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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수다회] 스티븐 스필버그 첫 뮤지컬 영화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2022년 1월 13일 목요일 | 이금용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이금용 기자]

[목요수다회]는 무비스트 기자들이 같은 영화를 보고 한 자리에 모여서 편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코너입니다. 관람 후 나눈 대화인 만큼 스포일러가 잔뜩 포함돼 있으니 관람 전 독자는 열람에 주의해주세요!

리얼리티와 소수자 감수성 반영

이금용: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동명의 원작 뮤지컬과 앞서 1961년에 개봉한 영화 버전이 있는데요. 이번 영화엔 원작엔 없던 캐릭터가 생기고 캐스팅도 전작보다 설정에 더 충실하게 이뤄졌어요. 1961년 작에선 백인 배우 나탈리 우드가 ‘마리아’ 역을 맡았는데 이번에는 백인-히스패닉 혼혈의 레이첼 지글러가 캐스팅 됐거든요. 실제 푸에르토리코 출신 출연진도 많고요.

박꽃: <모가디슈>에서 꼭 모가디슈 출신이 아니어도 모가디슈 사람과 비슷하게 생긴 배우를 현지에서 캐스팅했던 것처럼 이번 영화도 기본적으로 사실에 충실했던 거 같아요. 얼마 전 스필버그 감독이 윤제균 감독과 나눈 대담을 보면 일부러 푸에르토리칸 댄서를 캐스팅했다고 하더라고요. 리얼리티를 훨씬 살린 거죠.

이금용: ‘발렌티나’(리타 모레노)라는 캐릭터도 추가됐는데요. 1961 버전에서는 ‘토니’가 일하는 가게의 주인이 ‘닥’ 이라는 남자였는데 이번엔 ‘닥’의 부인인 ‘발렌티나’가 그 역할을 대신했어요. 여담이지만 1961년 영화에서 ‘아니타’ 역을 맡았던 배우 리타 모레노가 이번엔 ‘발렌티나’로 출연하고 영화 기획에도 참여했다고 하네요. 스필버그 감독이 리타 모레노 배우를 위해 설정에 변주를 준 게 아닌가 싶어요.

박꽃: 새로 추가된 캐릭터를 논하자면 '애니바디'(아이리스 메나스)도 빼놓을 수 없어요. 트렌스젠더 캐릭터라는 이유로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 카라트, 바레인, 오만, 쿠웨이트 등의 걸프 국가에서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상영이 금지됐거든요. 이슬람교 자체가 동성애를 금기시하다보니 문제가 된 거 같아요. 그래서 마블 <이터널스>는 게이 캐릭터 '파스토스'(브라이언 타이리 헨리) 부분을 제거하고 나서야 아랍에미리트에서 상영될 수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박은영: 하지만 ‘애니바디’의 경우 비중도 꽤 있고 소수자 감수성을 반영해서 추가된 캐릭터인 만큼 없애기 어렵지 않을까 싶네요. 개인적으론 영화를 보면서 ‘애니바디’가 ‘토니’를 이성적으로 좋아하는 인상을 받았어요. 동료 이상의 감정이라고 할까. 극 후반부로 갈수록 그런 인상이 강해졌고요. 그런데 각색 과정에서 꼭 트랜스젠더 캐릭터를 넣었어야 했나 의문이 들긴 해요. 극에 이질적이지 않게 잘 녹아 들었지만 그래서인지 크게 돋보이지도 않는다는 느낌이거든요.

이금용: ‘애니바디’라는 이름도 주목해볼 만 한데요. 애니바디라는 단어는 누구나 될 수 있다는 뜻인데 실제로 극중 ‘애니바디’도 ‘제트파’와 ‘샤크파’를 오가며 동향을 살피고 소식을 전하는 역할을 하잖아요. 여기에 ‘애니바디’가 아직 수술을 하지 않은 트렌스젠더이기도 하고요. 이런 특성을 두루 반영한 은유적인 이름이 아닐까요.

박꽃: 거장 감독이 트랜스젠더 캐릭터를 묘사했다는 것만으로도 일부 관객에겐 반갑고 동질감이 느껴질 수 있을 거 같아요. 영화를 보면 다른 ‘제트파’ 일원들이 좀 망나니처럼 묘사되잖아요. (웃음) 경찰서 시퀀스만 봐도 그들이 정상적이지 않은 캐릭터라는 게 잘 드러나거든요. 극중 별별 캐릭터가 다 있기 때문에 트랜스젠더라고 해서 특별히 튀어 보이지는 않았던 거 같아요.

주연 배우 안셀 엘고트와 레이첼 지글러, 싱크로율 및 케미는?

