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존재할 것 같지 않은 100캐럿짜리 핑크 다이아몬드가 솔로몬에 의해 발견되면서 그 소문을 들은 대니 아처(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헤어진 가족을 찾아준다는 조건으로 그에게 접근하고, 대니가 서구세계의 보석회사에 ‘물건’을 대준다는 사실을 안 저널리스트 매디 보웬(제니퍼 코넬리)은 다이아몬드로 인해 아프리카에서 벌어지는 비극을 끊고자 가장 확실한 증거를 지닌 그를 설득하면서 영화는 절정으로 치닫는다. 다이아몬드의 가격을 맞추기 위해 물량을 조절하는 보석회사의 상술과 추하기 그지없는 유통과정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블러드 다이아몬드>는 국적도 성별도 다른 이들 세 사람 역시 자신이 원하는걸 얻기 위해 서로를 이용할 뿐이라는 사실을 놓치지 않는다. 무고한 학살과 사실적인 폭력으로 가득 찬 화면은 서구세계에서 만든 핑크빛 환상을 충족 시키기 위해 아프리카에서 벌어지는 잔혹한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동시에 그 당시 강대국으로서 국제사회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의무를 저버리고 대통령의 섹스 스캔들에만 열을 올렸던 미국 정부를 한껏 조롱하고, 비극적인 전쟁 소식을 채널이 고정되도록 날씨와 경제뉴스 사이에 끼워 넣었던 언론의 무책임함을 다시 한번 상기시킨다. 그리고 다이아몬드와 전혀 무관한 삶을 살았던 한 남자에게 닥친 비극을 사실적으로 보여줌으로써 사랑의 증표로 보여지는 아름다운 보석이 지닌 아이러니를 가감 없이 드러낸다. 영화는 다이아몬드를 향한 여자들의 허영심과 그런 연인의 손가락에 반지를 끼워주기 위해 석 달치 월급을 터는 남자들이야말로 이 비극의 원흉임을 숨기지 않는다.
아프리카의 현실을 소재로 한 영화들은 할리우드에서 그다지 환영 받지 못했지만 이미 <라스트 사무라이>를 통해 인간의 존엄성을 감동적으로 표출해낸 에드워드 즈윅 감독의 힘있는 연출력과 이 영화를 통해 골든글로브 남우주연상에 후보에 오른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인상적인 연기는 영화 후반부로 가면서 과도하게 시도된 ‘화해’와 ‘용서’를 충분히 덮을 만큼 강렬하다. 서로를 형제로 부르며 자신들의 독립을 위해 함께 싸웠던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과거는 기업의 이윤 앞에 서로의 머리에 총을 겨눈채 점차 희미해져 가고 있다. 마약과 세뇌교육을 통해 10대 초반의 소년들을 강제로 훈련시키는 게릴라 군의 잔인함 뒤에는 무기를 사기 위해 다이아몬드를 팔아야 하는 절박함과 그 사실을 묵인한 채 다이아몬드를 사들이는 세계적인 보석회사가 있다. 내가 살기 위해 나보다 약한 자를 이용하고 짓밟는다는 점에서 ‘피묻은 다이아몬드’라는 뜻의 영화제목은 가장 확실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2007년 1월 10일 수요일 | 글_이희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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