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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수다회] 호들갑 역효과, 그래도 뚝심 있었다 <랑종>
2021년 7월 29일 목요일 | 박꽃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 박꽃 기자]

[목요수다회]는 무비스트 기자들이 같은 영화를 보고 한 자리에 모여서 편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코너입니다. 관람 후 나눈 대화인 만큼 스포일러가 잔뜩 포함돼 있으니 관람 전 독자는 열람에 주의해주세요!


호들갑 역효과

박꽃 : 많은 사람들이 <랑종>을 보고 나서 이런 반응을 보였어요. 마케팅이건, 먼저 본 기자나 평론가들이건, 왜 그렇게 무섭다고 호들갑을 떨었냐고요.(웃음)

박은영 : 개봉 전 마케팅 단계부터 ‘바이럴’ 전략이 심한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있었던 데다가 워낙 기대작이라 그런지 기자와 평론가 리뷰도 언론시사회 당일 빠르게 올라왔죠. 본의아니게 관객의 기대치를 너무 높여 놓은 셈이 됐어요.

박꽃 : 마케팅 면에서는 성공적이었다고 볼 수도 있죠. 코로나19 이후로 이렇게까지 사람들이 기대했던 영화가 많지 않았으니까요. 정식 개봉 전 나홍진 감독과 인연이 깊은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최초 상영한 것도 기대를 끌어올리는 전략이었던 것 같아요.

박은영 : 화제는 확실히 일으켰어요. 그런데 과도한 마케팅과 호들갑 리뷰가 좋은 평가와 매출로 연결되지는 못했어요. 관객으로서는 거품이었다는 생각이 들면서 영화를 필요 이상으로 까게 된 것 아닌가 싶어요. <랑종> 자체만 두고 보면 좋은 면도 많은 영화인데 말이죠.


이금용 : 관객들 반응을 보면 기자, 평론가들이 먼저 언급했던 여러 불쾌한 지점에 대해서 공감하는 의견도 많아요. 태국과 우리나라가 문화적으로 동일하지 않기 때문에 그들 사회의 맥락이나 종교적 문제를 좀 더 알고 보면 재미있을 것 같다는 평도 있었고요. 다만 <랑종>이 공포 영화라고 했을 때, 표면적인 공포를 원하는 입장에서는 심층적인 내용을 분석해가면서 이게 왜 재미가 있는지, 없는지를 따지는 평론적 관점에는 공감하기 어려울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박은영 : 공포 영화 이야기가 나왔으니 얘기해볼 필요가 있는 게, <랑종>은 처음부터 너무 ‘무섭다’는 식의 표현에 초점이 맞춰졌어요. 관객이 제일 실망할 때는 기대와 실제가 다를 때라고 보거든요. <랑종>도 먼저 본 사람들이 되게 무섭다고 하니까 관객도 굉장한 공포를 기대했는데, 사실 이 영화는 무서움의 정도만 놓고 보면 좀 약한 편이라고 보거든요.

박꽃 : 기대와 달랐다고 해도 ‘오, 놀라운데?’라는 긍정적인 반응이 생길 수 있는 반면 <랑종>은 그렇지 못했다는 거죠. 기대와 달라서 ‘실망인데?’로 관객 의견이 모였다면, 왜 그렇게 된 건지를 얘기해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무섭진 않았으나 뚝심은 있었다

박은영 : <랑종>이 찝찝하고 불쾌한 영화인 건 맞아요. 그런데 일반적인 공포 영화가 줄 수 있는 그런 장르적 재미랑은 좀 거리가 있어요. 사람을 깜짝 놀라게 하는 장면은 거의 없잖아요. 개인적으로 공포물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편인데도 <랑종>은 그렇게까지 보기 괴롭지는 않았거든요.

박꽃 : 애완견을 삶아서 머리를 자르고, 갓난아이를 해치고. 사실 이런 게 텍스트로 표현하면 굉장히 세게 느껴지는 소재인데, 막상 <랑종>의 클라이맥스라고도 할 수 있는 퇴마의식 전 일주일간의 CCTV 영상을 보면 시각적으로 너무 끔찍해서 도저히 못 보겠다 싶은 장면은 아니거든요. 게다가 프로듀서 역할을 맡은 나홍진 감독의 전작 <추격자>나 <곡성>같은 작품을 떠올리면, 영화의 전반적인 흐름도 심장이 쫀득댄다거나 ‘헉’할 만큼 공포스럽지 않아요. 페이크 다큐멘터리 형식을 취했는데 중반부까지는 루즈한 느낌이 들 정도고요.

