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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 영화의 한 장면. 주인공과 악당이 영화 말미에 마주친다. 무수한 악행을 저질렀고 자신 가족에게 해를 가한 악당의 은신처를 주인공이 찾아 온 것이다. 드디어, 두 개의 총구가 불을 뿜고 악당이 쓰러진다. 그러나 즉사하지 않는다. 영화니까. 치명상을 입고 비굴하게 목숨을 구걸하는 악당을 뒤로 한 채 떠나려는 주인공. 간교한 악당이 장화 속에서 총을 꺼내 발사하려는 순간, 우리의 주인공은 다시 한 번 방아쇠를 당긴다. 음악이 흐르고 The End, 혹은 마음조리며 기도하던 아리따운 여성과의 키스.
어려서부터 할리우드 영화를 좋아했던 나는 이러한 장르영화의 컨벤션에서 답답증을 느꼈더랬다. 자기가 저지른 악행을 참회하면서 현실을 받아들였다면 목숨은 부지할 수 있었을 텐데, 왜 깝죽대다가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느냐는 것이 불만의 요지였다. 당시는 시종일관 긴장감으로 무장해야 재미있을 테니까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이것이 비단 영화에만 국한되는 일이 아님을 깨닫게 되었다. 박수는 언감생심, 떠나게 해주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한 판에 끝까지 “나 억울하다”고 외치다가 졸지에 낭인이 되어 떠도는 인생을 하도 많이 보아왔기 때문이다.
지난 8일 조희문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장의 해임이 결정되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그의 재임 기간에 대한 이야기야 언론매체를 통해 다 드러났으니 재삼 거론할 가치도 없다. 문제는 이후 조 위원장의 거취다. 조희문은 같은 날 오후 2시 열린 해임 관련 긴급 기자회견에서 “내가 보수우파를 지지한다고 해서 진보좌파를 제거대상으로 보는 것은 아니다. 인정하고 소통하는 것이 필요하다. 영화계에 들어와서 한 번도 내 이념적인 바탕을 숨긴 적도, 상대방의 입장을 부정한 적도 없다”고 말했다. 요컨대 영화계 편 가르기로 인해 자신이 희생양이 되었다는 것이다. 사실도 그러한가?
미디어영상센터와 독립영화전용관과 시네마테크를 위시한 숱한 공적지원 사업자 선정과정에서 보여준 그의 행동은 반대세력에 대한 ‘부정’이나 ‘제거’ 정도가 아니었다. 다시는 영화판에 발붙이지 못하도록 ‘절멸’시키겠다는 절치부심의 발로였다. 심지어 그것은 스스로 보수우파 운운한 이념적 바탕과도 거리가 멀다. 오로지 내편 챙기기와 특정 집단의 이익을 위한 것이었을 뿐 이념에 깃발을 치켜든 보수주의자의 형상은 애초에 있지도 않았다는 말이다. 각종 심사에 압력을 행사했고 자격 미달 보수인사들이 만든 유령단체에 한국영화의 미래가 걸린 공공사업을 안겨준 것이 이를 반증한다. 그에게 한국영화계의 공적 수장으로서의 의무와 책임을 다할 마음이 털끝만큼이라도 있었다면 이 같이 비참한 말로를 맞지는 않았을 터. 오죽하면 보수영화인들까지 나서서 조희문을 성토하고 해임을 촉구했겠는가. 그럼에도 끝까지 변명으로 일관하는 조희문의 모습은 동정의 여지마저 깡그리 사라지게 만들어버렸다.
「죄악은 규모에 따라 무죄가 되거나 심지어 미덕이 되기도 한다」 프랑스 작가 프랑수아 로슈푸코의 말이다. 하지만 죄도 죄 나름이다. 자기 신념을 굽히지 않느라 당대 권력의 이데올로기 눈 밖에 나서 얻은 죄라면 몰라도, 영진위위원장으로서 저지른 조희문의 죄는 신념이 아닌 탐욕의 산물이었고 모처럼 쥔 칼자루를 (제 편을 위해)사리분별 없이 휘둘렀다는 점에서 정상참작의 여지조차 없다.
몇 년 전 조희문은 고액 출연료를 받는 스타급 배우들을 향해 “영화가 망하면 출연료를 반납하거나 미니멈 개런티로 전환할 용의가 있느냐?”는 식의 독설을 퍼부은 바 있다. 이제 같은 질문을 그에게 던진다. ‘당신이 만들어놓은 이 혼탁한 영화판,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 영진위위원장 재직 시 고액 연봉을 꼬박꼬박 받았고, 국민혈세로 세계영화제를 누비며 자신의 눈과 입을 호강시키면서도 정작 한국영화계는 만신창이가 되도록 방치해놓았으니, 그간 받은 급여를 반납할 용의는 없는지’를.
모름지기 사람이란 박수칠 때 떠나야 하는 법이지만 여의치 않으면 곱게 보내줄 때 눈치껏 나갈 줄도 알아야 한다. 오늘 아침 메일함을 채운 보도자료 중 조희문이 그토록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시네마루가 보낸 <당신의 불행에는 이유가 있다> 언론시사 메일. 뭔가 의미심장하지 않은가. 참으로 시기적절한 시네마루의 부창부수. 조희문, 당신의 불행에도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남 탓할 자격까지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불행은 이제 시작일지도 모르니까.
글_백건영 영화평론가(무비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