박꽃: 안셀 엘고트는 <베이비 드라이버>(2017) 때 특유의 리듬감과 저음에 둔한 듯 기민한 목소리 때문에 음악 영화에 잘 어울리는 거 같다고 생각했어요. 로맨스도 괜찮았어요. 안셀 앨고트가 전형적인 미남은 아닌데, 로맨스에 특화된 얼굴인 거 같아요. 피지컬도 좋고 소년미가 있어서 대부분 여배우들과 케미가 좋더라고요.

이금용: 안셀 엘고트가 <안녕, 헤이즐>(2014) 같이 절절한 로맨스에는 잘 어울리는데 뮤지컬 영화와 잘 어울리는지는 의문이에요. 노래 실력도 거슬릴 정도는 아닌데 대단히 뛰어나다는 인상도 못 받았어요. 영화 내내 활약이 너무 적기도 했고요. 논외로 안셀 엘고트는 미성년자 성폭행 의혹으로 최근 작품 활동을 멈춘 상태인데요. 북미에선 특히나 이런 문제에 더 예민한 편이라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의 주연으로 나온다는 점이 논란이 됐어요.

박은영: 저도 안셀 엘고트가 ‘토니’ 역에 썩 잘 어울린다고는 못 느꼈어요. 다시 생각해보니 노래나 군무 장면이 적은 게 역량 부족 때문일 수 있겠네요. 그리고 방금 언급된 논란을 알고 영화를 보면 연기의 진정성까지도 의심될 수도 있을 거 같아요. ‘마리아’ 역의 레이첼 지글러는 안셀 엘고트에 비해 상대적으로 굉장히 잘 부르긴 하지만 두 사람이 비주얼적으로는 좀 안 어울리지 않나 싶어요. 캐릭터가 매력적으로 느껴지지도 않았고요.

박꽃:댄서 출연진이 많아 난이도 있는 군무 장면이 가능했을 거예요. 안셀 엘고트가 그걸 그대로 소화할 수 있었을지는 의문이네요. 실제로 불가능하지 않았을까요.(웃음) 저는 안셀 엘고트 논란을 모른 상태로 영화를 관람했는데 솔직히 그걸 알고 있었다면 160여 분에 달하는 영화를 보러 가지 않을 거 같아요.

이금용: 전 레이첼 지글러는 좋았어요. 4년간 스쿨 프로덕션 뮤지컬에 참여한 만큼 실력도 보장되어 있었고, 콜롬비아 혼혈이라 외적인 부분도 캐릭터 설정에 잘 부합되고요. 그런데 상대 배우인 안셀 엘고트와의 케미가 좋은지는 모르겠어요. 로맨스에서 배우들의 얼굴 합이라는 게 있잖아요. 그런데 둘은 그게 잘 안 맞아서 그런지 묘하게 케미가 안 사는 거 같아요.

박은영: 개인적으로는 그 두 배우보다 제트파 ‘리프’(마이클 파이스트)가 더 눈에 띄더라고요. 거칠고 반항적인 이미지를 잘 간직하고 있어서요. 어딘가 불안정한 느낌도 좋았고요.

이금용: 저는 ‘아니타’ 역의 아리아나 데보스가 좋았어요. 2011년부터 뮤지컬 배우로 활동했고 뮤지컬 영화 <더 프롬>(2020), <해밀턴>(2020)에 출연한 적 있더라고요. 그래서인지 연기와 노래, 춤 실력까지 빠지는 것 없었던 거 같아요. 특히 댄스 장면들에서 독보적이더라고요.

박꽃: 캐릭터는 전반적으로 약했다는 느낌이에요. 영화 중에서도 캐릭터와 배우가 잘 맞아떨어져서 시너지가 나는 작품이 있는데 이건 전체적인 조화가 좋긴 해도 그런 느낌은 없다는 거죠. 대신 신예나 무명 배우에게 기회를 준 점은 높이 사요.

뮤지컬 영화로서의 완성도와 매력은?

박은영: 지난해 개봉한 <인 더 하이츠>(2021)를 보면 노래도 역동적이고 훨씬 생기 넘치거든요. 그런데 이번 영화는 그에 비해 신나는 분위기는 아니에요. 퍼포먼스는 괜찮았지만 뮤지컬적인 완성도가 엄청 높은 것 같지도, 영화적인 풍성함이 뛰어난 것 같지도 않고요. 물론 영화를 보면서 중간중간 인상적인 지점은 있었어요. ‘리프’와 ‘베르나르도’(데이비드 알바즈)의 칼 싸움 시퀀스를 지나면서 ‘이 영화는 퍼포먼스에 집중하면 재밌겠다’는 생각으로 바뀌었고, 총 싸움 시퀀스 이후엔 ‘토니’와 ‘마리아’의 로맨스에 마음이 움직이긴 했거든요. 엄청난 감흥까진 아니었지만요.