이금용 : 금기를 어기는 장면을 연출했는데 관객이 그렇게까지 괴롭거나 거슬리지는 않았다면, 그 자체로 영화의 기획 의도에서 벗어난 것 아닐까요.


박은영: 그런데 반종 피산다나쿤 감독이 국내 언론과 인터뷰하면서 <랑종>은 인간의 믿음과 본질에 대한 이야기라고 했어요. 혐오감을 주는 게 영화의 목적은 아니었다는 거죠.

박꽃: 그 이야기에 대해 좀 더 설명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박은영: 주인공 ‘밍’은 계속해서 악행을 쌓아온 인간 가문의 후손이고, ‘님’은 신을 모시지만 믿음이 흔들리는 인간이잖아요. 극 중 배경은 개고기를 금지했음에도 개고기를 즐겨 먹는 마을로 나오고, 악령에 빙의된 사람들도 우리가 아는 좀비처럼 변하는 게 아니라 네 발로 짐승처럼 걸어 다녀요. 그런 면에서 <랑종>은 단순히 공포감, 혐오감을 주려는 목적의 영화라기보다는 ‘대가를 치르는 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빙의와 퇴마라는 소재로 다룬 작품 같아요. 클리셰도 많지만, 비슷한 류의 장르 영화 안에서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 측면이 있어요. 바위, 논에도 신이 있고 사람이 다른 존재보다 우월하지 않다는 걸 강조한 듯 해요. 전 그런 면이 좋더라고요.

박꽃: 이 영화를 좋게 평가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면, 이제는 좀 식상해진 말이지만 ‘열정’이 있는 작품처럼 느껴졌다는 거예요. 배우들이 마지막 장면에서 네발짐승 흉내를 내듯 기어 다니며 열연하는데, 그게 자칫하면 섬뜩하기보다는 우스워 보일 여지도 있는 장면이거든요. 심지어 전문 배우가 아니라 그 마을에 사는 주민을 섭외했다고요. 감독과 제작진이 <랑종>이라는 프로젝트를 일반인에게 설명하고 출연까지 하게 만들었던 과정은 물론이고, 아마추어 배우들이 맡은 장면을 끝까지 진지하게 연기해내기까지 서로 얼마나 진심으로 소통했을까 생각이 드는 거죠. 클라이맥스에서는 프로젝트를 밀어붙이는 제작진의 뚝심이 확실히 느껴졌다고 할까요. 그래서 손쉽게 ‘별로’라고 말할 수는 없는 영화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금용: 전문 배우들에게도 기본적인 동선과 상황에 대한 가이드만 알려주되 구체적인 대사는 정하지 않고 촬영한 대목도 많다고 하더라고요. 그게 가능하려면 배우와 연출자 사이에 굉장히 많은 사전 소통이 있어야 하고, 서로가 의도하는 바도 잘 파악해야 하잖아요. 주인공 ‘밍’역을 맡은 나릴야 군몽콘켓 배우가 20대 초반인데 신인 배우로서 엄청 큰 도전이었을 거예요. 그런 면에서 대단하다는 생각입니다.

나홍진 감독 역할은? <곡성>과 비교하면?

박꽃: 나홍진 감독이 프로듀서로 참여하면서, 그의 역할에 대한 궁금증도 많았는데요. 기획, 투자 단계를 넘어 촬영에 돌입한 순간부터는 거의 개입하지 않는 일반적인 프로듀서의 역할과는 좀 달랐던 것 같아요. 반종 피산다나쿤 감독이 태국 현지에서 촬영한 영상을 나홍진 감독에게 보낸 뒤, 그에 대한 의견을 받아 다시 현장에서 수정을 했다고 들었어요. ‘님’ 역을 맡은 싸와니 우툼마 배우도 나홍진 감독이 자신의 태국어 대사를 외우고 있었고, 이 장면에서 이렇게 했으면 좋겠다는 디렉션을 반종 피산다나쿤 감독을 통해 굉장히 디테일하게 전해줬다고 하더라고요.

이금용: ‘밍’ 역을 맡았던 나릴야 군몽콘켓 배우도 같은 이야기를 했어요. 원안을 나홍진 감독이 쓰기도 했고, 여러모로 일반적인 프로듀서 역할과는 달랐던 것 같아요.

