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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에 대한 새로운 시각
태양유이 | 2000년 7월 3일 월요일 | 오상환 기자 이메일

97년 제 1회 부천 국제 판타스틱영화제에서 대상을 수상한 영화 [키친]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태양유이]는 매우 낯선 영화처럼 보일 것이다. 요시모토 바나나의 동명소설을 영화화한 [키친]에서 동화적이고 만화같은 정서와 순수한 사랑의 울림을 만들어냈던 엄호 감독은 70년 대 말부터 홍콩 뉴웨이브를 이끌며, 임청하와 장만옥이 일제 침략기의 중국 역사를 통과하는 여인들로 분한 [홍진]이나 [귀향]과 같은 작품을 통해서 중국 역사의 어두운 질곡을 펼쳐보이는데 주력해왔다. [태양유이]는 그가 [키친]으로 젊은 관객들에게 더욱 친근 하게 다가갈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기 바로 전, 아픈 역사 속 인간 군상의 힘겨운 일상과 외로움의 그늘에 초점을 맞춘 작품이다. 중국 역사와 개인의 조우를 통해 역사 한 가운데 버려질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의 처절한 고통을 이야기하는 엄호 감독의 화법이 가장 그럴 듯하게 전달되는 영화다.

1920년, 군벌세력들의 혼전이 난무하던 중국의 시골마을에서 빈농 천우와 그의 아내 유유는 허기를 극복하며 간신히 살아간다. 어느 날 마을의 군부세력가인 중대장 반호가 유유에게 매료되어 돈으로 그녀를 사려 하고, 천우는 갈등 끝에 아내를 반호 곁으로 떠나 보낸다. 반호와의 잠자리를 완강하게 거부하던 유유도 반호가 천우의 빚을 갚아주면서 점점 반호에게 더 가깝게 다가가게 된다. 시간이 흐른 후 천우는 유유를 찾으려 애쓰지만, 유유는 자신을 '물건'이 아닌 '인간'으로 대하는 반호에게 빠져들게 된다.

[태양유이]는 생존이라는 숙명적인 과제 앞에서 초라해질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슬픔을 담담한 어조로 들려준다. 스크린에 펼쳐지는 처절한 역사는 비통함의 정서를 조성하기에 충분하지만, 엄호의 연출은 담담하게 인물들과의 거리를 둔 채 역사의 한 공간을 목격할 뿐이다. '태양이 식은 날'이라는 제목처럼 격정의 소용돌이 뒤에 남겨진 서러움의 온기마저 차갑게 응시할 뿐, 따스한 열기를 담아내려 하지 않는다. 온통 붉은 색깔로 뒤덮인 화면은 중국인들의 열정과 끈기를 표현하며 억척스러운 그들의 삶의 정신에 대한 찬가를 보낼 듯 하지만, 인물들의 감정으로부터 한 발짝 물러나는 시선 덕분에 묘한 감정의 고리를 만들어낸다. [붉은 수수밭]이나 [홍등]과 달리 붉은 색감이 이데올로기적 상징을 뚜렷이 드러내지 않는 것 역시 이런 의도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역사의 어두운 터널을 통과하는 것은 미묘하게 얽힌 세 사람의 애증관계이다. 사랑과 증오 사이에는 연민이라는 벽이 엷은 막을 형성하고 있을 뿐, 사랑은 감정의 굴절 속에서 새롭게 피어난다. 따뜻하게 보듬어 안는 공간의 안락함은 인물들의 감정이 빚어내는 착각에 의해 얻어질 뿐, 운명에 맞서는 인물들에게 따스함은 쉽게 허락되지 않는다. [태양유이]의 가장 핵심적인 축을 이루는 세 사람의 애증관계는 거꾸로 중국 근대사를 읽는 지점으로 기능한다. [태양유이]는 여느 중국 영화처럼 중국 근대사가 거두어야 할 수많은 오점들을 비판하지만, 애써 비난의 목소리를 드높이지 않는다. 역사의 틀에 머문 애증의 감정을 통해 역사를 우회적으로 설명하는 여느 영화들 속에서 [태양유이]는 인간의 내면에 대한 깊이있는 묘사에 힘입어 독보적인 의미를 획득한다. 마치 [은밀한 유혹]과 같은 설정으로부터 출발해 동화적인 공간의 정서마저 이끌어내는 솜씨는 [태양유이]가 사랑이라는 화두를 평범하게 그리지 않았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태양유이]의 또 다른 공신은 여주인공 유유 역을 연기한 장유. 이 영화의 실질적인 제작을 겸한 장유는 '감정'을 알게 되며 번민하는 유유 역을 무난히 연기해냈다. 다소 평범하게 변화되는 여인의 감정이 그녀의 세심한 감정묘사에 힘입어 세밀하게 살아있다. 한편 유유의 시선을 통해 진행되는 이야기 답게 남성 캐릭터들이 다소 평이하게 묘사되는 것은 이 영화의 가장 큰 약점이라 할 수 있다. 중대장 반호에게 아내를 빼앗기고, 뒤늦게 아내를 되찾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빈농 고강과 권력에 눈이 멀어 존엄성을 상실해가는 중대장 반호 모두 시대의 어두운 무덤을 박차고 강한 의지를 드러내는 인물들인데 반해 지나치게 평이한 캐릭터로 묘사되어 있어 강한 생동감을 기대하기 힘들다.

또한 중대장 반호가 죽을 고비를 넘기는 장면에서 드러나듯 다소 과장된 장면 묘사는 이 영화의 틀을 형성하던 강한 긴장감을 상쇄시켜버린다. 전통적 요소를 담아내려는 의도가 다소 엉뚱하게 펼쳐져 이야기의 흐름을 끊어버리는 결과로 나타난 것이다.

하지만 [태양유이]는 장 이모우의 영화와는 달리 선전적인 이데올로기를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영화다. 인간의 감정이 만들어내는 폭을 통해 역사의 너비와 고통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자연스러운 정서의 흐름이라는 것이 왜 중요한 것인지를 보여주며, 제 5세대 감독들의 영화들과는 분명한 차이점을 둔다. 선택에 대한 색다른 시각을 제시하는 후반부의 반전은 이 영화가 주는 가장 충격적인 메시지이다.

3 )
ejin4rang
포스터가 이쁘다   
2008-11-12 09:43
ljs9466
기대되는 영화!!   
2008-01-14 15:37
rudesunny
기대됩니다.   
2008-01-14 13:5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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