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박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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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자파르 파나히
배우: 바히드 모바셰리, 마리암 아프샤리, 에브라힘 아지지, 하디스 파크바텐, 마지드 파나히, 모하마드 알리, 엘리 아스메르
장르: 액션, 범죄, 드라마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시간: 103분
개봉: 10월 1일
간단평
어두운 밤, 만삭의 아내와 어린 딸을 태우고 운전하는 남자가 있다. 황량한 길에서 개를 치고 만 남자, 어린 딸의 타박을 뒤로 하고 고장 난 차를 맡기기 위해 홀로 낯선 정비소에 들어선다. 한편 정비공 ‘바히드’(바히드 모바셰리)는 남자의 발소리를 듣고 어떤 기억이 떠올라 황급히 몸을 숨긴다. 남자와 바히드 사이에는 무슨 악연이 있는 걸까.
이란 당국의 검열과 압박 속에서도 목숨 걸고 영화를 찍어온 자파르 파나히 감독의 신작 <그저 사고였을 뿐>은, 어떤 상황에서도 인간성을 잃지 않으려 애쓰는 평범한 이들의 소리 없는 절규를 담아낸다. 괴물을 잡기 위해 스스로 괴물로 전락하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가 작품 전반에 흐른다. 과거 바히드는 정보국에 끌려가 고문을 당한 적이 있다. 복면 때문에 얼굴은 보지 못했지만, 의족을 한 남자의 독특한 걸음 소리만큼은 또렷이 기억한다. 그리고 정비소에 들어선 한 남자의 발자국 소리를 듣는 순간, 그는 자신을 고문했던 자라 확신하고 납치한다. 그러나 남자가 자기 정체를 강하게 부정하면서, 바히드의 확신은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한다. 관객 역시 그와 함께 질문을 품게 된다. 바히드의 착각일까? 아니면 은폐된 진실일까? 교통사고로 다리를 잃었다는 남자의 주장은 사실일까? 영화는 이런 물음들이 불쑥불쑥 떠오르게 만든다.
<그저 사고였을 뿐>은 의심이 확신으로 변하는 과정을 담담하게 포착한다. 불확실한 진실과 도덕적 혼란 속에서 인간성의 본질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한다. 바히드는 과거 자신과 같은 피해자들을 찾아다니며 남자가 ‘고문관’임을 확인받으려 하지만, 다른 이들 역시 사정은 비슷하다. 모두 심증은 있지만 물증은 없다. 피해자들 간에 오가는 대화와 얽히는 상황 속에서, 감독의 인간에 대한 희망이 드러난다. 고통과 상처, 극복하지 못한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가면서도 타인을 향한 연민을 잃지 않는 이들. 답답하면서도 동시에 아름다운 인간성의 현장이 펼쳐진다.
묵직한 주제와 건조한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마냥 무겁게만 흘러가지 않는다. 정의를 저버리지 않으려 애쓰는 바히드와 피해자들의 순박한 모습은 긴장감 속에서도 숨통을 틔운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은 바히드의 내일을 곱씹게 하며 긴 여운을 남긴다. 올해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고, 부산국제영화제에 공식 초청된 이 작품을 통해 감독은 억압 속에서도 결코 사라지지 않는 인간의 존엄을 웅변한다.
2025년 9월 30일 화요일 | 글 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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