박은영: 반종 피산다나쿤 감독은 나홍진 감독과의 작업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중압감’이었다고 했어요. 태국에서는 자기 이름에 대한 신뢰가 있는 편이라 대부분 본인 의도대로 연출할 수 있었지만 <랑종> 때는 자기 작품을 (촬영하자마자) 선보여야 했으니 부담이 심했다는 거죠. 물론 일방적으로 의견을 제시하는 게 아니라 서로 대화하고 협력해서 합의에 이르렀다고 설명했지만, 어쨌든 나홍진 감독이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프로듀서의 위치를 훨씬 넘어서서 작업한 작품인 건 분명해요. 연출 크레딧은 반종 피산다나쿤 감독에게 줬지만 사실상 공동 연출처럼 진행된 것 아닐까요. 그리고 <랑종>에 참여한 스태프들은 이미 그런 여건을 충분히 전제하고 작업에 임했을 거고요.


박꽃: 나홍진 감독이 프로듀서 이상의 역할을 했다는 면에서 보면, 그의 대표 흥행작 <곡성>과 이번 작품을 비교하는 시각도 그리 무리는 아닐 텐데요. 사실 <곡성>과의 가장 큰 차이점은 ‘얼마나 궁금증을 유발하느냐’였던 것 같아요. <곡성>도 어차피 말 안 되는 이야기였던 건 마찬가지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보는 내내 도대체 ‘일광’(황정민)은 한국인이야 일본인이야? ‘외지인’(쿠니무라 준)은 인간이야 악마야? 하는 지점들이 너무 궁금했거든요. 영화가 끝난 뒤에는 관객이 모두 평론가가 되어서 자기 생각과 해석을 더해가면서 영화에 대한 입소문을 일으켰고요. 그런데 <랑종>은 그런 류의 재미가 덜해요. 인물도, 이야기도 자기만의 해석을 보태 이야기할 만한 여지가 별로 없어요. 마지막이 돼서 ‘님’은 사실 자기가 진짜 바얀 신을 모시는 건지조차 잘 모르겠다고 고백을 하는데, 관객은 그 대사를 듣기 전까지는 그 인물이 그런 혼란을 겪었다는 것조차 모르니까요.

이금용: 아무래도 <곡성>이 우리나라의 신앙을 다루면서 사람들에게 좀 더 익숙한 지점이 있었던 반면 <랑종>은 태국 신앙을 다루기 때문에 다들 그 내용을 잘 모르는 측면도 있는 것 같아요. 태국이라는 나라도 여행할 때나 한 번 가봤을 법한 곳이니까요. 영화에서 주어지는 정보도 그리 충분하지 않고요. 그래서인지 영화 뒷부분에 대한 해석을 하는 몇몇 콘텐츠가 <곡성> 때처럼 나오고 있고, 나름대로 인기가 있는 것 같아요.

박꽃: 저도 태국 북부 이싼 지방에 대한 배경지식을 풀어놓은 글을 보고 ‘아! 그럴 수 있겠네’ 싶었어요. 태국에서도 다소 낙후됐다고 여겨져 온 곳이라 종교에 대한 믿음이 더 투철한 경향이 있다는 해석이었어요. 합당한 미래를 추측할 수 없을 때 사람들은 기복신앙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잖아요. ‘님’역을 맡은 싸와니 우툼마 배우도 이싼 지방은 과거 경제적으로 소외된 지역이었다고 말하더라고요. 그런 걸 알고 나서 영화를 다시 생각하면 좀 더 흥미로운 지점은 있어요. 문제는 그런 흐름이 계속해서 이어지지를 않는다는 거죠. 태국을 좀 아는 사람들이 ‘영화 배경에 이런 맥락이 있다더라’ 하고 전해주는 얘기를 읽을 뿐이지, 그게 영화를 흥행시킬 만한 유의미한 입소문으로 이어지지 못한다는 거예요. 그건 중간중간 관객을 충분히 궁금하게 만들어야 할 영화적 장치가 약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흥행은 어디까지

박꽃: 스코어 예측으로 목요수다회를 마무리를 해볼까 해요. 개봉 첫 주에 손익분기점을 돌파했다는 소식이 들려오는데, 정작 뒷심은 약한 것 같아요. 이런 상황에서는 100만 관객 돌파가 쉽지 않아 보입니다.

박은영: 바로 다음 주에 <모가디슈>가 개봉하면서 스크린 수를 더 빼앗아가지 않을까 싶네요. <방법: 재차의>도 같은 때 개봉하고요. 상영관 규모는 이미 첫 주말 1,400여 개로 정점을 찍고 이번 주 700여 개까지 떨어진 상황이니까요.

이금용: 스크린 수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100만을 넘기기가 쉽지는 않을 것 같네요.


2021년 7월 29일 목요일 | 글_박꽃 기자(got.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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