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이 된 장자연 씨 사건과 흡사한 내용을 담고 있는 서늘한 소설 한 편을 읽었다. 심심풀이로 해 본 거짓된 말이 누군가에게는 날아가는 칼이 될수도 있다는 게 절절이 느껴진다. 이 책 내용을 간단히 말하자면 해나는 남자들이 만들어낸 성과 관련한 헛소문과 그로 인해 파생된 사건들로 자살에 이르렀다. 장자연처럼 주인공 해나도 자살하기 전에 자살을 결심하게 만든 13명의 리스트를 만들어서 그들이 벌인 짓을 테이프에 녹음을 해서 13명에게 테이프를 보낸다. 어쩜 이 소설은 얼마 전 루머때문에 세상을 떠난 최진실 씨 이야기와 더 닮아 있다. 주인공 해나의 자살 이유도 결국 루머니까. 처음에 누군가가 재미삼아 퍼뜨린 루머는 점점 눈덩이처럼 불어나 해나의 이미지로 고착된다. 미국 소설인데 어떻게 우리나라 지금 현실과 똑 맞아 떨어지는지... 어쩌면 사람 사는 일이란 어디나 비슷비슷한 건지. 장자연 사건을 보더라도 여전히 남자 위주의 사회에서 일부 여자들은 성적인 사건의 희생자가 되고 있다.
'성'과 관련한 심각한 피해자는 역시 여자
장자연 사건에서도 여전히 권력을 가진 남성 가해자들은 법망의 밖에서 버티고 있는 반면 여배우들은 성행위 장면을 찍은 비디오로 협박을 받고 이미지에 막대한 손상을 입는다.
<루머의 루머의 루머>에서도 해나는 '헤픈 여자'라는 이미지 때문에 고통을 겪는다.
더 나아가 해나의 방은 변태 녀석의 관음증을 충족하는 창구가 되고, 해나는 성추행을 당해도 싼 그런 여자가 되어있었다. 사건들은 점점 걷잡을 수 없게 커진다. 해나를 덧씌운 이미지는 '해나'의 진정한 모습을 무너뜨리기에 충분했다.
장자연씨 사건도 ‘헤픈 여자’ 또는 지저분한 사생활쯤 이라 생각하는사람들도 적잖이 있을것이다.
이 책은 자살한 해나와 그녀를 사랑했지만 감히 다가가지 못한 남자의 시선으로 쓰여져 있다.
내 주위 몇몇 남자들은 이 책에 완전히 몰입하지는 못하는 것 같다. 한때 선망한 첫사랑(예쁘고 소문 나쁜 동네 누나)을 향한 남자 주인공 클레이의 감정에는 공감하지만 '헤픈 여자'란 낙인, 주위의 평판에 괴로워하는 해나의 속마음에는 별로 공감하지 못한다.
말이든, 행동이든, 여자에 대한 성적인 공격에는 그만큼 무감각하다는 반증 아닐까?
그렇지만 남자들이 꼭 이 책을 읽기를 희망한다.
성적인 노리개, 루머때문에 한 사람이, 특히 섬세한 여자가 얼마나 고통을 겪는지 볼 수 있을 것이다.
작가 제이 아셰르는 말한다.
어떤 일은 그 자체로는 심각하지 않더라도, 그런 일들이 계속해서 일어나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기도 한다. 장자연씨도 이와 비슷하리라 생각된다.
마치 자연에서 일어나는 나비 효과처럼 사람 사이에서도 아주 작은 일이 믿을 수 없이 엄청난 사건으로 크게 번질 수 있다. 이미 감정의 균형을 잃은 사람이라면 루머 하나만으로도 자신을 놓아버릴수 있다는 것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