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디오가게 한 귀퉁이에서 먼지 뽀얗게 앉은 <천국보다 낯선>을 발견했다. 영화에 대한 사전 정보 하나 없이 손에 들고 돌아온 후, 이 낯설고 섬세한 로드무비에 여행가방 하나 못 준비한 미련함을 탓한 적이 있다.
자무쉬의 세계로 여행하기 위해서는 약간의 준비물이 필요하다. 커다란 여행 가방은 기본, 그리고 언제든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카세트가 그 준비물의 전부다. 물론 mp3도 가능하다. 약간이라고 했지만 너무 단출하다 싶은 준비물이어서 “설마~”할 것이다. 그러나 ‘짐 자무쉬’ 이름조차도 처음 들어본 이가 그의 최신작 <브로큰 플라워>를 본다면 필자의 말을 그제야 이해하리다.
미국 독립영화계의 기린아, ‘짐 자무쉬’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골똘히 생각을 정리해보지만 자무시의 영화를 한마디로 정의내리기는 힘들다. 어떤 영환들 안 그러겠느냐만은 엔딩크레딧이 올라가는 순간까지 우리의 마음을 놓지 않는 말캉말캉한 음율 속에 삶의 유희가 흐르고 허무한 인생의 윤곽이 도드라진다. 설정만 있고 인물에게 가해가 없는 형식미에서 성찰이 아닌 “인생은 그런거야?”라고 되묻는 낭랑한 어조가 배어나온다.
<브로큰 플라워>는 허파에서부터 울리는 깊은 웃음을 자아낸다. ‘빌 머레이’를 유념해두고 시나리오를 쓰고 그가 아니면 영화 자체를 상상하지 못했을 이 영화에서도 자무쉬는 주인공 ‘돈’(빌 머레이)을 목적지는 있지만 목표는 없는 여행을 (여전히) 떠나게 한다. 어제도 오늘도 앞으로 다가올 내일마저도 추리닝 차림으로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을 무표정한 얼굴로 ‘우두커니’ 보고 있을 것만 같은 ‘돈’은 이날도 역시 평소 그대로다. 평소와 다른 게 있다면 TV에서 자신의 방탕했던 젊은날을 추억하게 만드는 빈센트 쉐먼 감독의 <돈 주앙의 모험>(1948년)을 방영한다는 것뿐.
아니다. 그녀의 애인 쉐리(쥴리 델피) 그의 무심함을 탓하며 ‘분홍’ 옷을 입고 돈의 집을 떠난다. 그리고 쉐리의 손을 거쳐 그에게 ‘분홍편지’가 당도한다. 편지내용은 20년 전에 헤어진 돈의 과거 애인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묘령의 여자에게서 온거다. 내용은 이렇다. “당신과 헤어진 후 임신 사실을 알았다. 아들인데 그애가 당신을 찾으러 여행을 떠난 것 같다”
주소도 이름도 없는 이 한통의 편지는 떠나가는 애인마저도 뜨뜻미지근하게 잡던 그의 고요한 일상을 탈출해 어디론가 떠나야한다고 동기부여 해준다. 탐정 소설가를 꿈꾸는 옆집 친구의 등살에 못 이긴 척 하며 과거 애인 4명을 차례차례 찾아 나가는 돈. 20년 전 그의 사랑을 탐했던 그녀들은 늙고 사는 모습도 제각기이지만 19살 먹은 ‘아들’은 없는 듯하다. ‘분홍’ 색깔이 유일한 단서인데 그들은 모두 분홍색을 생활 속에 가까이 하고 있어 목적이 되었던 ‘분홍’은 단서로서의 가치를 상실한다.
자무쉬의 <브로큰 플라워>는 인생에 대한 코미디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깨달음을 전제로 한 작품은 아니다. 편지의 주인을 찾아 단서를 찾는 ‘돈’은 탐정처럼 시종일관 의심을 눈초리를 거두지 않는다. 그러나 답을 얻기 위한 미스터리 안에서 주인공은 단서조차도 잃어버림으로써 결국엔 혼자였던 제자리로 소득 없이 돌아온다. 한적한 교차로에, 여전히 똑같은 추리닝 차림으로, 홀로 남겨진 돈은 과거와 미래 사이에 있는 지금이 ‘현실’임을 재차 확인했을 뿐이다.
짐 자무쉬 영화 중 유례없는 유병배우들이 총출동(샤론 스톤, 제시카 랭, 틸다 스윈튼, 프랜시스 콘로이)하고 대중적 장르(로맨틱코미디, 미스터리)를 선회하는 <브로큰 플라워>는 그의 전작처럼 무언가 잡히는 게 없어 그 잔상이 오래 남는다. 그래서 주인공 돈이 찾지 못한 목표를 대신 찾기 위해 여행을 훌쩍 떠나고 싶어진다. 그 길에 필요한 ‘음악’만 준비하면 여행은 지금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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