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검색
검색
‘먼 나라 이웃 나라’ 쿠바 대 한국 연애편 (오락성 5 작품성 4)
쿠바의 연인 | 2011년 1월 11일 화요일 | 양현주 이메일

쿠바하면 떠오르는 세 가지를 꼽아보자면 체 게바라, 춤, 자유의 공간이다. 언젠가부터 지구 반대편의 우리에게 쿠바는 어떤 꿈의 장소가 되었다. 신속하고 민첩하게 하루를 쪼개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자유와 낭만의 상징이 된 셈이다. 휴가철이 되면 불가능한 꿈을 가진 리얼리스트가 되라던 체 게바라의 나라로 너도 나도 배낭을 메고 떠난다. 다큐멘터리 <쿠바의 연인>은 외부인이 낭만으로 덧칠하던 쿠바 속으로 들어가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전한다. 흔히 쿠바가 소재인 다큐들이 취하는 표본집단을 통한 인터뷰가 아니라 연애를 매개로 한다. 그 이야기 방식이란 산만하고 자유롭고 정겹다.

삼십대의 밥벌이가 고단한 다큐 감독과 이십대의 외로우나 즐거우나 살사 춤을 추는 쿠바 청년이 만났다. 한마디로 <쿠바의 연인>은 국적도 문화도 다른 두 사람이 만나 결혼으로 골인하는 과정을 편집한 다큐다. 영화는 1할의 초반부와 9할의 나머지가 확연히 다른 색으로 채색된다. 초반에는 송일곤 감독의 <시간의 춤>을 연상시키듯 쿠바 한인 3세를 인터뷰하는 일상이 나열된다. 이웃집의 신고로 난관에 봉착한 카메라는 다른 인터뷰 대상을 찾는가 했더니 광장에서 만난 까무잡잡한 쿠바청년을 따라간다. 그때부터 감독과 청년의 연애 이야기가 펼쳐진다. 편집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분명 쿠바 한인 3세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다큐가 감독의 연애 이야기로 방향을 바꾼 것이다. 초반의 인터뷰는 우연성에 대한 이야기의 발판이 된다.

말하자면 <쿠바의 연인>은 기획 다큐가 아니다. 그렇다고 단순히 연애 다큐라고 포장하는 것도 안 될 말이다. 또래의 한국 남자와 한국 여자가 만나 사랑을 한다면 로맨틱 코미디가 되겠지만, 한국 여자와 쿠바 남자가 만나니 영화는 연애이야기인 동시에 정치적인 영화가 된다. 너의 나라는 자유가 있지만 이틀을 꼬박 일해야 칫솔을 살 수 있고, 나의 나라는 한 끼 식사를 뷔페처럼 할 수 있지만 시간에 쫓겨 산다. ‘완벽한 나라는 없다’는 표어 같은 문장이 주인공 두 사람에게는 절실해진다. 전혀 다른 나라의 후예들이 엮어가는 대화와 문화충돌을 보고 있자면 그대로 현대식 ‘먼 나라 이웃 나라’ 쿠바 편이 된다.

최근 몇 년 사이 일고 있는 쿠바 붐은 영화와 소설 등 다양한 텍스트로 지구 반 바퀴를 돌아 우리에게 배달되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김영하의 소설 <검은꽃>이나 송일곤 감독의 또 다른 다큐 <시간의 춤> 등을 보면 알 수 있다. 주류 텍스트들은 애니깽으로 정착한 쿠바 한인에게 포커스가 맞춰져 있다. 같은 길을 가려 했던 <쿠바의 연인>은 오히려 삼천포로 빠지면서 풍부한 메시지를 품는다. 쿠바의 정치상황을 직설적으로 보여주는 다큐보다 “이런 전철 하나만 있으면 우리(쿠바) 교통문제는 단번에 해결될 거야”라는 말 한 마디가 더 쉽게 다가온다. “너는 시간의 노예야” 더불어 쿠바 청년 오리엘비스의 감독을 향한 목소리는 관객에게 그대로 돌아온다.

이 다큐의 가장 큰 장점은 연애라는 가장 개인적인 사건을 통해 이데올로기를 먹기 좋게 감싼다는 것이다. 둘의 연애담은 쿠바 편과 한국 편으로 갈리는데, 남자의 집과 여자의 집, 이 두 공간에서 피어나는 전혀 다른 공기는 우리를 비추는 거울이 된다. ‘다른 것은 틀린 것’이라고 생각하는 한국 사회의 배타적인 맨 얼굴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특히 전철에서 만난 한 할머니가 오리엘비스 흑인 특유의 곱슬머리를 보고 주저 없이 사탄이라고 말하는 에피소드는 섬뜩한 자화상이다. ‘가장 개인적이 것이 가장 정치적’이라는 1970년대 페미니즘의 구호가 영화 곳곳에서 적용된다.

8mm 카메라로 특별한 미학적인 기법 없이 촬영된 영상에 각종 애니메이션과 귀여운 일러스트가 입혀져 영화는 한결 경쾌하다. 그럼에도 애초에 기획 다큐가 아닌 때문인지 전체적인 짜임새는 헐겁다. 결혼으로 가는 과정보다 아이가 태어난 후 쿠바와 한국에서 빚어낼 이야기가 빠진 것은 아쉬운 점이다. 영화 자체의 짜임새와 별개로 그릇 안에 담겨진 이야기들이 흥미로운 다큐멘터리다.

2011년 1월 11일 화요일 | 글_프리랜서 양현주(무비스트)    




-알싸한 경쾌함으로 우울한 독립다큐라는 편견을 탈피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이면의 쿠바를 본다
-매년 에디프 정도 챙겨보는 다큐 매니아라면 추천
-산만한 연출로 개인사를 읊는 일기형 다큐
-짜임새가 보태졌다면 ‘모두의’ 연인도 될 수 있었을 것을
-작은 것이 항상 미덕인가(독립다큐가 빠지기 쉬운 함정)
0 )
1

 

1

 

1일동안 이 창을 열지 않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