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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 빈 강정'들에게 보내는 정신차리라는 메시지
아메리칸 사이코 | 2000년 10월 25일 수요일 | 모니터 기자 - 은현정 이메일

흔하디 흔한 스릴러 영화에 등장하는 연쇄살인범들에게도 모두 각자 나름대로의 동기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걸 보면서 가끔은 불쌍하다는 생각과 함께 연민이 들 때도 있고,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살인범에게 설득당해 버리는 경우도 있고, 황당하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지요. 또 한편으로 관객들은 살인마의 인간적인 매력에 좌우당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아메리칸 사이코>에 등장하는 '패트릭 베이트먼'이라는 살인마는 어떨까요? 물론 범행동기라는 건 정말 황당하지만, 매력이라는 차원에서는 결코 그냥 넘어갈 수가 없는 거 같아요. 잘 빠진 몸매하며, 멋진 헤어 스타일, 그리고 유행의 최첨단을 걷는 옷차림. 이런 외적인 요소들 덕분에 묘하게도 전 영화를 보는 동안 그에게 순간 순간 동조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순간'에 불과했어요. 왜냐하면 그는 그런 회려한 외모를 빼면 남는 게 없는 사람이거든요.

'베이트먼'이 추구하는 건 겉모습만 요란한 그런 세계입니다. 목욕, 선탠, 운동, 마사지 등에 신경 쓰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죠. 회사에서 하는 일이라는 건 음악 듣고, 잡지 보고, 퍼즐 풀고 그저 그렇게 시간 때우는 일 밖에는 없습니다. 음악이라는 것도,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에 대해서 떠벌리고 있기는 하지만 그거... 왠지 음반 자켓을 줄줄이 외우고 있는 거 같다는 생각이 자꾸 들어요. 친구들과 대화를 하면서는 인종차별이나 인권문제에 관심이 있는 듯 얘기는 하는데, 그것도 아마 어디선가 주워들은 음악 가사나 신문기사들을 변용한 거겠죠? 만나는 친구들은 어떻습니까? 서로 자기들 얼굴도 잘 구별 못 하고, 식당이나 바에서 만나서 공허한 대화나 주고 받고, 자기들 명함 자랑이나 해대는 한심한 인간들이 전부입니다.

이렇게 내면이 공허하니 자연스럽게 그는 섹스나 살인의 세계로 빠져들 수 밖에 없겠죠. 그렇지만 섹스를 하면서도 그는 거울을 보면서 자기 얼굴이나 몸매에만 도취되어 그것에 더 신경을 쓰는 사람입니다. 한 마디로 그는 실체라는 건 없는 '속 빈 강정'이에요. 여기에 이 영화를 풀어나가는 키워드가 있습니다. (앗, 여기서부터는 이 영화에 대한 결론이 적나라하게 나와있어요! 영화 보실 분들은 절대 미리 보지 마세요!) 그에게 실체란 게 있을 수가 없으니 당연히 그가 하는 행위들도 실체가 아니겠죠?

후반부에 지금까지 그가 벌였던 모든 살인들은 그의 상상 속에서나 벌여졌다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하지만 그 전부터 이런 징조는 무수히 많이 보였답니다. 그가 마지막에 벌였던 살인들, 너무 만화 같지 않던가요? 갑자기 자동지급기에는 이상한 메세지가 뜨고, 총 몇 방에 차가 폭발하고, 전기톱을 던져서 살인을 하다니요! 그리고 그가 줄줄 흘리고 다닌 피는 다 어디로 갔죠? 말도 안 된다고요!

사실 정답은 다 오프닝에 숨어 있습니다. 오프닝에서 우리가 처음 피라고 생각했던 게 사실은 케찹이었고, 고기를 다지는 장면에서 살인을 연상한 사람들이 많았겠지만 눈 앞에 나타난 건 아름답게 치장된 스테이크 한 접시였어요. 스테이크가 과연 맛있었을까요? 전 겉 모양만 예뻤다는 쪽에 한 표 걸겠습니다. 끝 장면에서도 대통령의 연설을 보면서 사람들이 한 마디 씩 하지만 베이트먼의 결론은 그거였어요. "속이야 아무 상관 없는 거 아니야?" 하지만 실제로는 그게 아니라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죠.

결국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건, 지금까지 영화를 끌어나갔던 모든 게 허구라는 걸 보여주면서 화려하고 겉모습에 치중한 것들을 다 뒤집어 버리려는 거에요. 명함 대결이나 동성연애와 같은 코미디를 집어넣은 것도 은근히 그 사람들을 웃음거리로 만들어버리려는 의도에서 포함된 거구요. 그러니까 정리하자면 '속 빈 강정들은 정신 좀 차리시지!'가 될까요?

말씀 드린대로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이런 생각을 이야기 구조로는 일관성있게, 코미디를 넣어서는 재미있게, 시각적으로는 화려하게 끌고 나갑니다. 주연을 맡은 '크리스챤 베일' 및 조연들의 연기도 빛나고요.

글쎄요. 영화를 보고 속았다고 생각하는 관객이 있으시다면, 조금 덜 집중하신 탓이 아닐까요?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이 영화를 하나로 꿰는 메시지가 보이실테니까요.

4 )
ejin4rang
 그다지   
2008-11-12 09:34
rudesunny
기대됩니다.   
2008-01-14 14:07
theone777
리뷰보고 나니 완벽한 영화라는 것을 알게됬네요
'속 빈 강정' 들이 주인공인 영화!! ㅎㅎ
퍼펙트한 싸이코 영화!!~   
2007-05-26 20:28
ldk209
이 영화 .. 정말 죽여줍니다...   
2007-01-29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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