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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 내 머리 속을 읽었나?
하늘정원 | 2003년 3월 31일 월요일 | 임지은 이메일

“성심성의껏 죽여줄게요.” 아마도 <하늘정원>의 출발점은 잠든 영주(이은주)의 머리맡에 놓아둔 오성(안재욱)의 쪽지에 적힌 글귀에 있을 것 같다. 도리 없이 죽음 속으로 걸어 들어가야 한다면 마지막을 지켜줄 동반자가 필요하다는 것. 함께 있다면 순간도 영원과 같으리라는 것. “난 아직 살아있다”며 울먹이는 영주의 절규를 들으면 예측은 좀더 확신에 가까워진다. 그러나 영화는 의도에 대한 갖가지 추측들만을 던져준 채 비틀거린다.

27세의 메이크업 아티스트인 영주는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천성적으로 밝고 씩씩한 성격의 소유자. 그러나 그녀에게는 남모를 비밀이 있다. 바로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위암 말기 환자라는 것. 한편 호스피스 병원의 의사인 오성은 유년기의 아픔 때문에 쉽게 타인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더구나 직업 탓에 늘 죽음과 가까이 있는 그의 매일은 삭막하기만 하다. 죽기 전 이 세상에 작은 흔적이라도 남기고 싶은 영주는 먼저 오성에게 손을 내밀지만, 만남도 헤어짐도 두렵기만 한 오성은 주춤거린다. 그러나 결국 서로를 받아들이는 두 사람. 그렇게 “그 남자의 첫사랑과 그 여자의 마지막 사랑”은 시작되고, 영주는 오성이 운영하는 병동 ‘하늘정원’의 새 식구가 된다.

“또 시한부인생?” 위암 말기환자의 사랑이야기, 라는 정보를 들은 순간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렇게 외칠 법하다. 게다가 영주역을 맡은 배우는 본인의 말을 빌리면 “이번 영화로 ‘죽는 역’만 세 번째”인 이은주. <하늘정원>이라고 해서 그 사실을 모른 채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그 시점에서 영화는 다른 대안을 모색하고자 한다. "그렇다면 이건 어떨까? 죽어가는 그녀가 ‘다른 경우들에 비해 좀더’ 씩씩하다면? 생애 마지막 사랑으로 택한 대상이 다름 아닌 의사라면? 그리고 그 또한 굳건하고 지고지순하게 여자를 보듬어주기에는 너무도 상처받은 인물이라면?" 그렇게 생각하고 보면 문제는 좀더 명확해진다. 시한부인생을 다룬 이야기들이 자주 진부한 신파가 되는 이유는 불륜, 출생의 비밀 등속을 주제로 한 영화가 그렇듯 문제제기 자체에 있는 게 아니라 구태의연한 답안에 있는 것이다.

<하늘정원>이 드러내는 가장 큰 문제도 바로 그것. 영화는 관객의 예상에서 한 발치도 벗어나지 못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예상’의 반대말은 뒤통수를 얼얼하게 만드는 반전을 가리키지는 않는다. 간절해지는 것은, 요컨대 최소한의 응용. 가령 이런 상황을 떠올려보기로 하자. 바야흐로 둘 사이의 절절한 러브씬이 전개되는 중. 여주인공은 뒷모습이 쓸쓸한, 저 외로운 남자를 두고 곧 먼 곳으로 떠나야 한다. 너무도 사랑하는데, 사랑함으로 해서 슬픔을 주어야 한다는 사실이 그녀에겐 못내 안타까운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관객은 머리 속으로 곧 나올 대사를 예상해본다. “음.. [사랑해서 미안하다]라든지 [나 너무 욕심이 많죠?] 그 비슷한 얘기가 나오겠군. 슬픈걸.”이라고 생각한 그 순간에, 영화는 관객이 예상한 바로 그 문장과 한 글자도 다르지 않은 대사로 치고 들어온다. “내 처지도 모르고.. 나 너무 이기적이죠?” 치밀하지 못한 내 머리 속의 요약본을 영화가 그대로 보여줄 때의 관객의 심경은 다음 중 어떤 것일까? 슬플까, 감동적일까, 아니면.... 답변은 각자의 몫으로 남겨두겠다.

‘하늘과 가까운’ 방에서 혼자 기거하는 영주는 읽지도 않는 신문을 잔뜩 구독한다. “웬 신문이 이렇게 많냐”는 질문에 그녀가 들려주는 답은 이런 것. “이대로 갑자기 내가 죽어도, 아무도 그걸 알지 못할까봐. 누군가 문이라도 열어보라고.” 그런가 하면 오성과 영주가 함께 점집을 찾았을 때 점장이는 영주에게 이렇게 말한다. “하는 일마다 아침 기운이 충만하니 이 이상 좋을 수가 없네.” 죽음을 눈앞에 둔 불치병 환자에게 들려주는 이 말은 지극한 역설로 관객의 웃음을 끌어내지만, 동시에 이것은 영화가 마음 속 깊은 곳에 품고 있던 모종의 미션을 의미하기도 한다. 죽기 전의 며칠이 아침처럼 새롭고 행복한 시간이 될 수도 있다― 영화는 그런 가정 아래 예쁜 공간의 예쁜 사람들을 너무 침울하지 않게 담아내고자 한다. 비록 전혀 새로울 것 없는 설정이라고 해도 여전히 죽음은 무섭고 사랑은 아름답기에, <하늘정원>의 시도가 실패로 돌아갈 때 관객은 갑갑함 이상의 안타까움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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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jin4rang
진짜 잔잔한 감동   
2008-10-16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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