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 영화산업의 자본과 기술력이 집약된 '블록버스터'와 한국이라는 지역의 특수성을 강조한 '한국형', '한국형 블록버스터'는 단어의 조합부터가 모순적이다.
'한국형 블록버스터'에 대한 반응도 엇갈린다.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의지와 '그래봐야 할리우드엔 안된다'는 자조가 공존한다. 그러나 그 명맥은 이어지고 있다. 가장 처음 '한국형 블록버스터'라는 수식어가 쓰인 1999년 강제규 감독의 영화 '쉬리' 이후 올해로 10년.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역사도 10년을 맞았다.
그 사이 한국영화는 외형적 성장을 거듭했다. 1999년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던 '쉬리'의 제작비는 24억원. 현재로선 한국영화 평균 제작비를 약간 웃도는 정도지만 당시로선 상상도 못할 거액이었다. 그러나 무려 600만 관객을 모은 '쉬리'의 성공 이후 제작비는 그 후로 급등세를 이어갔다. 2003년 '실미도'와 '태극기 휘날리며'로 100억원을 돌파했고, 2005년 '태풍'은 200억원에 이르렀다.
그간 제작비가 늘어난 만큼 한국 영화 시장도 커졌다. '실미도'(감독 강우석), '태극기 휘날리며'(감독 강제규)에 이어 '왕의 남자'(감독 이준익)와 '괴물'(감독 봉준호)까지, 꿈의 100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들이 속속 등장했고 관객 수며 극장 수도 급등했다. 세계가 한국 영화의 질적·양적 성장을 주목했다.
그러나 '명'이 뚜렷한 만큼 '암'도 분명했다. 무엇보다 할리우드에는 어림도 없는 제작비로 유사(類似) 할리우드 영화를 만들겠다는 과욕은 재앙이 되기도 했다. 110억원 제작비에서 단 5억원을 건진 2002년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감독 장선우)은 그 대표적인 예다. 그 해에는 '예스터데이', '아 유 레디' 등 수십억 제작비를 들인 영화들이 연이어 흥행에 크게 실패한 바 있다.
대작의 실패는 작은 시장에서 더욱 치명적 결과를 낳는다. 제작비 100억원이라니, 세계 시장을 놓고 보는 할리우드로선 콧방귀를 뀔 금액이지만 한국에서는 사정이 다르다. 수십억 원에서 100억원에 이르는 투자비가 회수가 안되면 이 영세한 시장에서는 바로 투자가 위축된다. 영화 제작이 안 된다. 100억원짜리 영화 한 편이 실패하면 한국영화 시장 자체가 '휘청'한다.
크게 놓고 크게 먹는, 때문에 크게 잃을 수도 있는 '한국형 블록버스터' 는 그 자체로 대단한 고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한 영화 관계자는 "한국형 블록버스터란 크게 투자해 크게 먹겠다는 '도박'에 가깝다"고 쓴 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CG에 대한 강박은 '한국형 블록버스터'에서 자주 발견되는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한 영화 제작사 관계자는 "관객의 눈높이는 이미 '트랜스포머'에 맞춰져 있는데 우리가 열심히 만든다고 '트랜스포머' 같은 CG가 가능하겠나"라고 혀를 찼다. 흥행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트랜스포머2'의 제작비가 1억5000만 달러, 환산하면 무려 2000억원에 이른다. 애초에 게임이 안 되는 승부라는 설명이다.
다른 영화 홍보 관계자는 "요즘 관객이 어떤 관객인데, 딱 봐도 어림없는 화면을 만들어놓고 이게 순수 우리 기술이니 우리 영화니 하는 애국심 마케팅은 씨도 안 먹힌다"고 털어놨다. 그는 "CG로 승부를 보겠다는 생각은 애초부터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다른 관계자는 변화에 주목했다. 그는 "최근의 큰 영화들은 단순히 할리우드의 외양을 따라하기보다는 한국의 정서와 드라마를 담는 데 주력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한국형 블록버스터'가 진짜 한국형이 된 셈"이라고 덧붙였다.
올 여름에도 '한국형 블록버스터'라 할 수 있는 작품들이 연이어 개봉한다. 부산 해운대를 휩쓴 초대형 쓰나미를 다룬 '해운대'(감독 윤제균)는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진 첫 재난영화다. 연말에는 '전우치'(감독 최동훈)가 개봉을 앞뒀다. 이들이 10년을 맞은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의미있는 성과를 이어갈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