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검색
검색
동경과 질투는 한 가지에서 자란다 (오락성 5 작품성 8)
크랙 | 2010년 7월 26일 월요일 | 정시우 기자 이메일

<크랙>은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 쉴라 콜러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글래디에이터> <로빈 후드>로 유명한 리들리 스콧의 딸, 조던 스콧이 연출해 화제가 된 영화이기도 하다. 이슈는 얻었지만, 조던 스콧으로서는 부담도 있었을 게다. 왜 안 그러랴. 비교대상이 다른 사람도 아닌, 리들리 스콧인데. 아버지 후광에 가려, 반짝하고 말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아버지와는 완전히 다른 노선의 영화를, 깊이감 있게 만들어냄으로써 일각의 우려를 날려버린다. <크랙>을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1930년대 영국의 외딴 여학생 기숙학교. 반장 디(주노 템플)가 이끄는 다이빙 팀 소녀들에게 교사 미스 G(에바 그린)는 선망의 대상이다. 다양한 여행담을 들려주는 미스 G의 사랑을 얻고자 노력하는 소녀들. 특히 디는 미스 G로부터 높은 신임을 받으며 소녀들의 우두머리 역할을 한다. 적어도 스페인 귀족 출신 소녀 피아마(마리아 발베르드)가 전학 오기 전까지는. 아름다운 외모에 뛰어난 다이빙 실력, 다양한 경험까지 갖춘 피아마에게 미스 G가 빠져들면서 이들의 관계엔 균열이 생긴다.

<크랙>은 말보다 눈빛으로, 사건보다 분위기로 전달되는 영화다. (비가 많은 영국을 배경으로 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영화에서 풍겨져 나오는 건 짭조름한 비 냄새와 안개만큼이나 모호한 시적 이미지들이다. <크랙>은 결코 긴박한 사건을 내세우지 않는다. 물 흐르듯 평범한 일상 속에서 인물들의 심리를 낚을 뿐이다. 인물들의 과거도 애써 알리려 하지 않는다. 대신 흔들리는 눈빛 하나, 슬그머니 스치는 행동 하나, 낮게 깔리는 배경음악으로 과거를 암시하고, 미래에 대한 복선을 심는다.

이것이 영화를 다소 지루하게 하기는 하지만 조던 스콧은 질투와 동경의 감정을 능숙하게 파헤치며 재미의 강약을 조절한다. 아슬아슬하게 드러나는 동성애적인 코드와 스릴러적인 분위기도 <크랙>을 건조함으로부터 건져 올리는 요소다. 이런 오묘한 분위기는 영화에 담긴 함의를 보다 확장시키기도 한다. 호된 대가를 치르고서야 깨달음을 얻는 소녀들의 성장은 <죽은 시인의 사회>가 그려낸 성장담만큼이나 시리고, 진실과 거짓 사이의 공방은 <다우트>의 신경전처럼 팽팽하다. 기숙학교의 폐쇄성을 얘기 할 때는 M. 나이트 샤말란 감독의 <빌리지>의 고립된 공포감이 얼핏 비치기도 한다.

이 중 가장 오래 눈길이 머무는 건, 성장영화적인 측면이다. 소녀들의 성장기처럼 보이는 이 영화에서 가장 큰 성장을 이루는 건, 어른인 미스 G다. 제자들에게 넓은 세상을 경험해야 진정한 어른이 된다고 말하는 미스 G는, 사실 공황장애의 비밀을 안고 있는 인물이다. 그녀의 논리로 본다면, 그녀는 성장이 거세된 인물인 셈이다. 진정한 어른이 되지 못하고, 어른 인 ‘척’만 해왔던 그녀가 몸은 소녀지만 이미 어른의 경험을 지닌 피아마 앞에서 흔들리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그녀는 자신이 지니지 못한 걸 모두 지닌 피아마를 동경하는 동시에 질투하고, 소유하고 싶어하는 동시에 제거하고 싶은 욕망에 시달린다. 인간 저변에 흐르는 질투와 동경, 소유욕 등의 심리를 동전 뒤집듯 요리하는 연출 내공이 묵직하다.

<몽상가들>에서 인상 깊은 연기를 보여 준 후, <007 카지노 로얄> <킹덤 오븐 헤븐>에 출연하며 주류로 편입하는가 싶던 에바 그린은 <크랙>을 통해 배우로서의 보폭을 넓힌다. 유럽 전체를 뒤져 캐스팅했다는 피아마 역의 마리아 발베르드 또한 관객이 납득할 만한 매력을 발산한다. 하지만 전면에 서지 않고도, 극과 극의 감정을 유려하게 소화해 낸 디 역의 주노 템플이야말로 가장 눈길이 가는 배우다. 1930년대의 복고 의상과 배우들이 대역 없이 해 낸 다이빙 장면도 깊은 인상을 남긴다.

2010년 7월 26일 월요일 | 글_정시우 기자(무비스트)    




-그 아버지(리들리 스콧)에 그 딸이란 소리를 해 줄만 하다
-집 나간 에바 그린이 돌아 온 느낌. <몽상가>들의 에바 그린, 반갑다!
-당신들이 믿고 있는 게,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무언의 가르침
-사건보다 심리가 먼저인 영화. 지루할 수도.
-여탕영화다! 여성의 심리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즐겁지 않을 걸.
26 )
loop1434
별로   
2010-07-26 21:43
ooyyrr1004
작품성 점수쪽이 높네요   
2010-07-26 21:28
1 | 2 | 3 | 4

 

 

1일동안 이 창을 열지 않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