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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안내! <엽기적인 그녀> 곽재용 월드의 총합, 하지만...
싸이보그 그녀 | 2009년 5월 11일 월요일 | 하성태 이메일


잠시 복기해 보자. <엽기적인 그녀>의 그녀(전지현)는 견우(차태현)에게 얼토당토않은 시놉시스를 어르고 달래 읽게 했었다. 그 중에 첫째는 미래에서 온 여전사가 위기에 처한 남자 주인공을 구하는 내용이었다. <매트릭스>를 패러디하듯 가죽패션의 전지현이 날랜 와이어 액션을 보여주는 그 짤막한 시퀀스가 아마도 <싸이보그 그녀>의 모태인 듯 보인다. 긴 머리 전지현은 단발머리 싸이보그 '그녀'로 탈바꿈했지만 등장만큼은 제임스 카메론의 '터미네이터'를 그대로 빼다 박았다(기억나는가? 번개가 칠라치면 알몸의 아놀드 슈왈제네거가 길거리에 무릎을 꿇고 있던 바로 그 장면. 다행히, 아니 아쉽게도 우리의 아야세 하루카는 알몸 대신 <엽기적인 그녀> 속 전지현을 닮은 가죽 옷을 차용했다). 이 미래에서 온 '그녀'는 당연히 위기에 처한 순해 빠진 남자를 구하고, 화려한 액션으로 악당들을 물리친다. 무엇보다 <터미네이터>처럼 그녀가 '미래'에서 도착했다는 설정은 시간을 뒤섞을 수 있는 좋은 구실이다. 그러니까 <싸이보그 그녀>는 그 시놉시스의 구체화이자 변주란 혐의가 짙어 보인다.

이런 변주는 또 있다. <엽기적인 그녀>에서 견우는 말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멜로를 좋아하게 되어 있어. 우리나라 사람들이 사춘기 때 가장 감명 깊게 보는 소설이 뭐냐? 황순원의 <소나기> 아냐. 사춘기 때 읽은 그 소설이 한국 사람의 감성을 결정하는 거야. 우리나라 사람들이 슬픈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는 바로 소나기 때문이라고!" <비오는 날의 수채화>로 데뷔해 지독히도 멜로 정서에 집착하는 곽재용 감독이 황순원의 <소나기>의 정서에 가장 근접한 영화로 완성한 건 바로 <클래식>일 게다. 마지막 하나. 차태현이 얍삽한 긴 수염을 달고 등장해 전지현에게 단칼에 베이는 무협영화 장면을 기억하는가. 그렇다. 액션과 멜로와 함께 곽재용 감독이 도전하고 싶었던 무협영화의 정서는 <무림 여대생>에서 실현시킨 바 있다. 좀 더 순수하고 순진한 '그녀' 버전의 신민아와 날렵한 온주완이 등장하는 <무림 여대생>에서 와이어 액션은 꽤나 많은 분량을 차지한다.

서론이 길었다. 핵심은 곽재용 감독은 여전히 <엽기적인 그녀>를 변주하고 반복하며 '곽재용 월드'를 완성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엽기적인 그녀>는 꽤나 자신만만한 영화였다. 이후 자신이 하고픈 이야기의 정수를 '그녀'의 시놉시스를 통해 모두 밝혀 놓은 셈이니까. 그렇다고 <싸이보그 그녀>가 섣불리 게으른 반복이라고 주장할 생각은 없다. 그보다 일본 스탭과 배우, 자본을 동원한 이 영화는 곽재용 자신의 인장을 곳곳에 새겨 넣은 꽤나 흥미로운 구석들마저도 발견된다.

21살 생일날, 갑작스레 나타나 자신에게 호감을 보이는 '그녀'와 믿을 수 없는 데이트를 즐긴 지로(코이데 케이스케). 1년 뒤 쓸쓸해하던 그에게 1년 전 그녀와 똑같이 생긴 '싸이보그'가 나타난다. 그날로 동거에 돌입하는 지로와 싸이보그 '그녀'. 이때부터 예상된 수순이다. 싸이보그의 능력에 대한 농담들과 일상을 늘어놓던 영화는 그녀가 여고에 난입한 강도를 잡거나 트럭에 치일 뻔한 아이를 살리게 되는 등 선행을 하는 이유를 설명하며 운명론을 꺼내든다. 바로 싸이보그를 만들고 과거로 보낸 것이 미래에 과학자가 된 지로라는 설명. 이때부터 지로의 유년 시절 고향을 돌아본 이후 곽재용 감독은 특유의 멜로 정서를 삽입한다. 지로가 그녀에게 사랑을 느끼지만 싸이보그는 묵묵부답인 것이 당연지사. 이때 끼어드는 천재지변은 또 한번 드라마를 다른 국면으로 전환시킨다.

