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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소녀의 욕망을 그리다 | 2004년 9월 1일 수요일 | 협객 이메일

17세기의 화가지만 19세기에 이르러서야 명성을 얻은, 사실주의 화가 요하네스 베르메르. 그의 대표작인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를 모티브로 작가 트레이스 슈발리에는 화가와 소녀 사이에서 미완의 사랑을 상상했다. 베르메르의 그림처럼 소설은 사실적인 허구의 사랑을 그림처럼 써내려갔고, 그림 속의 진주 귀걸이 소녀는 보는 이의 영혼을 뒤흔드는 매혹의 메신져가 되어 삶과 예술, 현실과 그림의 예민한 경계를 허물어뜨린다.

‘느림의 미학’이라는 말이 생각날 정도로 영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는 느리고 낮게 진행되는 작품이다. 화가 베르메르(콜린 퍼스)와 16세 소녀 그리트(스칼렛 요한슨)의 사랑은 신분의 차이만큼 격정적일지는 몰라도, 미세한 손가락의 스침 정도로 감정을 확인할 뿐, 베르메르의 그림처럼 정적이다. 가족과 돈의 굴레에서 예술혼을 팔던 화가는 화실의 창문을 닦는 소녀의 조용한 몸짓에서 예술을 향한 순수한 열정을 느낀다. 하지만 유부남과 어린 하녀의 신분을 초월한 사랑 혹은, 불륜은 영화를 가로지르는 주된 이야기가 아니다. 영화는 사랑을 재료로 해 만들어진 그림처럼 순간을 영원으로 담아내는 창조성 위에 주인공들의 감정을 살며시 놓을 뿐이다.

사랑과 사회적 관계에 포커스를 맞춰, 예술가의 내면을 이해하도록 드라마틱하게 극을 구성하던 전기영화와는 달리,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는 베르메르의 그림이 전시되듯 일정 거리를 유지하며 화가와 소녀의 감정을 진열한다. 베르메르의 그림처럼 영화는 최대한 자연광에 가까운 효과를 살려 회화적인 느낌을 들도록 했다. 배경이 되는 델프트의 전경과 베르메르 집의 실내는 섬세한 영화적 배려로 인해 인물들의 정서를 돋보이게 하도록 장치되어 있다.

또한, 실제 베르메르 그림 속의 인물들을 보면 일상의 나른함과 권태로움이 느껴진다. 영화는 프레임 속의 인물들 동선을 최대한 자제하게 해, 마치 액자 안의 인물처럼 보이도록 유도한다. 굳이 이런 회화적인 질감을 살린 영화의 의도는 뻔하다. 베르메르의 그림을 영화 속에 자주 삽입하지 않는 대신 그의 작품세계를 다르게 관객들에게 보여줄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영화 전체가 프레임 속의 회화작품이 된다. 관객은 베르메르와 그리트의 시선으로 17세기의 그림을 오랜 시간 공들여 감상하는 특별한 기회를 제공받는다.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는 대부분 그리트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진행시킨다. 식탁시중을 들면서 엿본 상류사회의 비도덕성과 탐욕, 화실을 청소하면 느꼈던 빛의 오묘한 신비, 다락방에서 물감을 만들며 느꼈던 걷잡을 수 없는 은밀한 사랑의 소유욕 등, 이 모든 것이 그리트의 것이면서도 그녀의 사랑과 욕망을 설명하지 못한다. 아니 완성하지 못한다. 그리트의 내면은 오직 그림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에서만 온전히 드러난다. 미완이 사랑은 걸작으로 남은 그림 안에서 완성된다.

