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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더풀 데이즈’ 언론 시사회
“하청 아닌 주체로서의 자신감 얻었다” | 2003년 7월 2일 수요일 | 임지은 이메일

A. D. 2142년. 얼핏 까마득하게 멀게만 느껴지는 미래. 그러나 <원더풀 데이즈>가 바라보는 미래 공간은 아마도 오늘날과 다르지 않은 세계인 것 같다. 미래를 꿈꾸는 인간과 소중한 것을 지키려는 인간, 그리고 꿈과 현실 사이에서 방황하는 인간들이 발딛고 살아가는 곳이라는 점에서. 비록 핵전쟁으로 지구가 돌이킬 수 없이 피폐해지고 매연과 가스로 뒤덮인 하늘은 검은색으로 변해버렸다고 해도.

선택받은 도시 ‘에코반’과 버림받은 도시 ‘마르’를 배경으로 잃어버린 푸른 하늘을 되찾으려는 수하와 제이, 시몬의 엇갈린 사랑과 운명을 그려낸 애니메이션 <원더풀 데이즈>가 어제(7월 1일) 언론 시사를 가졌다. <원더풀 데이즈>는 영화 전편이 멀티메이션(Multi Layered Animation) 방식으로 제작되었다는 점에서도 숱한 화제를 낳았던 작품. 멀티메이션이란 2D(셀 애니메이션)+3D(컴퓨터 그래픽)+미니어처 실사 촬영이 결합된 형태로, <쥬라기공원>이나 <해리 포터>, <반지의 제왕> 등의 영화들에서 색다른 영상미와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해 부분적으로 사용된 바 있지만 90분 짜리 영화 전편이 이 방식으로 제작되기는 <원더풀 데이즈>가 최초.

부천 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된 후 티켓이 15분만에 매진되고, 칸 마켓에서 프랑스에 50만 불에 판매되는 쾌거를 달성하는 등 낭보들이 속속 전달되면서 점차 호기심을 증폭시켰던 <원더풀 데이즈>는 개봉일이 연기되어 팬들의 아쉬움을 자아냈었다. 언론 시사를 통해 확인한 바에 따르면 과연 예고편에서 이미 공개된 대로 결과물의 비주얼은 상상 이상. 이 날의 시사회에는 김문생 감독과 황경선 프로듀서, 그리고 주인공 수하를 연기한 최지훈 배우 등이 자리해 영화 상영과 질의 응답 시간을 가졌다.

Q: 제작에 7년이라는 시간이 소요된 걸로 안다. 개봉을 앞둔 감독의 소감은?
김문생 감독: 애 하나 낳은 기분이다. 내 분신 같은 작품이고, 이렇게 완성된 결과물을 개봉할 수 있게 된 것이 감격스럽기만 하다.

Q: 개봉이 당초 계획보다 늦어졌는데 보강해야 할 부분이 무엇이었나?
김문생 감독: 큰 줄기를 수정하지는 않았지만 군데 군데 정리해줄 부분들이 있었다. 원래 이미지가 강한 영화이기는 하지만 모니터 시사 결과 감정이입이 다소 취약하다는 평들이 있어 보다 감정선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결과적으로 러닝타임이 종래의 95분에서 87분으로 줄어들었고, 따라서 보강했다기보다는 오히려 들어냈다는 말이 어울릴 것 같다. 시기적으로 보더라도 관객 규모가 커지는 여름방학 시즌이 개봉시기로 가장 적절하다고 생각했다.

Q: 비주얼에 비해 시나리오가 약하다는 점은 한국 애니메이션의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되어 왔다. 사실 <원더풀 데이즈>도 예외는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데.
김문생 감독: 모든 한국 애니메이션이 다 시나리오가 약하다는 건 지나치게 편협한 생각이다. 단지 드라마만을 알고 싶다면 책을 읽으면 된다. 보편적인 스토리에 음악과 효과 등 모든 극적인 요소들이 총체적으로 결합한 볼거리를 지향했다. 인물이 특이하다기보다 보편적인 것도 그런 의도에서 유래한다. 시몬, 수하, 제이 세 주인공은 한 인물에서 유래한 세 가지 다른 성격으로 보아야 할 것 같다. 시몬이 현실을 의미한다면 수하는 이상을, 그리고 제이는 방황하는 자아를 지칭한다. 모든 인간이 그런 세 가지 면을 다 가지고 있지 않은가. 헐리우드 영화처럼 구구절절 설명이 많은 작품은 아니지만, 타겟을 적어도 영 어덜트 세대 이상으로 잡고 있는 만큼 크게 무리 없으리라 본다. 한 번 봐서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 두 번 보면 될 테고, 또 보면 더 재미있으리라 장담한다(웃음).

