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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미로를 헤매는 아름다운 모순
밀리언 달러 호텔 | 2002년 6월 3일 월요일 | 우진 이메일

미명의 순간을 가르는 한 남자. 채 가시지 않은 어둠으로 혼란스럽던 그의 삶은, 터 오는 빛을 향해 몸을 내던지는 순간 명료해진다. 삶은, 경이로운 것.

빔 밴더스는 이 영화를 통해 [베를린 천사의 시]에서의 '삶 예찬론'을 변주한다. 그에게 삶이란 그것이 안고 있는 모순에도 불구하고, 아름답다. 관객을 매료시켰던 감독 특유의 영상미가 [밀리언 달러 호텔]에서도 빛을 발한다. 문득문득 눈가에 울리는 아름다운 화면이 삶의 시각적 이미지를 창조한다. 슬로 모션과 점프 컷 등을 활용, 시공간을 조율하는 빔 밴더스의 손길은 섬세하고 유려하다. 영상과 어우러지는 언어와 음악이 그 효과를 더한다. 톰톰의 어눌한 말투로 읊어지는 시의 구절마다, 영상의 여백을 메우는 음악 선율마다 삶의 아름다움은 촉촉이 배어있다.

영화는 삶을 인식하는 계기로 죽음을 선택한다. 삶에 익숙해져 무디어진 감각은 죽음에 다가선 순간 예민해지는 법. 추락하는 그 남자의 눈에서 소소한 일상은 경이로운 삶의 풍경으로 다시 태어난다. 영화가 내건 '죽음의 추락'은 삶의 울타리를 벗어나, 삶을 '발견'하기 위한 '낯설게 하기' 장치로 작용한다.

그러나 아직 삶의 구덩이에서 허우적대는 사람의 눈은 그 모순에 얽매인다. 이름은 사치스럽지만 사실 빈민 구제소나 다름없는 '밀리언 달러 호텔'은 삶의 모순을 대변하는 공간이다. 자신이 비틀즈의 멤버라고 주장하는 딕시, 꿈꾸는 듯한 눈빛으로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며 책 속에 묻혀 사는 엘로이즈, 죽은 이지가 자신을 사랑했다고 주장하는 비비안 등 이 곳의 투숙객들은 혼란하게 얽힌 진실과 거짓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딛고 있다. 이지의 죽음, 그리고 진실을 밝혀내려는 경관 스키너의 등장으로 밀리언 달러 호텔의 진실과 거짓은 수면 위로 떠올라 팽팽한 긴장 상태에 놓인다.

이러한 긴장 속에서 '진실은 무엇인가'라는 철학적 물음이 풀려난다. 진실을 밝히기 위해 투입되었지만 자신의 경직된 사고에 갇혀 눈앞에 있는 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스키너의 모습, 여러 사람의 믿음이 진실을 만들어낸다며 담합하는 밀리언 달러 호텔 투숙객들의 모습에서 진실을 의심하는 삐딱한 시선이 읽힌다. 특히 경이로운 삶의 표상인 TV는 생생한 현실감을 획득함으로써 진실에 가까운 매체로 인식됨과 동시에 진실을 과장하고 왜곡할 수 있는 위험성 또한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모순된 진실의 메타포이다.

삶에 관한, 진실에 관한 굵은 성찰은 각각 장엄한 무게를 지니나 서로 타협하지 못한다. 둘은 조화되지 못한 채 분열되어 있다. 삶의 영원한 신비인 사랑으로 그들을 아우르려 하지만, 영화가 그려내는 삶의 모순과는 얼마쯤 동떨어진 사랑이 그 모든 것을 끌어안기에는 부족해 보인다.

수미쌍관 기법으로 가두어진, 혼란한 미로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삶의 아름다움은 감독이 예찬하는 만큼 공감하기 어렵다. 하지만 영화의 아름다운 파편이 빚어내는 애잔한 감성의 잔상은 분명, 길다.

3 )
ejin4rang
아름답다   
2008-10-16 16:04
rudesunny
너무 너무 기대됩니다.   
2008-01-21 18:31
kangwondo77
리뷰 잘 봤어요..좋은 글 감사해요..   
2007-04-27 15:57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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