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련한 중생들이여, 이제 눈을 뜨라
디 아더스 | 2002년 1월 7일 월요일 | 우진 이메일

"언젠가 내가 꿈에 나비가 되었다. 훨훨 나는 나비였다. 내 스스로 기분이 매우 좋아 내가 장주인 것을 알지 못했다. 갑작스레 잠을 깨니 틀림없이 예전의 장주였다. 장주인 내가 꿈에 나비가 된 꿈을 꾸었는지, 나비인 내가 장주가 된 꿈을 꾸었는지 알지 못했다. 사람과 나비 사이에는 반드시 구별이 있다. 이것이 이른바 만물의 변화인 것이다."

"꿈을 꿀 때는 꿈인 줄을 모른다. 어떤 이는 자기가 꾼 꿈을 해석하기도 하다가 깨어난 뒤에야 비로소 꿈인 것을 알게 된다. 장차 큰 깨달음이 오니 그 때에는 생명이야말로 큰 꿈인 것을 우리가 발견한다."

[디 아더스]의 비밀이 밝혀지는 순간, 머리 속 한 자락에 웅크리고 있던 장자의 '호접지몽' 이야기가 슬금 솟아올랐다. 장자가 나비꿈을 꾼 것인지, 나비가 장자꿈을 꾼 것인지. 언뜻 보면 먼지를 잔뜩 뒤집어 쓴 채 교과서에나 자리잡고 있을 법한 이 고루한 화두를, [오픈 유어 아이즈]의 감독 .....는 공포와 스릴러를 빌어 섬찟하게 풀어낸다.

[디 아더스]는 고전적인 공포영화의 형식에 척척 발을 맞추어 나간다. 퀴퀴한 전설 한 꾸러미를 품고 있을 듯, 오래된 대저택과 유난히 신경이 예민한 안주인. 집을 둘러싼 뭉클한 안개와 짙은 숲, 의뭉스럽고 스산한 분위기. 그리고 딸아이가 감지하는, 그들 이외의 무엇. 영화의 전반적인 도식이 이 정도로 정리된다면 영화의 방향 또한 가닥이 잡힌다. 처음에는 딸아이의 단순한 장난으로 치부되던 '무엇'이 스크린 구석구석에서 자근자근 밟히며 불안감이 증폭되고, 격정적인 공포가 모두를 뒤덮은 후(이 부분에서 관객까지 동감할 수 있다면 성공한 공포영화!) 쿵덕쿵덕 긴박한 순간, 드디어 실체를 드러내는 '무엇'. 그렇다면 [디 아더스]가 감춰둔 '무엇'이란...? (오, 나도 말하고 싶어 입이 근지럽다. 하지만 예의 상^^ 스크린을 뒤집고, 극장 공기의 흐름을 바꾸는 반전이라는 것만 밝혀둔다.)

[디 아더스]가 진실과 허구의 아슬한 경계에 위태롭게 놓인 작품이라고 전제해 보면, 영화 속 대립구도들이 툭툭 또렷해진다. 우선, 빛을 보지 못하는 아이들을 통해 빛과 어둠의 관계를 짚어낼 수 있다. 두꺼운 커튼이 드리워진 침침한 실내에 갇혀 있는 아이들(혹은 우리들)은 빛과 어둠, 즉 진실과 허구를 극명하게 상반된 것으로 인식하게 된다. 그들은 투명한 창문으로 넘어 들어오는 빛을 어머니에 의해 차단당함으로써, 빛과 어둠 사이의 어슴푸레한 변화를 알지 못한다. 따라서 앤과 니콜라스는 빛의 이면이 어둠일 수 있다는, 빛과 어둠이 공존할 수 있다는 가능성마저 닫힌 흑백논리의 틀을 강요받는다.

이러한 점은 그들이 어머니인 그레이스(니콜 키드만)로부터 받는 가르침에서도 드러난다. 그레이스는 아이들에게 성경에 대한 믿음을 주입하려 한다. 감독이 굳이 '성경'을 선택한 이유는 분명해 보인다. 성경이란 수천년의 인류사를 거치며 활자화되고 정형화된 고정관념인데다가, '종교'라는 가장 굳건하고도 무모한(그래서 때로는 위험하기까지 한) 권위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특히, 기독교는 서구사회를 '지배'한 사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므로, 성경이란 이미 어두운 집안의 세계를 튼튼히 쌓아올리고 지켜나가야 했던 그레이스의 생각을 가장 적합하게 대변할 수 있는 소재였던 것이다.

하지만 성경은 인간의 지침을 간단히 설명해 놓은 책이 아니라, 도리어 인간이 제 스스로의 답을 헤아려 나갈 수 있도록 숱한 물음을 품고 있는 책이기에, 감독은 성경을 통해 그레이스-인간이 규정한 한 가지 해석에 매달리는 맹목성-를 깨우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깨달음은 비밀이 밝혀진 후, 자신의 소신에 늘 당당하던 그레이스의 흐릿한 독백 "엄마도 잘 모르겠구나, 무엇이 옳은지." 에서 잘 나타난다.

이 영화에서 가장 흥미로운 캐릭터는 그레이스이다. 그녀는 아이들을 향해 한량없이 넘치는 애정과 바늘 끝처럼 날카롭게 곧추선 집착을 동시에 보여준다. 그녀의 성격은 포근한 모성의 파괴적인 속성이라는 '전통적인' 모순에 다름 아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레이스로부터 발견하는 모순은 이 영화의 주제와 닿아있다. 진정한 진실의 변죽을 건드리며 그것을 어설프게 단정짓고 믿어버리는 인간의 무지, 그 이중성의 모순이다.

또한 [디 아더스]에서는 유난히 '여성'이 맥을 이룬다. 집안의 질서를 정돈하는 역할은 전쟁에 나간 남편 대신 그레이스에게 부여되고, 세 명의 하인들 중 의지를 조종하는 사람은 밀스 부인이며, 어머니의 가르침을 거스르며 생활을 개척하는 아이도 딸인 앤이다. 이제까지의 세상을 남신이 지배했다면, 앞으로는 여신의 세계가 도래할 것이라는 한 여성학자의 조심스러운 예지가 문득 떠오른다. 그것은 단순히 세상의 무게중심이 남성에서 여성으로 옮겨 간다는 예언이라기 보다는, 유일신 중심의 종교에서 벗어나 좀더 다양하고 풍요로운 '믿음'을 접하게 될 것이라는 '희망'이다.

이 영화는 우리가 의도하지 않았고, 의식조차 못한 채 다만 젖어들고 있었던 습관적인 사고의 유리벽을 깨뜨리려는 시도이다. 그리고 앤처럼 보이지 않는 것을 희미하게나마 감지하고 손을 뻗어보려 했던 관객에게는 분명 즐거운 경험이 될 작품이다. 또한 화려하고 찬란한 [물랑루즈]의 여신 니콜 키드만이 있다. 그녀는 오히려 [디 아더스]에서 제 역할을 찾은 듯, 관객을 향해 파르르 긴장된 섬광을 연신 쏘아댄다.

(총 5명 참여)
ejin4rang
반전이다   
2008-10-16 16:30
bjmaximus
<식스 센스>의 아류작 소리를 들을 수 밖에 없다.   
2008-09-18 08:48
rudesunny
너무 너무 기대됩니다.   
2008-01-21 18:15
kangwondo77
리뷰 잘 봤어요..좋은 글 감사해요..   
2007-04-27 15:42
ldk209
식스 센스 때문에 묻혀진 영화... 그러나 반전을 제외하고 전반적으로는 훨 낫다....   
2007-01-31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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