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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래판 같은 육체들의 검소한 잔치
언디스퓨티드 | 2003년 3월 7일 금요일 | 서대원 이메일

한국에서 오랫동안 인식돼온 권투라는 스포츠의 사회적 의미는, 없는 자가 신분 상승을 꾀하고자 선택한 출세?의 도구라는 측면과 그러한 노동계급의 내면에 깔린 순박한 분노와 힘겨움을 외부로 표출시키는 억압된 욕망의 해방구 역할을 하는 수단으로 다분히 팽배하게 깔려 통용돼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기에 실베스타 스텔론의 <록키>와 마틴 스콜세지의 <분노의 주먹>이 흘러가는 세월의 무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공소시효 없이 우리들로부터 끊임없이 되새김질되고 소환되는 것이다.

이처럼 권투는 스포츠 이상의 의미가 함의되어 있기에 사각의 링과 그 안에 감금된 선수 아닌 전사는 관전하는 관객들에게 원시적인 쾌락을 던져주면서도 문명의 어떤 이기(利器)도 선사해줄 수 없는 진한 카타르시의 정서를 카운터펀치 날리듯 강하게 심어준다. 하지만 더 이상 궁기에 허덕이며 살아가는 이들이 전과 비해 확연히 줄어들어서인지 권투는 화폐의 비대해짐과 동시에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그리고 우리는 버라이어티 한 쇼와 크게 다를 바 없는 타이슨의 소식과 권투를 소재로 한 할리우드 영화를 간간히 접하면서 사소하고 가늘게 그 스포츠에 대한 자그마한 기억을 이어나가고 있을 뿐이다.

때문에, 이 시기에 당도한 선 굵은 마초 영화를 생산해냈던 월터 힐의 <언디스퓨티드>는 불행하게도 <록키>처럼 명실상부하게 대중의 가슴 한켠에 또아리를 틀고 긴긴시간 동안 남아 있기에는 매우 지난한 상황에 처해 있다고 볼 수 있다.

아내를 살해한 혐의로 종신형을 언도받고 수감된 전 헤비급 챔피언 먼로 허친(웨슬리 스나입스)는 마피아와 교도소장의 의해 은밀하게 하지만 거하고 화려하게 펼쳐지는 교도소 내 복싱 경기에서 68승 무패를 달리는 불패신화의 챔피언이다. 한데, 어느 날 이 무적의 복서에게 도전자가 나선다. 강간혐의로 먼로와 같은 교도소로 이감된 현 세계 헤비급 챔피언 조지 아이스맨 챔버(빙 레임스)가 바로 그다. 이들은 육신을 혹사시키며 각자가 이루어 놓은 지금의 위치에서 한 발짝도 뒤로 물러설 수 없기에 결국, 한 명이 링 바닥에 완전히 자빠져 일어나지 못하는 그 순간까지 쌈박질을 한다는 조건을 달고 일대 혈전의 명승부를 펼친다.

이처럼 <언디스퓨티드>는 권투를 소재로 한 영화이다. 권투'영화'보다는 권투에 방점을 둔 '권투'영화. 그래서 현재의 할리우드가 삐까번쩍한 컴퓨터 그래픽과 특수효과로 버무려 제조해낸 가공의 스펙터클 영화와는 분명 그 성격을 달리한다. 사치스러운 꾸밈에의 덧입힘이 거세된 채 철저히 날 것의 육체에 의해 관장된 영화라는 사실이다. 다소, 잽싸 보이는 푸드웍처럼 움직이는 카메라와 인물들의 프로필을 소개하는 과다한 자막을 제외한다면. 그럼으로써, 영화는 허구의 스펙터클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이 마당에 실재하는 육체의 스펙터클이야말로 진정한 볼거리가 아니냐는 시위를 하듯 빨래판처럼 단단해 보이는 그들의 검은 육질의 몸에 많은 것을 부여한다. 특히, 막판에 이루어지는 먼로와 아이스맨의 난타전은 이러한 사실을 잘 받쳐준다.

대신, <언디스퓨티드>는 전언했듯 권투에 초점을 맞춘 '권투'영화이기에 영화적인 측면에서의 긴장감이나 잔재미는 권투에 비해 상당히 덜한 편이다. 전 헤비급 챔피언과 현 헤비급 챔피언이 라스베가스의 특설링이 아닌 교도소 내 마련된 무대에서 벌이는 초유의 경기였던 만큼 영화는 좀더 메인 게임에 앞서 오프닝 게임에도 신경을 써야 했다는 얘기다. 다시 말해, 싸움의 팽팽한 긴장감과 박진감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관객의 손에 땀을 쥐게 할 만한 긴박감 넘치는 사건 사건의 끈들을 사각의 링 밖에 영화는 늘어트려 놨어야 했다.

결국, 사각의 링을 더 후끈하게 만들 수 있음에도 그러지 못한 이 같은 점은, 맨살의 육체와 육체가 맞부딪히는 육중함의 향연에 불청객으로 작용했다. 하지만 한국최초의 세계 챔피언 김기수와 박종팔, 장정구, 김득구 등과 같은 불후의 복서들을 아득하게나마 떠올릴 수 있다는 사실은 <언디스퓨티드>의 미덕이자 권투영화만의 매력이다.

2 )
ejin4rang
고수   
2008-10-16 15:02
js7keien
어느 세계든지 숨어있는 제일의 은둔고수가 있기 마련   
2006-10-03 15:24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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