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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를 모르는자, 참된 사랑을 모른다네.
마리포사 | 2001년 9월 28일 금요일 | 권혁 이메일

당신을 가장 매혹시키는 단어는 무엇인가. 확신에 차 있던 청춘의 한때, 필자에게 그것은 쉬운 질문이었다. 그것은 언제나 "자유"였다.(그러나 지금은 다소 혼란스럽다) 세월이 흐르고 시대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것들이 있다. 인간의 삶 속에서 변지 않는 미덕, 영혼에 한번 깃들면 져버릴 수 없는 가치들... 이 영화는 그것들을 일깨워준다. 우리 가슴 깊은 곳으로부터.

30년대 내전 발발 직전의 스페인의 평화로운 풍광에 둘러싸인 어느 한적한 작은 마을. 허약하고 예민한 여덟살 꼬마아이 몬초는 입학을 앞두고 학교에 대한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마침내, 등교 첫날. 매를 휘두르는 무서운 선생님을 상상하며 겁에 질려있던 몬초는 등교 첫날부터 바지에 오줌을 싸고, 이로 인한 수치심에 학교를 뛰쳐나오고 만다. 그러나, 담임 선생님인 돈 그레고리오 선생님은 고매한 지성과 온화한 품성을 지닌 인격자. 그는 직접 찾아와 몬초를 달래, 학교수업에 참여시킨다. 선생님의 인품에 감명 받은 몬초는 선생님을 따르게 되고, 선생님 또한 심약하게만 보이는 몬초의 명민함을 알아본다. 그리고 몬초의 부모를 비롯한 보수적인 마을사람들 역시, 매와 고함이 아닌 사랑과 격려로 어린 학생들에게 자율성을 이끌어내는 선생님을 존경하게 된다. 따사롭고 포근한 봄이 오자, 열정적인 자유정신의 소유자인 선생님은 야외 수업을 시작한다. 아이들에게 참새들이 구애하는 방법과, 완벽한 나선형인 나비의 혀에 대하여 설명하며 자연의 경이를 깨우쳐주고, 자유가 주는 즐거움을 만끽하게 해주는 것. 한편 스페인 정국은, 자유민주주의를 내세우는 공화당정부와 교회를 주축으로 정부에 반기를 드는 극우보수세력이 팽팽히 맞선 채 폭풍전야의 불안에 휩싸이게 되는데...

"마리포사"는 "산 세바스찬 영화제"를 휩쓸고, 스페인 내 여러 유수 언론들에 의해 최고의 작품으로 뽑힌 영화다. 그만큼 작품성과 재미가 검증받은 것. 산 세바스찬 영화제는, 90년대 중반 정지영 감독의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에 외국어영화상을 안겨주어, 우리에게도 그리 낯설지만은 않은 스페인의 아카데미라 할 만한 영화제이다. 이 영화가 자국 내에서만 인정받았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 "성장기의 정치적 폭풍을 통해 바라본 인류를 그린 풍경화", "인간 존엄을 환기시키는 Fernando Fernan Gomez의 아름다운 연기, 지적이며 감동적인 눈물" 각각 뉴욕타임즈와 영국 ABC방송의 <마리포사>에 대한 극찬이다. 이 영화의 국제적 평가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코멘트들. 미국에서도 장기상영 중이라는 이 영화에서 그레고리오 선생님 역을 맡은 Fernando Fernan Gomez는 스페인 내에서는 국민배우로 추앙받는 연기자라고 한다. 영화를 보면 충분히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격변하는 역사 속에 커가는 어린아이의 성장영화 형식을 취한 이 영화는, 우리에게 다소 익숙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그것은 마치 <시네마천국> <스타메이커> <말레나>등 주세페 토르나도레의 영화들과도 흡사하다. 격변하는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휘말리는 인간 군상들의 모습들을 성장하는 어린아이의 눈을 통해 바라보는 것은 그만큼 보편적인 성장영화의 표현양식이 되었다. 심지어 스필버그나 소더버그 같은 명장들도 이미 오래 전에 <태양의 제국> <리틀 킹> 등으로 이런 형식에 도전한 바 있다. (비록 온전한 성공은 거두지 못한 채 물러서야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리포사>의 시적 서정미 넘치는 영상과 가슴 저미는 이야기가 던져주는 재미와 감동은 결코 흔한 것이 아니다. 감히 단언하건데, 이영화는 시대를 초월한 미덕이 무엇인가를 보여주고, 마음 속에 묻어둔 순수를 일깨우는 보석 같은 작품이다.

그레고리오 선생님은 몬초에게 인생의 비밀을 가르쳐주겠다며 속삭인다. "지옥이란 멀리있지 않아. 지옥은 우리 마음 안에 있는 거야. 증오와 잔인함 그것이 지옥이란다." 그가 우리에게 설파하는 인생의 아포리즘들은 사회를 향한 목소리로 연결된다. 그는 교사직을 은퇴하는 자리에서 마을사람들에게 말한다. "인간이 한번 자유를 맛보게 되면, 그 무엇도 그의 자유를 향한 의지를 꺾지 못할 것입니다. 스페인에서 한 세대라도 자유를 맛보며 자라난다면, 그때부터 스페인은..." 그의 이런 이상과 신념을 이해하는 관객이라면, 실로 가슴이 뜨거워지지 않을 수 없다.

필자는 영화를 보고, 대학시절 즐겨듣던 노래의 한 대목이 떠올랐다. "따스한 봄 햇살이 나를 부르는 5월이 왔네. 친구는 이야기하네. 내 어깨에 손을 얹고. 자유를 모르는 자, 참된 사랑을 모른다네..." <마리포사>는 스페인어로 "나비"란 말. 이 영화에서 "나비"는 그레고리오 선생님에 대한 은유이다. 그럼 꽃은? 물론 그의 어린 학생들.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가능성과 희망을 보고 힘을 얻는다. 그는 그 댓가로 자유의 꽃씨를 아이들에게 퍼뜨려주고 떠나가는 것이다.

사실 혼란스런 정치적 상황 속에 성장하는 소년 몬초가 겪는 사건들은 결코 특별한 게 아니다. 자연과 생명에 호기심을 갖고, 성에 눈 뜨고, 공공연한 가족의 비밀을 알게되고, 세상의 질서를 수상해하면서도 차츰 동화되고... 그것은 자연스러운 삶의 과정, 이미 우리에게 체화된 이야기들이다.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소설 "개미"에서 이렇게 말했다. "자연은 있는 그대로만 묘사해도 그 자체가 훌륭한 이야기가 된다. 그러고보면 이야기란 어려운 것이 아니다" 작금의 한국영화를 보노라면, 많은 영화인들이 가슴 깊이 되새겨볼만한 얘기란 생각이 든다.

3 )
ejin4rang
자유를 달라   
2008-10-16 17:05
rudesunny
너무 너무 기대됩니다.   
2008-01-21 16:05
kangwondo77
자유를 모르는자, 참된 사랑을 모른다네   
2007-04-27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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