다시 강조하자면, <싸이보그 그녀>는 분명 곽재용 감독의 야심작이다. 누가 봐도 '하이 컨셉'의 캐릭터가 분명한 미모의 싸이보그가 눈에 들어오는 동시에 시간 여행이란 판타지적 소재에 두 남녀의 순정이란 확실한 정서를 밑바탕에 깔았다. 영화는 코믹한 에피소드를 배치한 전반부를 넘어서면 지로의 향수어린 과거사를 거쳐 그녀에 대한 나름 진지한 사랑의 감정까지 전달하려 노력한다. 그러한 정서의 결정판은 대지진 한복판에서의 희생. 곽재용 감독은 판타지와 멜로와 코미디와 액션을 아우르는 장르영화의 정석들을 모두 가져와 <엽기적인 그녀>의 업그레이드 버전을 내놓은 셈이다.

자잘한 에피소드의 나열을 견우의 코믹하면서 정겨운 나레이션으로 극복했던 <엽기적인 그녀>와 달리 <싸이보그 그녀>는 시퀀스 별로 좀 더 정돈되어 있는 느낌이다. 하지만 그건 이 영화의 약점이기도 하다. 예산이 늘어난 탓에 시원시원한 롱숏과 특수효과를 사용한 볼거리가 늘어난 듯 보이지만, 고속촬영의 남발과 과도한 음악의 사용과 같은 곽재용 감독 특유의 정서의 과잉은 여전하다. 더욱이 각 장르 요소들이 블균질 하게 뒤섞여있어 지로나 미래에서 온 또 다른 그녀의 심리를 쫓아가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무엇보다 친절하게도 120분이 넘는 원래 상영시간은 성질 급한 한국관객을 위해 확 줄어들었다. 그 덕에 지로가 왜 싸이보그 그녀에 대한 연정을 품을 수밖에 없는 지에 대한 단초가 되는 초반 20여 분의 로맨스 장면들이 기이한 편집으로 날아가 버렸다. 더불어 편집 순서 또한 약간의 반전 효과와 함께 감정을 더욱 부풀려 주었던 미래 장면이 프롤로그처럼 배치됨으로써 관객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어 버린다. 결국 과도한 친절이 그나마 남아있었을지 모를 영화의 재미를 반감 시켰다랄까.

그러니까 믿고 가야할 건 오로지 아야세 하루카 뿐. 드라마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와 <백야행>, <호타루의 빛> 등으로 친숙한 아야세 하루카는 여기서 전지현 못지않은 매력을 뽐내고 있다. 차가운 싸이보그 그녀의 표정 잠깐잠깐 내비치는 따스한 미소나 미래에서 온 그녀의 순정이라는 상반된 연기가 남성 관객들을 매혹시키기에 부족함이 없다. 원래 곽재용 감독이 원했다는 아오이 유우의 청순함과 비교되는 섹시함까지 묻어나니 금상첨화랄까. 차태현의 순박함을 연상시키는 코이데 케이스케는 물론 중량감을 떨어지지만 무리 없는 연기를 보여준다.

그리하여 결론. <싸이보그 그녀>는 <엽기적인 그녀>를 좋아했던 관객들에게도 호불호가 갈릴 만한 작품이다. '엽기녀'의 캐릭터는 더욱 극단으로 밀어붙였고, 대지진을 비롯한 볼거리고 풍부하고, 더욱이 시간 여행이란 판타지적 설정까지 도입됐다. 물론 청춘남녀의 순정이란 지고지순한 테마 또한 여전하다. 문제는 호흡, 호흡인데 다소 지루한 후반부를 버틸 수만 있다면, 혹시 모르겠다. 연인과 손 꼭 붙잡고 극장 문을 즐거이 나설 수 있을지도.

2009년 5월 11일 월요일 | 글_하성태(무비스트)




-아야세 하루카만 믿고 가는 거다!
-최소한 코미디와 멜로의 전후반으로 나뉘었던 <무림 여대생>의 전철은 밟지 않는다.
-나를 지켜주는 미모의 싸이보그 그녀, 확실히 '하이 컨셉'이지.
-89년대에 데뷔한 곽재용 감독의 이름을 다시금 검색해야 한다고?(응, 이건 강점인가?)
-시간의 논리가 도무지 맞지 않는다며 불평할 논리적인 당신.
-노년의 지로를 호위하고 있는 싸이보그 무리들은 마치 호러의 한 장면이잖아!
17 )
bjmaximus
전혀 볼 생각 없다는..   
2009-05-11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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