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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평선을 바라보다
쁘띠마르땅 | 2001년 9월 11일 화요일 | 박우진 이메일

정수리를 따갑게 쪼아대던 여름 햇살의 뾰족한 가시가 점점 뭉툭해져 가는 9월. 어김없이 한 계절에 이별을 고하고, 시나브로 일년의 반이 훌쩍 넘어버렸음을 문득 실감하는 환절기. 마음을 친친 옥죄어 오던 텁텁한 여름 바람의 고삐가 느슨해지는 이 때, 자칫 서글픈 마음의 여백을 감싸며 애틋한 감정을 북돋으려는 따뜻한 영화들이 속속 개봉하고 있다.

생명을 부여받은 인간은 누구나, 탄생에서 출발하여 죽음을 향한 여정을 겪는다. 하릴없이 흘러가는 시간을 차근차근 밟아 나가는 그 웅성거리는 과정이 곧 삶일 게다. 몇 번의 죽음을 목도하다 보니 드는 생각인데, 삶의 막바지에서 죽음으로 도달하는 경계에는 풀쩍 뛰어넘어야 할 막막한 터울이 웅크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다만 얇은 선 하나가 어렴풋이 그어져 있을 것 같다. 마치 계절과 계절 사이의 구분처럼, 삶과 죽음도 하나의 시간 선상에 차례대로 놓여져 있을 뿐.

알츠 하이머 병을 앓아 거동도 못 한 채 죽음의 평화만을 기다리고 있는 할아버지 앙투완과, 소아암 판정을 받았지만 아직은 삶의 희망이 더욱 절실한 장난꾸러기 사내아이 마티. <쁘띠 마르땅>은 삶의 끝자락에서 저만치 죽음을 바라다 보는 두 사람을 내세워 삶과 죽음의 이야기를 조곤조곤 풀어 놓는다.

‘삶과 죽음’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택하면서도 이 영화는 아득하게 가라앉지 않는다. 동정이 지나쳐 신파조로 흐르지도, 무리한 해피엔딩을 위해 황당무개한 기적을 등장시키지도, 그렇다고 허무주의와 비관주의로 스크린에 껌껌한 먼지를 드리우지도 않는다. <쁘띠 마르땅>에서 가장 돋보이는 미덕은 담담한 관조의 시선이다. 감독은 놓치기 쉬운 유머를 영화 곳곳에 감칠맛나게 뿌려둠으로써 ‘죽어 가는’ 사람이 아닌, ‘살아 있는’ 사람의 그림을 그리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 이 여유와 달관의 경지는 도리어 삶을 치열하게 부대낀 연륜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죽음에 바짝 다가선 삶은 안달하거나, 고요해진다. 뒷걸음질치기 위해, 혹은 길을 둘러 돌아가기 위해 아둥대거나, 죽음에 몸을 내맡기며 조용히 기다리는 것이다. 마티가 전자라면, 앙투완은 후자이다. 마티는 이미 죽음의 세계에 더 다가가 있는 듯한 앙투완에게서 어쩌면 자신의 미래를 본다. 늦은 밤까지도 잠들지 못하고 끊임없이 왁자한 말썽을 부리는 마티의 모습에서 마냥 철없고 귀여운 아이의 맑은 마음을 넘어, 제 운명과 분투하는 의지가 읽힌다. 그래서 앙투완에게 손을 내밀어 곧 자신에게도 드리워질 지 모르는 그림자를 걷어내려 애쓰는 마티는 관객에게 애달픈 웃음을 자아낸다.

하지만 결국 영화는 두 주인공의 소통을 이루어냄으로써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 있는 두 가지 상반된 모습이 상통한다고 이야기한다. 카메라는 따뜻한 연민의 시선으로 두 인물을 공평하게 응시한다. 북적이는 크리스마스 파티가 끝난 후, 할아버지와 아이가 바다와 육지의 경계에 서서 망망한 수평선을 가만히 바라보는 마지막 장면은 가슴을 아리는 뭉클한 애잔함으로 다가온다.

죽음을 빌미로 삶을 돌아보는 영화. 거창한 장광설이 아닌, 잔잔한 소곤거림만으로도 삶의 진실에 부쩍 다가갈 수 있음을 보여준 영화 <쁘띠 마르땅>. 생명이 순환한다면 죽음에 맞닿은 인간의 형상이야말로 가장 순수하지 않을는지. 각박한 생활에 치여 순수한 감동을 기다려온 관객에게 꼭 어울릴 포근한 영화이다.

3 )
ejin4rang
수평선을 바라보다   
2008-10-16 17:07
rudesunny
너무 너무 기대됩니다.   
2008-01-21 16:09
kangwondo77
수평선을 바라보다   
2007-04-27 15:34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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