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면1. 조지 오웰은 소설 <1984>를 발표하며 사람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는 존재인 '빅브라더'를 제시했다. 2009년 한국에서 여배우의 휴대폰이 복제돼 사생활이 노출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 장면2. 지난 2004년 21명을 무참히 죽인 연쇄 살인범 유영철이 체포되며 세상이 발칵 뒤집혔다. 2008년초에는 유영철 사건을 모티브로 한 영화 <추격자>가 만들어졌다. 전국 510만 관객이 <추격자>를 보며 다시 한번 이를 갈았다.
영화에서나 봄직한 사건, 뉴스에서나 접할 수 있는 사건이 스크린과 현실에서 동시에 발생하고 있다. 영화를 보며 살인을 연구했다는 범인이 있는가 하면, 강력 사건을 접하며 시나리오를 썼다는 감독도 있다. 우리는 요즘 스크린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해진 세상에 살고 있다.
▲ 영화 같은 현실
경기 서남부 연쇄살인 용의자 강호순이 연일 신문과 TV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강호순의 과거 행적이 낱낱이 파헤쳐지고 얼굴 공개가 논란이 되는 속에서 강호순의 범행 수법이 일부 영화 속 장면과 비슷하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영화 <살인의 추억><추격자><검은집> 등이 주인공이다. 강호순의 범행 지역은 미해결 사건으로 남겨진 화성 연쇄살인 사건을 다룬 <살인의 추억>의 배경인 경기 서남부 지역과 일치한다.
<살인의 추억> 속 용의자(박해일)이 곱상한 외모를 지녔다는 점도 강호순이 호감 가는 외모로 여성들을 유혹했다는 점과 일맥상통한다. 이번 사건을 수사한 경찰청 송강호 수사국장의 이름이 <살인의 추억>의 주연 배우 송강호와 같다는 것도 이채롭다.
<추격자>와는 범행 수법이 비슷하다. <추격자> 속 범인(하정우 분)은 출장안마사로 일하는 여성을 범행 대상으로 삼았다. 강호순이 둘 만의 시간을 만들기 쉬운 노래방 도우미에게 접근한 것과 비슷하다. 범행 후 사체를 암매장한 것도 소름 돋을 정도로 대동소이하다.
배우 황정민 주연의 <검은집>은 사이코패스의 이야기를 다뤘다. 이중적이고 냉혈한에 가까운 언행을 보이며 사이코패스의 전형으로 분류되는 강호순은 '사이코패스'를 인기 검색 순위에 올리며 <검은집>이 회자되게 만들었다.
지난 3일 관세청이 발표한 마약 거래 실태 보고에는 영화 <마린보이>(감독 윤종석ㆍ제작 리얼라이즈픽쳐스) 속 설정과 비슷한 사건이 숨어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검거된 마약사범은 마약을 비닐에 밀봉해 사람의 몸 속에 숨겨 밀반입했다. 회사원과 학생 등 일반인을 마약운반책으로 동원하기도 했다.
<마린보이>가 마약과 상관없는 전직 수영선수의 몸 속에 마약을 숨겨 바다를 건너 마약을 운반하게 한 점과 유사하다. <마린보이>의 관계자는 "영화 <마린보이>는 상상을 근거해 만든 작품이다. 실제로도 비슷한 범죄 수법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놀랐다"고 말했다.
▲ 현실 같은 영화
19일 개봉을 앞둔 영화 <핸드폰>(감독 김한민ㆍ제작 씨네토리, 한컴). 휴대폰을 잃어버린 한 남자가 이 휴대폰을 습득한 또 다른 남자에게 협박을 당한다는 내용을 담은 스릴러다. 공교롭게도 영화의 개봉을 앞두고 배우 전지현의 휴대폰 복제 사건이 불거지며 <핸드폰>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게다가 극중 휴대폰을 잃어버리는 남자 주인공의 직업은 연예 매니지먼트 대표다. 그는 휴대폰에 저장된 소속 배우의 은밀한 동영상 때문에 난처한 처지에 놓인다. 10년 넘게 전지현과 일해 온 소속사 대표가 휴대폰 감시를 지시한 용의자로 지목된 현실과 묘하게 겹쳐진다.
<핸드폰>의 관계자는 "전지현의 사건을 영화 홍보에 이용할 생각은 절대 없다. <핸드폰>은 창작된 픽션일 뿐이다"고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오는 3월 개봉되는 배우 문성근 주연 영화 <실종>(감독 김성홍ㆍ제작 활동사진) 역시 강호순 연쇄살인사건과 내용이 흡사하다는 입소문이 돌고 있다. <실종>은 노모를 모시고 사는 효자로 알려진 남자가 연쇄살인마였다는 설정에서 시작한다.
이웃들에게 "성실한 사람이다" "호인이다"고 알려진 강호순이 인면수심의 모습을 보인 것과 유사하다. 성적 욕망을 자제하지 못하고 여성에게 접근 살해했다는 것도 강호순 사건과 <실종>의 공통점이다.
강호순 사건이 전사회적인 관심을 받으면서 이를 홍보에 이용하는 일도 발생했다. 지난달 29일 개봉된 영화 <트랩>의 홍보사는 '군포 여대생 실종 사건과 유사한 스토리 라인 화제'라는 홍보 문구를 사용해 빈축을 샀다.
한 영화 관계자는 "홍보 수단의 부적절성을 떠나 <트랩>을 알리는 데 성공한 것은 맞다. 하지만 사회적 분위기와 유가족의 마음은 전혀 헤아리지 않은 선택이었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