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검색
검색
왈가닥 노처녀의 재벌 길들이기
투 윅스 노티스 | 2003년 2월 12일 수요일 | 구교선 이메일

똑똑하고 재능이 있지만 가난한(?)여성-바로 나 같은, 혹은 당신 같은-이 백만장자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눈깜짝할 사이에 화려하게 신분상승을 한다는 흔하디 흔한 이야기가 계속해서 영화화되는 것은 이 꿈 같은 이야기가 말그대로 모든 여성들의 꿈이자 환상이기 때문이다. 월드컵의 유행문구였던 ‘꿈은 이루어진다’ 라는 모토 아래 늘 꾸고 싶은, 질리지도 않는 바로 그런 꿈. 이제는 30대 후반인 산드라 블록과 40대에 접어든 휴 그랜트, 이 노장(?) 배우들의 로맨틱 코미디 <투 윅스 노티스>가 사랑 받을 수 있는 이유는 바로 그 꿈을 토대로 하기 때문이다.

뉴욕의 부동산 대기업 웨이드 주식회사의 최고경영자 조지 웨이드(휴 그랜트 분), 얼굴마담일 뿐 실세는 바로 그의 형 하워드. 그러나 업무능력은 고사하고 얼굴만 보고 여자 고문변호사를 채용해 사사건건 부도덕한 스캔들만 일으키는 조지에게 하워드는 정신 똑바로 박힌, 똑똑한 변호사를 채용하지 않으면 모든 주식을 빼앗겠다는 최후통첩을 한다. 고민하던 조지 앞에 나타난 구세주가 있었으니, 바로 구민회관을 부수고 세워지는 웨이드의 콘도미니엄 설립을 따지러 온 환경운동가이자 변호사인 루시 켈슨(산드라 블록). 상황이 상황인지라 날아갈지도 모르는 적지 않은 용돈에 마음이 급했던 조지는 땍땍거리고 따져드는 루시의 뛰어난 언변과 똑 부러지는 요점정리에서 그녀의 능력을 짐작, 구민회관 보존을 미끼로 고문 변호사로 채용한다. 그러나, 사무실 크기가 그 사람의 업무 능력을 나타낸다는 이상한 공식을 성립시키는 조지와, 돈과 연애도 포기하고 정의를 위해 무료변론이나 법률상담, 환경운동에 열중하는 루시. 참 달라도 너무 다른 이들의 만남은 시작부터 순조롭지 않다.

오프닝에 뿌려지는 두 사람의 어릴 적 사진들이 그들이 얼마나 다른 환경에서 자라왔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듯이 영화는 결국 천방지축인 조지의 이기적인 행동에 질려버린 루시가 다른 사람을 채용하라는 2주간의 예고기간(Two Weeks Notice)을 주면서 본격적인 ‘사랑 만들기’ 국면에 접어든다. 그리고 ‘타인만이 우리를 우리답게 만든다’ 라는 루시의 영화 속 명대사처럼, 서로 너무나도 다른 둘은 어느 새 서로에게 길들여져 있음을 알게 된다. 넥타이와 양말 하나를 고르려 해도 루시가 필요해진 조지. 이쯤 오면 관객들이 주인공들보다 먼저 이 둘의 마음속에 싹트는 감정을 눈치채게 되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로맨스의 주역인 바람둥이 킹카 휴 그랜트의 녹슬지 않은 철부지 재벌 연기는 그의 본성이 의심될 정도로 잘 어울린다. 술을 마시고 뻗은 뒤에 코까지 골아대는 산드라 블록 역시 <미스 에이전트>에서도 엿보였던 망가짐을 두려워하지 않는 특유의 유머감각이 총총히 빛난다. 영화 같은 구도의 인물들이 만화처럼 사랑에 빠지는 사이사이에 틈틈이 뿌려진 유머들, 다른 누구를 생각할 필요도 없이 딱 맞는 배우들, 이것이 <투 윅스 노티스>의 장점이다.

두 주연과 함께 포스터에서도 넉넉한 자리를 배정받은, 관객을 눈을 이끄는 또 하나의 주인공은 바로 영화의 배경이 되는 뉴욕이다. 뉴욕의 숨겨진 명소들을 스크린으로 옮겨온 아름다운 풍광들은 관객들의 눈을 사로잡으며 한껏 낭만적인 분위기를 고취시킨다. 루시와 조지가 헬리콥터를 타고 날며 내려다보는 빌딩들에서도 현대적인 세련됨과 고풍스러운 아름다움을 동시에 갖춘 뉴욕의 건축미학이 드러난다. 배우들의 대사를 통해 빌딩의 역사가 따로 설명될 정도로 뉴욕을 사랑하는 영화 <투 윅스 노티스>는 맨하탄의 화려한 빌딩숲과 코니 아일랜드 해변가의 소박한 주민 아파트, 화려한 조명의 브루클린 다리까지 하나의 도시 안에 공존하고 있는 다양한 풍광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훑어낸다.

물론 <투 윅스 노티스>도 물건인 스타 두 명을 캐스팅 하고도 보통의 로맨틱 코미디들이 가지는 한계를 뛰어넘지 못하는 아쉬움은 여전하다. ‘미운 오리새끼 백조되기’, 혹은 ‘신데렐라 스토리’를 적절하게 혼합한 이야기는 한치의 벗어남도 없이 공식을 답습하고 두 인물 사이의 갈등을 빚어내는 구조 역시 억지스러울 정도로 틀에 박혀있다. 사랑을 위해 부를 포기해야 하는 설정과 지극히 여성스런 라이벌의 출현으로 빚어진 삼각관계, 판에 박힌 결말까지도. 관객들은 스타성을 타고난 두 배우에게서 무언가 좀 남다른 재미를 기대하지만 그런 점에서 <투 윅스 노티스>는 힘이 딸린다. 휴 그랜트의 이기적이고 재벌 연기는 더 이상 그에게 맞는 역할은 없을 정도로 완벽하지만 너무 익숙하고, 미운 오리에서 백조가 되는 산드라 블록 역시 극적인 연애를 성취시키기에는 낭만적 요소가 부족해 영화 속 로맨스를 약화시킨다.

그러나 돈이 없다며 헬리콥터를 가족과 함께 나눠 타야 한다고 걱정하는 조지의 마지막 대사에서(이들의 사랑이 앞으로도 순탄치만은 않을 것이라는 것은 명백하지만) 슬며시 만족스러운 웃음이 지어지는 이유는 우리 모두가 바라고 있는 로맨틱 코미디의 해피엔딩, 그에 대한 맹목적인 애정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투 윅스 노티스>는 관객들의 그런 희망을 끝까지 저버리지 않는다.

1 )
ejin4rang
노처녀를 길들여라   
2008-10-16 15:06
1

 

1

 

1일동안 이 창을 열지 않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