Q: 녹음할 때의 에피소드는?
최지훈 성우(수하 역): 감독님이 워낙 어감 하나하나까지 심혈을 기울이고 다듬더라. 그 탓에 대본도 여러 번 수정됐다. 그 점이 어려운 점이라면 어려운 점이고... 또 시몬을 연기한 오인성씨나 제이 역의 은영선씨는 모두 프로페셔널 성우지만 나는 연극배우 출신으로 성우는 처음이다. 그렇다보니 성우로서의 테크닉은 전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고. 그래서 캐릭터가 달리는 부분에서는 실제로 숨차게 뛰고, 맞는 부분에서는 내 목을 실제로 조르면서 연기했다. 그런 점들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Q: 주인공 수하가 영화 초반에 쓰고 나오는 가면이 하회탈이다. 게다가 암호도 한글 철자를 풀어놓은 형태라 흥미로왔다. 한국적인 코드가 많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 오히려 세계 무대에 내놓는 데 있어서 장애가 되는 건 아닐까?
김문생 감독: 굳이 탈이 아니더라도 가면은 설정 상 필요했다. 립싱크, 호흡 같은 걸 고려할 필요가 없어 편해지는 데다(일동 웃음) 느낌상으로도 여러 모로 효과적이라고 생각해서. 하회탈은 원래 참 좋아하는 소품이고, 평소 한글 풀어쓰기에도 관심이 있었다. 디지털 시대에는 한글도 하나의 풀어쓴 기호로 받아들여지는 것 아닌가. 참, 암호 문구는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라는 성철 스님의 말이다. 배경들도 대부분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것들에 착안해 디자인했다. 예를 들어 바이크를 타고 에코반을 향해 질주하는 씬을 보면, 양수리 종합 촬영소에서 팔당댐을 지나 서울까지 오는 길을 모델로 했다. 마르의 경우에는 청계천이 모델이고, 델로스 콘트롤룸의 전경은 절의 연등행사에서 착안한 것이다.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전경들을 미래로 뒤집어 생각했고, 그것이 관객들에게도 익숙한 모습이다 보니 ‘우리 것’이라는 느낌이 자연히 많이 묻어 나오게 된 것 같다.

Q: 126억이라는 제작비가 든 대작이다. 제작비 회수 포트폴리오는?
황경선 PD: 관객 목표는 사실 100만 정도로 잡고 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기록을 뛰어넘을 수 있었으면 하는 게 희망이기는 하지만. 우선은 해외 판매에 크게 치중하고있는 편이다. 126억 중 20억은 영어 버전 제작비로 책정되어 있다. 스토리로 말할 것 같으면 오히려 해외에 더 어필하는 듯. ‘한국 애니메이션’ 자체에 대한 인지도가 낮은 탓에 애로도 적지 않지만 [버라이어티]나 [에인 잇 쿨 뉴스] 같은 해외사이트에는 “비주얼이 놀랍고 스토리도 아름답다”는 <원더풀 데이즈>에 대한 호평들이 이미 올라와 있다. FULL 3D 애니메이션을 제작중인 한 영국 회사의 경우에는 우리 영화가 그 정도의 제작비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믿지 않으려고 하더라. 적어도 500억 이상이 든다는 거다.

Q: 선례가 없는 만큼 시행착오도 많았을 거고, 그만큼 얻은 노하우도 특별할 것 같다. 지금까지의 노하우를 통해 기획하고 있는 새 작품이 있다면?
김문생 감독: 차기작의 경우 현재 시나리오는 초고가 나온 상태. 시대극과 SF 등 많은 장르들이 결합한 형태가 될 것이다. 캐릭터를 실사로 할지 애니메이션으로 할 지는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실사로 제작해보고 싶은 욕심이 있긴 하지만 워낙 돈이 많이 들기 때문에. 현재 프랑스 회사로부터 합작 제의가 들어온 상태인데, 자금을 끌어들일 수 있다면 실사도 충분히 가능하게 될 것 같다. 아직 확실히 계획이 선 건 아니지만 우리라고 해서 하청만 하라는 법 없다는 자신감이 생긴 것이 가장 큰 소득일 것이다.

취재: 임지은
촬영: 이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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