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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진위의 독립영화전용관 직영에 부쳐
2011년 2월 25일 금요일 | 백건영 영화평론가 이메일


진정 혹독한 겨울이었다. 연초부터 계속된 혹한사이로 영동지방의 폭설 소식이 들려왔고, 구제역으로 인한 살처분은 축산농민의 가슴을 도려내며 마음을 얼어붙게 만들어버렸다. 동시다발적으로 터진 아랍권 국가의 시민항쟁과 어느 젊은 작가의 죽음이 뒤엉켜 쏟아내는 뉴스에 정신을 차리기 힘든 시간이었다.

겨울의 위세가 한풀 꺾인 2월 15일, 설로만 떠돌던 세간의 이야기가 현실이 되었다.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가 독립영화전용관과 영상미디어센터의 계약직 직원 채용공고를 낸 것. 즉 운영사업자를 공모하지 않고 영진위 직영체제로의 전환을 공식 선언한 셈이다. 표면적으로만 보면 현 사업자의 방만한 운영으로 1년을 허송세월한 까닭에 한국다양성영화발전협의회(이하 한다협) 등과의 재계약의 털끝만한 명분도 없었을 터. 문제는 전용관 운영방식 변경이라는 중대 사안을 공청회 한 번 열지 않고 일방적으로 밀어붙였다는 데 있다. 오래전부터 영진위와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광부)가 한 몸이 되어 준비해왔을 것이라 의심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어차피 공모해봐야 적합한 보수단체가 있을 리 없고, 그렇다고 한국독립영화협회 산하단체에 전용관을 넘겨주는 일은 필사적으로 막아야 한다는 것이 한계상황에서 비롯된 정부의 독립영화정책이고 보면, 영진위의 선택은 놀랄 일도 아니다. 강한섭 위원장시절부터 흘러나왔던 이야기고 유인촌 전 장관이 공론화 시킨 사안이 현실이 되었을 뿐이라는 것.

이번 영진위의 독립영화전용관 직영 결정은 독립영화계를 바라보는 현 정부의 시각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그러니까 정권 초기부터 보수문화예술인들이 치밀하고 정교한 마스터플랜에 따라 수립한 독립영화진영 죽이기의 일환이라는 것이다. 한다협이 원만하고 풍요롭게 전용관 사업을 펼칠 것이라 확신한 영진위위원은 몇이나 될까. 누가 보더라도 능력 밖의 일이요 힘에 부치는 사업이었음을 그들이 몰랐을 리가 없다. 그럼에도 사업자 선정을 한 데는 애초부터 불순한 목적이 있었다는 것. 즉 한국독립영화협회의 진입을 원천봉쇄하는 게 조희문과 영진위의 지상과제였고 이를 시네마루에 기대한 것이라면, 시네마루의 역할은 한 치 어김없이 자리보전하면서ㅡ이런 경우도 영진위 입장에선 무사히 계약기간을 마쳤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ㅡ1년이란 시간을 잘 벌어주었다는 것이다.

영진위 직영 독립영화전용관은 어떤 식으로든 정부정책 홍보관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농후할 뿐 아니라 또 다른 시네마루를 만드는 것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우려스럽다. 특히 영화진흥위원회위원장 선임을 목전에 둔 시점에서 이러한 발표가 나왔다는 것은, 복잡한 영화계 상황에 편승해 유야무야 넘어가 기정사실화하겠다는 얕은 책략으로 보인다. 정병국 문광부장관은 2월 10일 열린 대국민 업무보고에서 작가의 죽음을 애도하며 “영화계 종사자의 처우개선과 복지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정녕 젊은 영화인의 꿈을 짓밟지 않을 마음이라면 보수영화인들의 이권다툼의 각축장으로 전락한 영진위 정책 전반에 걸쳐 손을 봐야 할 것이다. 정상적인 공모절차에 의해 독립영화전용관과 영상미디어센터 사업자를 선정하고 시네마테크에 대한 임대료 지원도 정상화시켜야 한다. 독립영화와 소자본영화가 쉼 없이 관객과 만날 수 있는 안정된 상영 공간 하나 없는 현실에서 어떻게 영화인의 처우 개선과 복지를 운운할 수 있단 말인가. 장관이 전면에 나서서 매듭을 풀어갈 일이다.

한편으로는 작년 독립영화전용관과 시네마테크 사태를 겪고도 또 다시 직영체제를 들고 나온 영진위와 보수문화인의 고집스러움이 조금은 두렵기까지 하다. 그동안 보수의 무능과 부패를 얘기하면서도 ‘권력을 쥔 자의 능력이란 권력 그 자체’임을 간과했던 건 아닐까 싶다. 우수(雨水)가 지나도 독립영화계는 여전히 겨울이지만 이럴 때일수록 용기를 잃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의 간판이 내려가던 날, 간판 앞에서 언젠가 다시 돌아오리라 다짐하며 활짝 웃던 그 얼굴들을 기억해야 한다. 참말로 징글징글하게 춥다. 이 나라.

글_백건영 영화평론가(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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