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나누자면, ‘재일 교포’는 사실 두 종류다. 재일 한국인, 그리고 재일 조선인. 한민족이라지만 보통 남한과 북한으로 구분하게 된 오늘날의 우리처럼 ‘재일 교포’라 통칭하는 세계에도 구분하자면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사람과 ‘북조선인민공화국’ 국적을 가진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그들의 1세대는 조국이 둘로 갈라지기 이전에 일본에 건너갔고, 이후 이루어진 조국의 분단이 가지는 경계는 모호할 뿐이지만, 이미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가 이루어진 후 한국은, 기술이나 재산을 가진 ‘재일 조선인’들을 귀국선에 태워 북한으로 돌려보내지 말라고 일본 정부에 압력을 가하며 분단된 조국의 경계선 긋기를 시작한다. “일본은 나가라고 하고, 한국은 돌려보내지 말라고 한다”는 바로 그 시점 1968년 일본 교토. <박치기>는 바로 그 시점의 재일 조선인들의 이야기다.
<박치기>의 원제는 ‘박치기’를 한국어 발음을 그대로 일본어로 표기한 <パッチギ!>로, 무거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영화는 도입부부터 박치기 한판처럼 유쾌하다. <69 식스티나인>의 페스티벌과 바리게이트의 세계에서 1년 전인 68년의 청춘들 역시 –조금 다른 의미(!)로 이해하고 있긴 하지만-프리섹스란 단어에 열광하고 히피문화와 포크음악에 빠진 청춘들인 것이다. 피 끓는 청춘들은 어디서나 그렇듯, 안성을 비롯한 조선고 패거리는 매일같이 일본인 학생들과 싸움을 하지만 이념보다는 현재 자신의 존재감을 위해 싸우고 경자에게 한눈에 반한 코우스케에게 일본인, 조선인은 의미없는 경계다. 현실만으로도 벅찬 청춘들에게 이념이나 가치관의 무게는 불필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경자에게 반한 코우스케의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비교적 쉽게 화해모드를 타는 듯 보인다. <고>에서 쿠보즈카가, ‘이름 따위 뭐가 중요해? 이것은 나의 연애이야기일 뿐’이라고 외치기까지 겪었을 고민과 방황기 없이, ‘조선어 사전’으로 ‘임진강’이라는 노래 한 곡으로 강 건너 세계로 망설임 없이 뛰어드는 방법을 택한 코우스케는, 한국식 이름을 얻고 안성과 ‘육촌의 잔’을 나누며 밝고 순탄하게 연애이야기를 완성하려고 한다.
그런데 영화는 그 순간 태클을 건다. 각본을 쓴 하바라 다이스케가 에피소드의 9할이 실제 이야기를 재구성했다고 밝혔듯, 현실은 그렇게 녹녹치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발목을 잡는 ‘과거’가 무엇인지 아는 ‘우리’에게는 더 이 영화의 무엇인가가 목에 걸린다. 영화를 가볍게 즐기고 싶지만 무시할 수 없는 무거운 정서가 자꾸 오버랩 되는 것이다. 막걸리에 취한 코우스케를 데려다 준 경자의 한복차림에 그의 엄마가 야릇한 뉘앙스로 반응하는 미세한 갈등 암시는, 후반부의 장례식에서 절정에 이르고, 묻히는 듯 싶던 장벽은 등장한다. 우리가 너무 잘 알 듯, 잊지 못할 과거로 시작된 간극이 코우스케 개인이 그들 세계에 동화됨으로써 쉽게 메워지지 않는다는 것. 코우스케가 ‘임진강’을 부르는 장면은 영화에서 두 번 나온다. 한번은 미소를 지으며 즐겁게, 한번은 눈물이 맴돌며 애절하게.
<박치기>는 두 가지 방법으로 골라 볼 수 있다. 일본 청춘물 특유의 코믹코드를 적당하게 즐기면서 유쾌하게 보는 방법과 우리가 잘 알지 못했고 잘 다루지 못했던 재일 조선인들의 이야기를 조금 진지하게 보는 방법. 영화 속 배우들의 한국어 연기가 어색해서 재미있기까지 하지만, 2세, 3세로 이어진 실제 재일 조선인들의 언어도 그와 많이 다르지 않다. 그리고 실제로 한국어를 잘하지 못하는 교포들도 ‘어머니’, ‘오빠’ 같은 호칭은 한국어를 섞어 사용하는 경우도 많다. 마지막 장면에 두루마기 같은 옷을 입은 코우스케의 모습을 보며 반대로 저게 뭐냐고 생각했을 일본인이 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박치기>는 한국사람의 시선으로 다른 재미와 감동을 찾아낼 수 있을, 한국에서 개봉된다는 게 반가운 영화이다.
일본인, 재일 조선인의 삶은 현재 진행형으로 얽혀간다. 대학에 가고 사랑을 하고 양쪽의 피를 이어받은 2세가 탄생하고… 무승부로 끝날 수밖에 없는 싸움처럼, 결말은 극단적이기 보단 평서형을 택하고 그것은 어쩌면 가장 사실적이며 당연한 현실을 제시한다. 유쾌하게 시작해서 진지하고 감동적이 되었다가 다시 유쾌해지려는 그 순간에 등장하는 틀에 박힌 것 같은 이 결말이 보여주는 평범한 리얼리티가 우리가 발견할 <박치기>의 또 다른 매력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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