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박꽃 기자]
김일란, 김정근, 김철민, 문정현, 서동일, 이영, 홍형숙 감독이 참석한 이 날 기자회견에서는 영진위의 제작, 개봉지원사업 선정을 위해 거쳐야 했던 면접 당시 심사위원에게 “세월호 영화인가요?”라는 질문을 수차례 받았다는 고발도 등장했다. 국정원이 독립영화 감독에게 직접 압력을 가한 사실도 공개됐다.
<이산자>(2017)를 연출한 문정현 감독은 “2015년 상반기에 영진위 독립영화 제작지원 면접 당시 심사위원이 가장 처음 한 질문은 ‘할매꽃2’(<이산자>의 초기 제목)가 세월호에 관한 영화냐는 것이었다. 주인공인 재일조선인이 세월호 참사 추모 집회에 참석하는 신이 첫 장면이기 때문이다. 나의 삼촌이자 가족인 재일조선인에 대한 다큐멘터리라고 말했는데도 끝까지 세월호에 대한 영화가 아니냐고 확인하더라”고 밝혔다.
<이산자>는 다양한 사연을 품고 살아가는 재일조선인 2세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2015년 상반기, 하반기, 2016년 상반기, 하반기 총 네 차례 영진위 독립영화 제작지원에서 모두 탈락했다.
문 감독은 “여러 번 심사에서 떨어지고 나니 위축이 됐다. 그 장면을 뺄까 싶은 생각이 들더라. 생전 해보지 않은 자기검열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림자들의 섬>(2014)을 연출한 김정근 감독도 자기검열 경험을 털어놨다. “<그림자들의 섬>이 해고 노동자 문제와 비정규직 문제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자꾸 지원 사업에서 탈락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관련 내용을 순화하고 바꿔서 다시 지원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그림자들의 섬>은 한진중공업 파업을 주제로 한 작품으로 제40회 서울독립영화제 대상을 수상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2014년 하반기, 2015년 상반기, 하반기, 2016년 상반기, 하반기 총 다섯 차례 영진위 다양성영화 개봉지원에서 모두 탈락해야 했다.
영화 제작 당시 국정원의 직접적인 압박을 받았다는 증언도 공개됐다.
<경계도시>(2002)를 연출한 홍형숙 감독은 “영화 촬영 당시 프로듀서이던 강석필 감독에게 국정원으로부터 직접 연락이 왔다. 국정원 직원을 만나 들었던 이야기를 <경계도시>에 집어넣었더니 국정원으로부터 다시 유감을 표현하는 전화가 오더라”며 국정원의 직접적인 압박을 증언했다.
<경계도시>는 한국 정부로부터 간첩 혐의를 받은 재독 철학자 송두율 교수를 주인공으로 한 다큐멘터리다. 이 작품 이후 홍형숙 감독은 < Two weeks >(2014)로, 강석필 감독은 <소년, 달리다>(2015)로 영진위 지원 사업에서 나란히 탈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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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한 외출>(2014)을 연출한 김철민 감독 역시 “국정원이 세월호, 국가보안법, 위안부 등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건을 자기들 마음대로 키워드로 정하면 영진위는 지원 사업 심사에서 해당 영화에 최하점을 줬다. 박근혜 정부의 참담한 적폐 행위로 독립영화 감독은 공정한 기회를 박탈당했다”며 분노를 토해냈다.
최승호 감독의 <자백>(2016)과 함께 국정원으로부터 사업 지원 배제 작품으로 특정된 <불온한 당신>의 이영 감독은 “독립영화를 지원해야 할 영진위가 국정원의 개입에 적극적으로 가담했고 그럼에도 단 한 번도 양심고백이나 내부 폭로가 없었다는 사실에 분노를 넘어 참담하다”고 밝혔다.
김철민 감독의 <불안한 외출>은 한 가족의 삶을 망가트린 국가보안법을, 이영 감독의 <불온한 당신>은 보수 정권의 묵인아래 자행된 광장의 혐오 집회가 성 소수자를 겨냥하기 시작하던 시점을 바라본 작품이다.
현재 극장 상영 중인 용산 참사 다큐멘터리 <공동정범>을 공동연출한 김일란 감독은 “국가가 왜곡하고 은폐하려던 문제를 드러내는 창작자를 범죄자 취급했다”고 비판했다. 이혁상 감독은 “명백한 조사만이 시민의 문화 향유권을 지키는 길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명령불복종 교사>(2014)를 연출한 서동일 감독은 “이번 기회로 독립영화인이 눈치 보지 않고 떳떳하게 이야기할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이하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는 지난 6일(화) 박근혜 정부가 국정원을 필두로 문화체육관광부, 영진위를 동원해 우수한 독립다큐들을 ‘문제영화’로 낙인찍고 중요 지원사업에서 수차례 지원 배제했다는 사실을 밝힌 바 있다.
아래는 이른바 ‘문제영화’로 지목된 작품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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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마디
이렇게까지 해서… 얻으려던 건 뭘까요?
2018년 2월 7일 수요일 | 글_박꽃 기자(got.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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