그러나 현실에서 실현되지 못한 안타까운 사랑의 대상으로 그리트를 기억하기에는 화실에 쏟아지던 빛처럼 그녀는 오묘한 인물이다. 베르메르의 화실을 청소하며 그리트는 아무도 손대지 않았던 창문을 스스로 연다. 고갈된 화가의 예술혼을 불러들이는 창조의 샘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런 단선적인 상황은 진주 귀걸이를 건 소녀에게 의미를 부여하는 필요충분조건이 되지 못한다. 인물은 관계 안에서만 실체를 드러낸다. 때문에 베르메르 부인과의 삼각관계와 후견인 라이벤 때문에 생긴 갈등의 삼각관계 속에서 진주 귀걸이 한 소녀, 그리트의 사랑과 욕망을 조망할 필요성이 생긴다. 단지, 예술에 매혹 된 남녀의 사랑으로 미화하기에는 욕망은 낮고 나른함은 만연하던 그림 속에 그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16세에 하녀가 된 그리트는 낮은 신분의 여성이다. 그녀가 다른 여성들과 틀린 점은 나른한 세상을 호기심 어린 눈망울로 바라보는 천진함과 권태에 빠진 베르메르 부인과 구별되는 젊고 순수한 육체의 소유자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리트가 17세기의 일반적 여성들과 달리 생명력이 넘치는 매력을 지녔다하더라도, 그녀의 신분은 하녀다. 그리트와 베르메르의 사랑이 아무리 순수할지언정 계급사회이기에 좌초될 수밖에 없는 태생성을 지닌다. 시대상을 반영하는 실내전경은 청소하고 빨래하는 그리트의 현실을 액자처럼 담아두는 테두리로써의 역할도 하지만 벗어날 수 없는 신분의 굴레이기도 하다. 미세한 손떨림이 사랑임을 확인할수록 욕망은 억제될 수밖에 없다. 피아노를 치는 베르메르 부인 카타리나를 바라보는 그리트의 시선에서 질투보다 신분적 한계에 슬퍼하는 여성의 욕망을 보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따라서 부의 상징인 진주 귀걸이는 그림 속에서, 영화 속에서 소녀의 순결을 상징하기보다 소녀의 욕망을 대변한다. 벗어날 수 없는 신분 때문에 드러낼 수 없는 사랑의 감정은 훔치듯 귀에 건 진주귀걸이를 통해 그림 속에서만 빛을 발하게 된다. 귀걸이를 걸기 위해 그리트의 귀를 뚫어주는 베르메르. 피부를 관통하는 순간의 고통과 보석처럼 맺힌 피는 분명, 소녀의 처녀성을 대신해 확인한 사랑의 의식일 것이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처녀성을 담보로 신분을 초월하고픈 소녀의 은밀한 욕망이 숨어 있다. 단순히, 화가와 소녀의 미완의 사랑을 회화적인 분위기로 담아낸 영화로 보기에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가 내재한 여성의 욕망은, 그 진폭이 크다. 거기다, 베르메르의 피사체들이 정적인 것에 반해, 그리트의 눈동자와 입술은 격정을 품고 있다.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가 베르메르의 다른 작품과는 달리 화가를 쳐다보는 구도를 취한 것은 소녀의 욕망을 담아보고픈 예술가의 또 다른 욕망일지 모른다.

회화와 영화의 경계쯤 어딘가에 놓여있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는 여성의 욕망을 예술과 삶에 빗대어 드러낸 ‘계급’드라마다. 관객이 아닌 관람객으로서 예술가의 작품세계를 감상하기보다 피사체의 욕망을 한번쯤 상상해보는 것은, 이 영화를 좀 더 은밀하게 즐길 수 있는 방법 중에 하나일 것이다.

8 )
jhs157
예술과 사회적위치를 잘 표현한   
2010-04-27 16:58
ejin4rang
진짜아름답고 진짜 이뻤다   
2008-10-15 14:47
callyoungsin
예술과 여성의 욕망을 삶에 빗대어 만든 드라마 같은영화   
2008-05-16 14:17
qsay11tem
아련한 감동이 ..   
2007-11-23 14:02
ldk209
아련한 감성....   
2007-01-15 00:28
soaring2
전 지루했어요..ㅠ.ㅠ   
2005-02-14 02:15
jju123
사실적이지만, 너무 가슴이 아플 정도로 답답해서리.   
2005-02-07 22:16
Qhdis
서로 사랑한다는걸 알면서도... 내색한번 제대로 할 수 없는 모습을 보니.. 정말 사실적으로 그린 영화이다....
  
2004-09-04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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