 그는 당당히 외친다. “대한민국 학교 X까라 그래.” 이 때의 짜릿한 통쾌함은 잊혀지지가 않는다.

그래, 현수는 비록 20등이나 성적이 떨어졌지만 그를 그렇게 만든 것은 나쁜 친구들이 아니라 자신의 정의를 찾아가는 과정이었고 그것은 바른 모습을 찾아가는 과정이었다. 선배의 말에는 무조건 복종을, 동급생이라도 권력을 가지고 있는 선도부의 말이라면 복종을, 선생님에게도 옳고 그르고를 막론하고 무자비한 폭력이라 할지라도 무조건 복종을, 별 세 개 장군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선생님이 선생님을 때리는 것을, 잘못된 유신을 옳다고 가르치는 것을, 성적지상주의에 의해 정부를 속여가면서 까지 심화반을 만들어내는 것을, 학교의 명예와 성적을 위해 성적보다 먼저 인간이 되라고 거짓말을 하는 선생님을, 이 모든 일이 일어나고 있는 학교를 거부하는 옳은 것을 추구할줄 알고 그 옳은 것을 실천할줄 아는 바른 사람으로의 성장해가는 과정이었다. 바른 사람을 어떻게 성적 20등에 비교할 수 있겠는가.

물론 마지막에 현수는 다시 대학을 가기 위해 검정고시 학원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그 곳은 이미 부조리가 판치는 학교가 아니었고 자신의 정의를 헤칠 수 있는 공간이 아니었다. 잉여인간이 되지 않기 위해 그가 택한 선택을 현실적이라 비난할 수도 있지만 자신의 정의를 더 당당하게 펼치기 위해서 현수가 택한 선택은 아니었을까.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가능한 것 아니냐고 반문을 한다면 현실은 그렇지 않으니까 라는 대답을 할 수 밖에 없지만.

물론 나는 여자 중학교와 여자 고등학교를 나왔고 또 고등학교는 소위 명문이라 불리는 고등학교를 나왔기에 그렇게 무자비한 폭력은 경험해 본 적이 없다. 그러나 왜 나는 그 영화에 그토록 공감해야 했었을까. 왜 그토록 현수의 당당함에 열광을 해야 했었을까. 선생님에게 살이 짓무르도록 맞아와 엄마 몰래 밤에 찜질을 해달라고 부탁을 하던 남동생 때문에? 학교가 너무 답답하다며 가출을 했던 남동생 때문에? 분명 이것은 남학교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폭력의 수위는 낮았다 할지라도 인간으로 존중받고 있지 않다는 느낌이 팍팍 드는 매질은 여전히 존재했었고 심화반 이동 수업역시 여전히 존재했었다. 1978년의 현수나 1998년의 나나 그 차이는 20년의 강산이 두 번 바뀐 시간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했다. 너무 더딘 학교 안의 변화. 학교도 담을 열어야 할 필요가 있다. 학생을 보호한다는 이유로 더욱 나은 사회생활을 할 수 있는 학생을 만들겠다는 이유로 그 담을 굳게 세워두고 교문을 굳게 걸어 잠글 것이 아니라 학생들의 마음을 향해, 학생을 보호하는 것이 아닌 학생과 동등한 입장에서 그들에게 그 문을 열어주어야 할 때이다. 학교의 굳게 닫힌 문이 열릴 때 더 이상 학교는 감옥이 아니고 학교에서의 일들이 더이상 잔혹사가 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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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죽거리 잔혹사(2003)
제작사 : (주)싸이더스 / 배급사 : CJ 엔터테인먼트
공식홈페이지 : http://www.sidus.net/movie/maljuk/maljukschool/main/index.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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