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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안내! 작은 음악이 만들어내는 세상을 향한 기적
피쉬 스토리 | 2009년 7월 28일 화요일 | 김도형 기자 이메일


혜성이 지구와 충돌한다. 앞으로 남은 시간은 대략 5시간. 사람 그림자도 안 보이는 거리는 텅 비어 스산하기만 하다. 하지만 웬걸? 골목의 한 레코드 가게는 버젓이 영업을 하고 있으며 심지어 그 안에는 음악을 듣고 있는 손님까지 있다. 지구의 마지막 순간에도 듣고 싶은 음악을 듣고 싶단다. 가게 주인은 손님에게 ‘피쉬 스토리’라는 음악을 권한다. 영국의 전설적인 록 밴드 섹스 피스톨즈보다 1년 앞서 발매된 이 앨범은 ‘게키린’이라는 일본 밴드의 음악이다. 하지만 시대를 너무 앞서간 탓에 어떠한 주목도 받지 못하고 사라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혜성 충돌 5시간을 남기고 이 음악은 세상을 구한다. SF 영화냐고? 아니다. 음악영화냐고? 비슷하긴 하다. 하지만 그것보단 사람에 관한, 사람의 인연에 관한, 사람의 인연이 만드는 기적에 관한 영화다.

일본의 차세대 작가로 주목받고 있는 이사카 코다로는 발표하는 작품마다 많은 관심을 받았다. 수많은 상은 물론이고 평단과 독자의 지지를 동시에 받는 작가로도 유명하다. 그의 작품은 기발한 발상과 유머러스한 문체, 치밀한 구성, 다양하면서 생기 넘치는 캐릭터, 무엇보다 세상을 향한 진지한 시선이 특징이다. <피쉬 스토리>는 노래로 세상을 구한다는 황당한 아이디어에서 시작하지만, 글을 읽다보면 사람들과 세상에 대한 현실적인 이야기가 구구절절 넘쳐난다. 이사카 코타로의 작품은 <피쉬 스토리> 이전에 이미 <명랑한 갱이 지구를 움직인다> <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 <사신 치바> <중력 삐에로> 등이 영화로 만들어 개봉됐고, <골든 슬렘버>는 영화로 제작 중이다.

사실 그의 작품은 한계가 없는 상상력과 복잡한 인물 관계, 뚜렷한 주제 의식과 메시지로 영화화하기 힘들기로 유명하다. 하지만 <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를 연출했던 나카무라 요시히로 감독은 오히려 작가의 지명을 받아 <피쉬 스토리>를 연출했다.(<골든 슬렘버>까지 연출해 두 사람은 세 작품을 함께 하고 있다) 감독은 세상을 구한다는 큰 주제를 ‘피쉬 스토리’라는 작은 음악으로 풀어내면서 그 음악의 영향을 받는 캐릭터들을 적제적소에 배치했다. 음악에 무슨 힘이 있기에 세상을 구하랴 싶지만, 음악이 아니, 모든 창작물이 사람들에게 끼치는 영향은 생각보다 엄청나다. 감독은 바로 이 점에 주목했다.

<피쉬 스토리>는 1975년부터 2012년까지 이어지는 음악여행이다. 음악에 심취해 떠나는 여행은 아니고, 음악을 통해 사소한 전환기를 거치는 사람들을 따라가는 여행이다. 비록 그 사소한 전환기가 인생 전체, 아니 인류 전체에 영향을 끼치는 대사건으로 발전하지만, 감독은 시침 뚝 떼고 사건의 해결보다는 그와 관련된 사람들의 소소한 일상을 섬세하게 담아낸다. 인류를 구하는 사건 자체에는 관심이 없다. 단지, 창작자의 한 사람으로서 누군가의 창작물이 다른 사람들에게 작은 변화나 영향력을 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영화의 대사처럼 “이 음악이 누군가에게 닿을 수 있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음악을 계기로 맺어진 사랑. 아이가 태어나고 아이는 아빠의 가르침대로 정의를 위해 싸우다 한 소녀를 구한다. 그 소녀는 결국 혜성 충돌을 시간을 계산해 지구를 구한다. 다소 황당한 전개지만, <피쉬 스토리>는 현실성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어떠한 영감에서 비롯된 작고 소소한 인연들로 인하여 결국 기적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준다. 이는 이사카 코타로의 작품 세계를 그대로 보여주는 한 예다. 얼핏 보기에는 파편처럼 흩어진 에피소드들이지만, 멀리서 보면 그것들이 서로 유기적으로 작용을 하고, 그 작용은 이 세상에 긍정적인 영향력을 끼친다는 세계관에서 기인한다.