박꽃: <맘마미아>(2008), <라라랜드>(2016) 등 역대 뮤지컬 영화 흥행작을 보면 노래가 따라 부르기 쉽거든요. 그런데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따라 부를 만한 노래가 없어요. 연극이나 브로드웨이 공연 같은 느낌은 잘 살렸지만 음악이 대중적이지 않다는 거죠. 퍼포먼스의 경우 신선함은 없지만 촘촘하게 설계된 거 같아요. 특히 말씀하셨던 칼 싸움 시퀀스는 확실히 인상적이더라고요. 하지만 스티븐 스필버그라는 감독 이름을 떼고 본다면 관객과 평단의 반응이 지금보다 덜 우호적일 수도 있을 거 같아요.

이금용: 그래도 스필버그 감독의 첫 뮤지컬 영화인데 노련함이 엿보였던 거 같아요. 연출적인 구멍이 보이지는 않았어요. 다만 퍼포먼스는 요즘 트렌드에 비해 고전적이고, 연출도 너무 무난한 거 같아요. 입에 감기는 노래가 없다는 점도 확실히 약점이고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왜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를 선택했나.

박꽃: 새로운 도전에 의의를 둔 게 아닐까 해요. <레디 플레이어 원>(2018)처럼 본인 작품 세계의 정수가 녹아든 영화가 있는가 하면, 이런 도전도 필요한 거죠. 이준익 감독의 <변산>(2018)을 보고는 이준익 감독의 도전인 동시에 감독이 새로운 시대와 소통하고자 한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이번 영화는 그런 느낌을 못 받았거든요.

박은영: 공감해요. 오프닝 시퀀스부터, ‘제트파’와 ‘샤크파’ 구성원, 이들이 맞붙는 장면에서의 동선, 엔딩 시퀀스 등 1961년 작과 거의 유사하거든요. 고치려면 얼마든지 고칠 수 있었겠지만 원작 뮤지컬의 팬이라 크게 손대지 않은 게 아닐까 싶어요. 새로운 것을 창작해내기보단 좋아하는 작품을 본인 손으로 재현하는 것 자체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고요. 하지만 신세대에게 관람 포인트가 될 만한 지점은 거의 없다고 봐요.

이금용: 제 생각에도 젊은 관객에게는 크게 어필될 거 같진 않아요. 원작 뮤지컬의 뼈대가 되는 스토리인 ‘로미오와 줄리엣’부터가 너무 고전적인 스토리이기도 하고 사실 개연성도 떨어지잖아요. 처음 만난 남녀가 하루 만에 목숨을 걸 정도로 서로에게 빠진다는 게 쉽게 납득되지는 않죠. (웃음) 물론 <로미오와 줄리엣>(1996)에서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클레어 데인스의 얼굴이 서사이긴 했지만요. 아무튼 이번 작품은 이야기 자체도 평면적인데 자극적인 부분도 없고 러닝타임도 길어서 어떤 관객에겐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박은영: 결과적으로는 뮤지컬이나 1961년도 영화에 향수를 지닌 관객 또는 고전적인 로맨스 스토리를 좋아하는 관객에겐 좋은 선택지가 될 거 같아요. 원작 스토리에서 바뀐 게 없으니 거기서 오는 재미가 없더라고요.

박꽃: 아무래도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의 포인트는 고전의 재해석인 거 같아요. 원작을 이미 접해봤을 법한 사람들에겐 60여 년이 지나 리메이크 됐다는 점이 포인트일 테고, 요즘 관객에겐 감독의 유명세나 완성도 높은 퍼포먼스가 매력적일 거고요. 반대로 서사 면에서는 좀 부족하지 않나 싶네요. 원작에서 변한 게 거의 없는데 아무래도 원작의 자장 안에 있으니까 완전히 뜯어 고치기는 어려웠겠죠.

흥행과 오스카 수상 가능성은?

박꽃: 북미에서 꽤 많은 스크린을 점유했는데도 흥행 성적은 그에 못 미치고 있어요. 국내에서도 딱히 엄청나게 흥행할 거 같진 않고요. 그래도 북미 개봉 후 꾸준히 관객이 들긴 했어요. 아무래도 감독 이름이 있으니 흥행 성적이 부진하다고 상영관을 확 줄이지는 않았을 거에요. 영화에 딱히 크게 흠 잡을 부분도 없고요. 어떤 부문이라고 확정할 수는 없지만 오스카상에도 노미네이션될 거 같고요.

박은영: 로튼토마토에서 12일(현지시각) 기준 신선도 지수 93%, 팝콘 지수 94%를 얻었는데 블라인드로 평가해도 이 점수를 받을 수 있을지 의문이네요. (웃음) 제 생각엔 범작 수준이거든요. 스필버그 감독의 <레디 플레이어 원>도 국내에선 크게 흥행하지 못해서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도 북미만큼의 성적은 내지 못할 거라고 예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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