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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토미2
스스로 실험실의 생쥐가 된 의사들 | 2004년 2월 9일 월요일 | 김작가 이메일

이한몸 희생으로 인류를 구원하리, 인간 마루타
이한몸 희생으로 인류를 구원하리, 인간 마루타
건강하게 오래 사는 법. 이것이 대부분 사람들의 바람이자 모든 의사들이 추구하는 목표일 것이다. 어쩌면 이건 인류가 살아있는 한 영원히 꿈꾸는 신기루가 아닐까. 의학이 발달한 만큼 또 다른 병이 발견되는 순환이 되풀이되기 때문이다.

말로는 우주시대를 이야기하는 최근만 해도 광우병에 조류 독감에 그야말로 전 세계가 촉각을 곤두세우는 실정이니 어쩌면 병은 영원히 의학보다 한발 앞서 나아가는 게 아닌가 싶다. 부단히 그 간격을 좁히기 위해 지금 이 시간에도 불철주야 연구를 거듭하는 사람들. 아나토미는 바로 그런 의학도들의 이야기를 그렸었다. 권위 있는 의학박사의 수업을 듣기 위해 모인 학생들이 잠깐 스쳐갔던 사람을 해부한다는 끔찍한 이야기였다면, <아나토미2> 역시 전작의 이야기 골자를 그대로 따라간다. 젊고 건전한 정신으로 의학계에 입문하려는 사람이 어느새 자신도 모르는 사이 비밀조직에 가입해 인체를 상대로 실험중이라는 것.

가족중 한 사람이 쉽사리 낫지 못하는 아니 현대 의학으로는 완쾌가 불가능한 병으로 시달린다면 어찌해야 할까. 이런 상황이라면 가족 중 다른 한사람의 꿈은 의사가 되어 그 병을 치료해 보는 것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런 절박함은 때로는 엉뚱한 결말을 불러오기도 한다. 근육수축증을 앓고 있는 그래서 일어서지도 못하는 동생을 위해 의사가 되려는 형이 베를린의 유명 대학에 인턴으로 출근하며 이야기는 전개된다. 히포크라테스 선서에 입각해 건강한 의욕이 넘치는 청년 바르나비. 어느 조직이나 처음 시작하는 신참내기는 그런 사명감, 정의감이 충만하지 않던가. 바르나비 역시 그런 공식에 너무나 완벽하게 맞춰진 인물이다. 돈이 없는 가난한 아시아계 간호사 아이를 위해 모두 퇴근한 사이 몰래 시술해 주는 장면으로 사람 먼저 나고 돈 났다는 그의 평소 지론을 실천한다. 하지만 간호사들이 드디어 제대로 된 의사가 하나 나오겠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 영화는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다.

의사의 사명은 아픈 사람들을 낫게 해주는 것이 제일 먼저라는 투철한 히포크라테스 정신이 투철한 청년들. 이 투철한 정신이 때로는 가장 쉽게 오염될 필수요건이 되기도 한다. 그럴듯하게 변형된 논리로 이들에게 접근하면 이들의 순수한 마음은 그 진위를 따져 볼 겨를도 없이 열정하나로 덤벼들기 때문이다. 이미 이 병원에서는 은밀히 비밀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었고 대부분의 젊고 혈기 넘치는 인턴들이 주축이 된다. 물론 이들의 리더는 사람들에게 실력을 인정받아 존경 받고있는 뮐러 박사. 이들은 육체를 더 강화시키기 위해 400배 더 효율적인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인공근육을 몸에 심어 그 효능을 실험하는 단계에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된다면 바르나비의 동생도 걸을 수 있고 노년의 삶 역시 인공근육으로 활기차게 될 것이다. 인류가 좀 더 건강하게 살 수 있을 것이라는 이들의 논리에 의욕이 앞서는 바르나비가 가입하게 된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조직을 배신하면 죽음까지 각오하겠다고 선언한 이들이 실험쥐 살 돈을 아끼기 위해 스스로 실험쥐가 된다는데 있다. 아직 연구단계인 이 실험을 본인들 몸에 스스로 이식하고 그 발전단계를 스스로의 몸으로 체험하는 것이다. 마치 인간 마루타처럼 말이다.

실험쥐들의 반란,  이것도 '왕' 자로 쳐주나
실험쥐들의 반란, 이것도 '왕' 자로 쳐주나
물론 이런 실험이 성공한다면 의학은 지금보다 한 걸음 더 빨리 병과의 거리를 좁혀갈 수 있을 것이다. 실험쥐를 통한 끊임없는 실험이 이루어진 후에야 다시 인간을 상대로 그 효능을 입증하는 오늘날의 방법보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부작용이 없다는 전제 하에서 가능한 일이다. 이미 부작용으로 고통을 호소하고 많은 인턴들이 그 고통을 이겨내기 위해 마약에까지 손을 댄 상황임에도 뮐러 박사는 노벨상이라는 타이틀에 눈이 어두워 실험을 강행한다. 당연히 이탈한 자들은 선서에 따라 은밀히 제거된다. 인간을 살리려는 의술을 의해 인간을 희생하는 아이러니 한 상황이 전개되는 것이다. 자신의 희생이 곧 인류의 진보가 된다는 뮐러 박사의 그럴듯한 말에 의욕이 넘친 바르나비가 넘어가게 되고 그를 통해 서서히 그들의 실험실이 공개된다.

병원을 배경으로 한 이런 서스펜스는 쉽게 보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목숨을 담보로 하고 있으면서도 의심할 수 없고 믿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닥쳐오는 불안함. 그러기 때문에 의사는 더욱더 인간적이어야 함은 두말하면 잔소리에 불과하다. 하지만 영화는 그런 심리적인 서스펜스를 제공하는데는 별로 공을 들이지 않는다. 오히려 SF적인 냄새가 짙게 깔려있다. 인공근육을 이식한 사람의 근육을 원격조종하는 장면은 마치 [월레스와 그로밋]에서 월레스가 전자바지를 입고 자신이 의도하지 않았는데 다이아몬드를 훔치는 장면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때문에 인간의 근육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인조인간이라는 느낌이다. 그래서 배반자를 원격조종으로 처형하는 옥상 위에서의 싸움은 [블레이드 러너]를 떠올리게 된다. 초반 실험대상인 학생이 자신의 배를 칼로 그으며 끔찍한 장면을 연출하지만 이런 끔찍한 장면도 여기가 전부다. 때문에 영화는 병원에서 줄 수 있는 그런 공포와는 적당한 거리를 두며 어정쩡한 태도를 보인다. 때문에 좀더 정교하게 장르를 파고들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 와중에도 영화는 바르나비를 돕는 아시아계 간호사들을 통해 따뜻함을 보여주는데 이제 마지막 남은 보루는 동양의 인본주의 밖에 없다는 얘기일까?

2 )
ejin4rang
실험쥐 징그럽다   
2008-10-15 17:16
callyoungsin
스스로 실험실의 쥐처럼 된 의사들의 이야기   
2008-05-19 13:30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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