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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안내! 십자가를 짊어지는 것은 자신이다.
포도나무를 베어라 | 2007년 2월 20일 화요일 | 민용준 기자 이메일


성경에서 하느님은 포도나무로 비유된다. 알맹이가 모여 하나의 과실을 이루는 포도는 탐스러운 결정체의 집합이지만 그 알맹이들이 온전할 때 포도는 완전하다. 한편으로 포도는 위태로운 과일인 셈이다.

마치 개개인들이 모여 하나의 세계를 구축하는 것과도 비슷하다. 세상은 완전해질 수 없다. 완전치 못한 세상에서 사는 인간들 역시 그렇다. 인간이 신앙이 가능한 것은 그 때문이다. 무언가에 대한 종속적 갈망, 즉 자신의 부족함에 대해 고뇌하기 때문에 무언가에 의지하고자 하는 방편에서 출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수현(서장원)은 빌립보서를 모두 외울 정도로 독실한 신학도이다. 하지만 그에겐 말 못할 비밀이 있다. 그는 과거 애인인 수아(이민정)를 잊지 못하고 그녀 주변에서 맴돈다. 그래서 강우(이호영)를 맴도는 소문에 귀 기울이고 그와 연대하길 기대하지만 그는 도통 말이 없다. 그리고 이윽고 학교를 떠나는 강우의 뒷모습은 수현의 출렁이던 마음을 넘치게 하고 한순간 자퇴를 결심하게 하지만 그 역시도 학장의 설득에 보류된다. 종교라는 거대한 진리 안에서 고뇌하는 수현을 통해 인간의 나약한 심성이 간파된다. 신앙이라는 믿음 안에서 탈속적 안식을 찾은 듯 하지만 그 곳에도 인간적 고뇌는 존재하고 절제와 금욕 속에 욕망은 더욱 간절해진다. 거기서 인간과 신의 영역이 충돌한다. 신부가 되기 위해서는 인간의 영역을 초월해야 한다고 믿는 수현에게 세속적 욕망의 출몰은 버겁다. 그래서 그는 갈등하고 갈망하며 스스로에 엄격해진다.

이런 수현의 시련에 정답이 되는 대상은 문신부(기주봉)다. 사람들은 문신부에게 기도를 바라고 구원을 갈망한다. 그는 자신의 기도가 효력이 없음을 알면서도 사람들의 간절한 요청에 부응한다. 그는 남 몰래 포도주를 숨겨놓고 마시기도 한다. 더불어 신의 뜻을 빙자한 교구가 노쇠한 수도원을 성지로 개발하려 함에 인간적 신념으로 맞선다. 그는 때로 전지적 시점의 위치를 점하기도 하는데 수련 수사인 정수(성준서)의 밀회를 목격하지만 그에 대해 함구하고 추후에는 그네들의 외도마저 용서한다. 그는 인간의 욕망을 잘 알고 신부인 자신도 결국 인간에 지나지 않음을 알기 때문이다. 그가 남몰래 마시는 포도주는 정수가 끌어안는 밀회의 욕망과 다를 바가 없음을. 결국 그는 신부라는 소명의 무게감에 집착하는 것 대신 인간적인 흔들림을 존중한다. 자신이 신부이기 이전에 인간임을, 참아내기 전에 갈망할 수밖에 없음을 인정한다. 종교적인 측면에서 보았을 때는 불경한 죄악일지 모르나 사실 인간적인 측면에서 억압된 본질의 은폐이기 때문이다.

수현의 고뇌는 수아와 빼닮은 헬레나(이민정)를 통해 깊어지지만 그 심해에서 구원을 발견한다. 헬레나는 수현이 은폐하려 했던 과거를 수면으로 드러내게 함과 동시에 그를 그 고뇌로부터 해방시킨다. 수아의 비극은 수현의 심적 고뇌를 현실적인 슬픔으로 치환시키지만 동시에 그로부터 해갈될 계기가 된다. 헬레나는 수아의 도플갱어임과 동시에 수현의 페르소나이다. 그녀는 수아와 닮은 외모로 그를 현혹하지만 동시에 수현의 내면이 지닌 고뇌의 무게감을 똑같이 지니고 수현의 고해를 대신한다. 수현은 헬레나의 고백을 통해 자신이 그 속박에서 벗어나고 있음을 인지한다. 헬레나는 수아를, 수현은 수아의 역할을 대신하고 그로 인해 헬레나와 수현은 각자 서로를 대속(代贖)한다.

‘하느님을 모시는 자는 심각해져서는 안 됩니다.’ 신부라는 소명은 신의 대리자이자 신과 인간의 영매적 위치에 서있다. 그들은 인간에게 신의 음성을 대신 한다는 믿음을 주어야 한다. 그것이 진실이 아닐지라도 그 거짓은 믿음을 지닌 자에게 안식을 주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이 신의 뜻인지는 알 수가 없다. 우리는 어차피 한낱 인간에 불과하니까. 결국 수현이 베어야 할 포도나무는 신이라는 버거운 상대가 아닌 그 스스로 두려워하는 중압감인 셈이다. 스스로가 버리지 못하는 중압감, 부질없는 인간적 고뇌. 수현은 한 꺼풀 벗겨진 고뇌의 무게 뒤로 자신의 시계가 다시 내일로 돌아감을 인지한다.


포도를 얻기도 전에 포도나무를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결국 모든 번민과 고뇌는 우리가 불완전한 인간이기에 짊어져야하는 십자가와 같다. 그 십자가를 내려놓는 방법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그것은 자신 스스로가 지닌 미련 혹은 욕망의 끈을 놓는 것. 그 포도나무에 열릴 탐스러운 포도를 얻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공을 들여야 한다. 하지만 포도를 얻기도 전에 그 힘겨운 작업을 두려워한다면 포도를 얻을 수 없다. 포도를 얻기 위해서는 그 망상의 포도나무를 베어야 한다. 우리는 미천한 인간이므로 지극히 인간적인 고민을 안고 사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그러니 그 고뇌를 두려워하지 말라. 그것을 인정하면 우린 가벼워질 수 있다. 깃털처럼, 가볍게.

2007년 2월 20일 화요일 | 글: 민용준 기자




-진지한 영화를 볼 줄 아는 당신!
-상징과 비유의 의미를 해석할 수 있는 분.
-신학생 관람가!
-진지한 영화라면 무조건 학 띠는 분!
-영화의 오락적 기능만을 원하시는 분.
-성직자는 완벽해야 한다..이런 고정관념 있으신 분!
16 )
kgbagency
작품성은 많이 줬네요 개봉관이 없던ㅎㅎ   
2007-03-31 18:47
kjh840920
보고싶어 보고싶어 ㅠ ㅠ   
2007-03-31 17:19
ldk209
작품성에 비해 흥행성이.. -,-;;   
2007-02-26 11:57
idchecker
어쩐지 극장에 수녀님들이 많이 보인다했는데...   
2007-02-24 10:26
lee su in
흥행성이 너무 낮네요.
아무래도 톱배우가 출연하지 않고, 거대 배급망을 타면서 개봉하지 않기 때문이겠죠.

영화적으로도 볼만할 것 같습니다.   
2007-02-22 23:22
hrqueen1
전 이 영화 프랑스나 이탈리아영화인 줄 알았어요. 제목만으로는요.
마치 만다라나 오세암 같은 생각이 드네요. 이왕이면 만다라처럼 흥행도 괜찮았으면 좋겠지만....   
2007-02-21 00:23
justjpk
정말.. 흥행성은...   
2007-02-20 23:03
theone777
성직자를 다룬 영화라.,   
2007-02-20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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