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한가지만 바뀌면 모든 게 잘 풀리리란 기대감이야말로 덧없는 바램일 뿐 이미 일어났던 일을 변화시키거나 막지 못한다는 사실로 뻔하게 흘러가지만 카메라는 나이가 들수록 알게 모르게 쌓인 경험과 넓어진 시각으로 하여금 그 당시 미처 못 느끼고 지나간 일련의 감정들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였는지를 찬찬히 되짚어 가며 보여준다. <친구>,<챔피온>등 남성 영화의 조감독을 거친 김창래 감독은 누구나 한번쯤 꿈꿔온 소재를 가지고 가장 여성적인 시각으로 풀어냈다. 영화 속 나정주의 독백과 대사들은 여자뿐만 아니라 사랑을 꿈꾸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말들로 가득 차 있다. 더불어 세련된 이미지의 고소영이 난생 처음 도전한 코믹 캐릭터는 여전히 도시적이지만 몸에 벤 자연스러움이 느껴진다.
그러나 1994년을 기억하는 이들에게 친근한 영화 속 에피소드들이 (그 당시 어렸을)지금의 20대 초반 관객들에게는 다소 생소하게 다가올 수 있다는 것과 남성관객들의 공감을 충분히 끌어내지 못한다는 점이 <언니가 간다>가 지닌 몇 가지 단점이다. 최근 히트한 영화와 드라마 속 사랑 고백을 적절히 섞고, 시대를 대표하는 사건들을 고루 배치함으로써 영화적 재미를 더했지만 '우울한 마음은 버리고 현재를 즐기고 사랑하라'는 식의 결말은 다소 진부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니가 간다>는 시간의 역 주행을 다룬 여느 영화와 달리 시간 여행을 통해 변화하는 인물의 내적 변화를 충분히 보여준다는 점에서 나름의 차별성을 꾀했다. '과거는 과거일뿐 집착하지 말자'라는 이 영화야 말로 현재를 살아가는 여자들의 '생활백서'임과 동시에 그들을 향한 진정한 오마주인셈이다.
2006년 12월 20일 수요일 | 글_이희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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