영화는 이사카 코타로와 나카무라 요시히로 감독을 처음으로 맺어줬던 <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 제작진과 출연진도 한 몫을 한다. 이미 한 번의 경험이 있는 두 사람과 스탭들은 두터운 신뢰를 바탕으로 제작에 들어갔으며, 이사카 코타로는 완성된 필름을 보고 크게 만족했다. 특히 영화의 중심인 ‘피쉬 스토리’는 음악 총괄 프로듀서를 맡은 사이토 카즈요시가 곡을 쓰고 이사카 코타로가 직접 가사를 써서 완성했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큰 영향을 준 사이다. 이사카 코타로는 사이토 카즈요시의 음악을 듣고 작가가 되기로 결심했고, 후에 사이토 카즈요시는 이사카 코타로의 소설에서 영감을 받아 앨범을 제작하기도 했다. 이렇게 완성된 ‘피쉬 스토리’는 프로 연주자 못지않은 혹독한 훈련을 거친 배우들로 인해 큰 반향을 일으켰고, 극중 그룹명인 ‘게키린’이라는 이름으로 정식 앨범을 내기도 했다.

<피쉬 스토리>는 다양한 인물이 등장하는 영화답게 각각의 캐릭터 비중이 모두 높다. 1975년 결성된 ‘게키린’의 뮤지션들은 물론 1982년 ‘피쉬 스토리’를 듣고 위기에 빠진 여자를 구하는 남자나 그 남자의 아들, 그 아들이 구하는 천재 수학 소녀, 그리고 혜성 충돌 5시간 전까지 ‘피쉬 스토리’를 들으며 기적을 갈구하는 레코드 가게 주인 모두 중요한 역할을 한다. TV시리즈 <전차남>으로 인기를 모은 이토 아츠시가 ‘게키린’의 리더를, <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에서도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준 하마다 가쿠가 ‘피쉬 스토리’를 듣고 위기에 처한 여자를 구하는 남자를, <히노키오>에서 남장여자 ‘준’을 연기한 타베 미카코가 천재 수학 소녀로 등장해 각자의 역할을 충실하게 해낸다.

<피쉬 스토리>는 우리가 사는 세상을 좀 더 넓은 시각으로 바라보기는 권한다. 영화란 인생의 단면을 잘라 보여주는 것이지만, 그 단면에 담긴 이야기와 영감은 다른 인생에 새로운 영향력을 끼치기도 한다. 인생의 한 부분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고, 그 순간의 느낌과 영감이 새로운 에너지를 불어 넣는다. 크고 엄청난 사건만이 스스로를 바꾸고, 세상을 바꾸는 것이 아니다. 각자가 보내는 일상의 면면이 모여 나의 인생을, 인생을 통해 사람들과의 관계를,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 세상을 구할 수도 있다. 이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으며 서로에게 작용한다. 그 작용의 출발점은 하나의 노래일 수도 있고, 누군가의 말 한 마디일 수도 있다. 아주 작은 가치지만 얼마든지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것이 우리네 삶이다.

2009년 7월 28일 화요일 | 글_김도형 기자(무비스트)




-이사카 코타로의 작품을 좋아한다
-<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 이후 작가와 감독의 차기작을 기다렸다
-인생을 좀 더 큰 눈으로, 넓은 시각으로 보고 싶다
-일본의 젊은 배우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할리우드 오락영화처럼 단순하게 즐길 수 있는 영화가 좋다
-시간과 인물들의 배치를 어지럽게 섞어놓으면 헛갈린다
-조용한 영화를 보면 잠이 온다
11 )
kisemo
잘봤습니다~   
2010-03-25 17:18
nada356
역시 독특하고 난해한 일본 영화.   
2009-12-04 16:59
ldk209
이 감독은 정말 노래 하나는 잘 활용하네....   
2009-08-25 23:26
gaeddorai
입소문이 괜찮던데요   
2009-08-01 00:47
mooncos
감독과 원작의 힘만으로도   
2009-08-01 00:32
hoya2167
일본영화는 전 별루인데...왠지 보고 싶긴 하네요   
2009-07-29 10:07
kwyok11
세상을 향한 기적~~   
2009-07-29 07:16
ooyyrr1004
시나리오가 어떤 식으로 흘러가는지에 따라서 극과 극의로 갈릴수 있을거 같네요   
2009-07-28 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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