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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그의 피부가 탐이 난다
필로우 북 | 2000년 12월 6일 수요일 | 모니터기자 - 현시내 이메일

그녀가(비비안 우분) 제롬(이완 맥그리거분)의 육체를 종이로 택한 것은 이 영화에서 엄청난 의미를 갖는다. 그녀에게 글씨를 써주는 사람은 그녀를 사랑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아니 다시 말하자면 그녀의 육체에 글씨를 써줌으로써 그녀에게 '행복'을 느끼게 해줄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그녀가 기억할 수 있는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에게 받은 생일선물이었고 그녀는 선물을 받는 행복을 항상 느끼고 싶었다. 그녀는 항상 선물을 조르는 아이와도 같은 동심을 버리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그녀가 '선물은 받는 것'이 아니라 '선물은 주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고, 그럼으로써 성인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제롬을 통해서 얻게 된다. 이제 그녀는 한 사람의 성숙한 어른으로써 사랑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이 사랑하는 제롬을 종이로 택해 그의 육체 위에 사랑의 언어들을 써 내려간다. 그녀는 진정 사랑을 하게 된 것이다.

영화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결코 '부정한 아버지를 둔 한 여자의 엽기적인 삶'이 아니다. 영화는 '아름다움' 그 자체가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싶어한다. 물론 매끄럽고 탄력 있는 선남선녀의 나신도 아름답기 그지없지만 정말 격조 높은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것은 '영상미'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관객은 자신이 마치 '종이'가 되어버린 듯한 느낌을 받는다. 인간의 육체가 종이라는 무생물로 전락한 것이 아니라 어떠한 인간의 언어도 표현해 낼 수 있는 그러한 백지상태의 세계로 새로운 생명력을 얻게 된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감독이 얼마나 탁월한 '영상시인'인가를 알 수 있다. 영화에서 그는 붓을 들고 있고 관객들은 무언가를 써주길 바라는 백지가 되어버린다.

영화를 통해 보여줄 수 있는 것은 무궁무진하다. 카메라로 찍어낼 수 있는 장면은 한정되어있는지 모르지만, 그 장면을 통해 줄 수 있는 새로운 세계는 우주만큼 넓다. 하지만 영화가 상업화의 물결에 휩쓸리기 시작하면서 세계는 헐리우드라는 간판을 단 멀티플렉스 영화관에서 갇혀버리게 된다. 어느새 영화가 주는 희망은 '뻔하다'는 회의가 들기 시작했고, 그래서 사람들은 하나 둘 극장을 떠나게 되었다. 그러나 다행히 피터 그리너웨이와 같은 아웃사이더들이 나서서 '세계'를 수호하게 되었다. 피터 그리너웨이가 보여주는 세계는 정말 영화가 가능하게 한 세계였다. 가슴이 쩌렁쩌렁 울리는 그러한 감동이 이 영화에 있었다. 단 한번의 저항 없이 그가 안내하는 세계로 관객들은 빠져들 수 있다.

다시 영화이야기로 돌아가서, 이 영화를 볼 때 한가지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 있다. 바로 이 영화전체를 관통하는 영국인 특유의 싸늘한 냉소가 그것이다. 감독은 물론 서양인이기는 하나 화면을 보는 우리들은 영화 내내 동양의 감성이 세련되게 펼쳐짐을 느낄 수 있다. 여주인공의 집도 그렇고 내용면에 있어서도 그 큰 틀의 근원에는 '신비스러운 동양'이 자리잡고 있었다. 왜 감독은 하필이면 이 신비스럽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풀어놓을 장소로 동양을 택한 것일까?

이는 감독이 이미 파괴적이고 상업적인 서양에 지쳐 있음을 보여준다. 요란하고 시끄러운 서양식 삶에 지쳐버린 감독은 한편의 동화와도 같은 이 신비스러움을 자기와는 반대편의 땅덩어리에서 찾으려 했다. 이상한 일이 가능한 곳, 그곳은 바로 서구인들에게는 신비스럽고 낯설기만 한 이 동쪽의 땅밖에 없었다. 그래서 감독은 이 아름다운 이야기를 가장 동양적으로 풀어내려 했다.

이 모든 욕심과 환상이 조우한 결과물이 바로 [필로우 북]이다. 몽환의 세계 같으면서도 현실의 허점을 드러내며, 괴기스러울정도로 아름답고 세련된, 그런 영화이다.

2 )
ejin4rang
기대됩니다   
2008-11-10 09:12
rudesunny
기대됩니다~   
2008-01-14 14:20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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