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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만나러 갑니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 이 말에 반전이 숨어있다. | 2005년 3월 23일 수요일 | 협객 이메일


‘니폰필’ 요즘 흔히 듣는 말이다. 일본의 고착된 심플함과 시대의 흐름을 감지하는 개성을 한국식으로 젊은층 사이에서 소화해 낸 문화를 일컫는다. 거리에는 일본 소녀잡지에서 본 듯한 패션과 문화가 일렁이지만 극장가에서는 이런 시대적 특수를 누리지 못했다.

일본문화라는 큰 줄기에서 나왔지만 어디에 뿌리를 내렸는가에 따라 달라지는 문화의 소비 풍속을 보면서 씁쓸한 기분에 잠긴다. 그들의 문화를 우리 삶에 용해했다기보다는 장신구처럼 사치스럽게 매달고 다니는 듯해 이럴지도 모른다.

아내 미오(다케유치 유코)를 병으로 잃고 타쿠미(나카무라 시도우)는 하루하루가 어리버리 실수의 연속이다. 그나마 똑똑하고 조숙한 6살 날 아들 유우지가 맛없는 계란 후라이라도 맛있게 먹어주는 덕에 타쿠미는 오들도 출근을 할 수 있다. 청소년 시절 육상 트레이닝을 심하게 한 후유증으로 긴장과 흥분을 견디지 못하지만 그래도 그는 아내 미오가 죽은 지 1년 되는 비의 계절(장마철)에 돌아올 것이라는 기대를 품고 있다. 자연의 순리에 맞게 비의 계절은 돌아오고 미오는 기적처럼 두 부자 앞에 나타난다. 단지 기억을 잃은 미오가 자신들을 알아보지 못하지만 말이다. 비의 계절에 돌아올 것이라고 어떻게 미오는 정확히 예언했을까? 6주 동안 타쿠미 가족에게 일어난 죽음과 환생 그리고 사랑이 몹시도 궁금해진다.

<지금, 만나러갑니다>는 묘한 영화다. 작품자체가 묘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단 두 가지 기준점에 의해 이것을 판단하고 소비하기 때문이다. 환생을 모티브로 한 <지금, 만나러갑니다>는 일본문화의 이질감과 영화적 환상의 관용 사이에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한국에서 영화는 환상이 아니라 현실의 반영으로 기능한다. 어느 감독의 말처럼 리얼리즘 영화가 한국에서 시쳇말로 먹힌다. 결국 생활 깊숙이 침투한 일본문화라고 하지만 그것의 총체적인 집합체인 영화는 외국의 것, 즉 ‘다름’으로 인정되는 이상한 괴리감이 소비의 자리를 대신한다.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가 성공한 뒤로, 일본열도는 신파멜로영화가 대중의 기호를 잠식한 듯 하다. 순수한 사랑과 죽음이라는 비슷한 소재를 가지고 다시 한번 상업적 성공을 얻어낸 것 보면, 일본의 낭만적 정서는 ‘죽음’과 긴밀히 연결된다. 물론, 우리도 드라마나 영화에서 죽음으로 치닫는 애타는 사랑을 보며 가슴 아파하는 동일한 정서를 가지고 있지만 이것을 사랑의 완성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비극으로 결론 내린다. 그러나 일본은 우리와 달리 죽음을 궁극적 사랑의 완성으로 이해한다. 때문에 죽은 미오가 비의 계절에 돌아오는 환생 코드는 비극으로 끝난 사랑을 해피엔딩으로 바꾸기 위한 영화적 장치가 아니다.

이치카와 다쿠지의 원작소설을 보더라도 돌아온 미오를 바라보는 타쿠미의 시선은 정해진 이별의 순서를 밟아나가는 안타까움이 아닌, 주어진 6주간의 시간을 사랑으로 채우는 곳에 머물고 있다. 원작의 의도를 정확히 짚은 도히 노부히로 감독의 드라마 구성력은 ‘죽음’의 비극성을 영원불변한 사랑의 희구로 애틋하게 영화로 옮겨놓는다.

<지금, 만나러갑니다>는 환상의 매력적인 힘을 보여준다. 우리가 만들었으면 현실감 없다고 어쩌면 무시했을 사랑이야기를 판타지와 결합시켜 진심을 끌어낸 것 보면 그들은 사랑과 죽음을 가시적인 이야기로 이해하지 않는다. 우리와 같은 듯 다른 신파감성 때문에 일본멜로영화는 특별하다. 어쩌면 그래서 결정적인 순간에 정서적으로 와 닿지 않는 면도 있다. 이 감성이 진짜 ‘니폰필’이다.

9 )
eye2k
아름다운 영화에 니폰필이니 조선필이니 하는 것은 웃기는 얘기다.   
2005-09-25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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