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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에는 사랑도 영혼도 없었다 (오락성 4 작품성 4)
고스트 : 보이지 않는 사랑 | 2010년 11월 22일 월요일 | 양현주 이메일

‘오 마이 러브~ 마이 달링~’ 이 두 소절만 듣고도 누구나 <사랑과 영혼>의 주제가 ‘Unchained Melody’를 떠올린다. 심지어 테마곡을 따라 부를 수도 있는 20세기 할리우드 흥행영화가 아시아판 <고스트: 보이지 않는 사랑>(이하 <고스트>)으로 리메이크됐다. 우선 지난 13일에 먼저 개봉한 일본에서는 첫 주 박스오피스 2위 성적을 받았다. <보트>나 <첫눈> <오이시맨> <비몽> 등 꾸준히 제작되어 온 최근 한일합작영화들이 저조한 성적을 기록했던 것에 비하면 놀랄 만한 순항이다.(최근 합작들이 저예산 영화임을 감안한다 해도.)

리메이크작 <고스트>는 원작에 약간 변경을 줬다. 남녀 성 역할을 바꾼 것이다. 다소 수동적이었던 몰리(데미 무어)는 꽃미남 스타 송승헌이 계승하고, 故(고) 패트릭 스웨이지가 맡았던 영혼은 마츠시마 나나코가 맡았다. 여주인공 나나미(마츠시마 나나코)는 도쿄에 사는 성공한 CEO다. 생일날 기분 좋게 만취한 그녀는 분수대 앞에서 준호(송승헌)를 만난다. 이 우연한 만남으로 서로에게 빠져드는 두 사람은 소박한 결혼식을 올리고 둘 만의 행복을 일궈나간다. 하지만 꼬박 만난 지 일년 째 되는 생일, 나나미는 사고로 죽음을 맞는다. 죽어서도 준호 곁을 맴돌던 나나미는 자신의 죽음에 음모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리메이크 <고스트>는 한 마디로 모험심이 없는 안일한 리메이크다. 무엇보다 영화는 리메이크로서의 재해석에 큰 관심이 없어 보인다. 성 역할을 바꾼 것 외에는 대사와 장면, 세부적인 코믹 터치까지 원작을 그대로 복기한다. <20세기 소년> <소라닌> 등 최근 만화 원작 영화에서 흔히 봐왔듯이, 원작에 대한 고증과 예우에 철저한 일본영화 경향은 이 영화에서도 그대로 독이 됐다. 순애보에 걸맞는 배우들의 아우라도 원작과 비교하면 궁색해진다. ‘<비틀 쥬스>스러운’ 키치와 판타지 장치는 사라지고, 리듬을 살린 코미디의 흐름도 놓쳤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로맨스의 설득력이 있느냐의 문제다.

우선 로맨스 영화의 관건이라면 생면부지의 남녀가 만나서 얼마나 자연스럽게 로맨스를 이루는가로 관객을 납득시키는 것이다. 이로써 두 사람만의 감정이 관객에게도 전이되는 것이 멜로의 승부수다. 애초에 원작 자체가 현실감이 살아있는 로맨스 영화가 아님을 감안한다 해도 2010년판은 비현실로 점철되어 있다. 원작에서는 이미 연인 관계였던 남녀 주인공들을 리메이크에서는 첫 만남부터 따라간다. 일본으로 유학 온 한국 남자와 도쿄의 세련된 커리어 우먼이라는 이질적인 층위의 두 사람이 사랑하게 된 경위를 알리기 위해서다. 두 사람이 급속도로 가까워지는 전반부는 순전히 연기력으로 관객에게 공감을 불러 일으켜야 한다. 이 사명감은 소위 ‘오글거린다’는 표현으로 대체할 수 있는 로맨스 신으로 간담을 서늘하게 한다. 열쇠고리와 토끼풀 반지를 교환하는 결혼식 장면에 이르러서는 현실감이 철저히 결여된 사랑놀이의 정점을 보여준다. 예쁘게 포장된 세트 속에 주인공들을 놓고 ‘사랑해’라는 대사를 여러 번 반복한다고 해서 로맨스가 완성되는 건 아니다. 급기야 원작의 명장면인 도자기 신은 그대로 패러디로 둔갑한다. 웃음기를 싹 뺀 장면에서 폭소가 빚어지는 슬픈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의외로 캐스팅은 좋다. 마츠시마 나나코는 이 영화를 마지막까지 혈혈단신 견인한다. 나나코와 더불어 우피 골드버그 역에 일본의 국민 어머니 키키 키린이 깜짝 등장해 적절한 생동감으로 관객을 구원한다. 송승헌은 일본에서 한류스타로서 티켓파워를 자랑하고 있지만 영화적으로는 여전히 미묘하다. 최근 홍콩 누아르의 전설 <영웅본색>을 그대로 말아 먹은 송승헌이 연이어 리메이크작으로 돌아오는 것은 일종의 농담 같다. <무법자>에서 눈뜨고 보기 힘든 송승헌식 주윤발 연기를 야유와 울분으로 견뎌냈던 데 비하면, <고스트>의 송승헌은 그나마 아직 로맨스의 얼굴로는 기능하고 있다. 송승헌의 굵은 팔뚝에 흐르는 땀방울이 데미 무어의 사슴 눈이 갖는 호소력을 대체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그러니까 영화는 일본드라마 <고쿠센> <제니게바>의 감독과 <마녀의 조건> <미녀와 야수>의 마츠시마 나나코, <걸어도 걸어도>의 키키 키린을 믿고 보기에는 아쉬운 수준이다.

원작은 할리우드 로맨스 영화에 동양적 문화와 절제된 판타지를 버무려 관객을 사로잡았다. 좀비나 부두인형 등 오컬트적 존재는 서양 문화권에도 존재하지만, <고스트>에 등장하는 접신이나 사후세계는 동양적인 스타일에 가깝다.(비슷한 시기의 영화 <드라큘라>보다는 <천녀유혼>이 <고스트>와 유사해 보인다.) 일본으로 건너오면서 원작의 인기 요소였던 할리우드 속 동양적인 재미는 자연히 소멸된다. 그 빈 자리를 채우는 새로운 매력 요소가 부재하다는 것은 이 영화의 큰 허점 중 하나다. 그럼에 충분한 오락영화였던 원작과 이 얌전한 리메이크작의 매력은 비교 선상에 올리기 어렵다. 원작을 본 관객도 원작을 보지 않은 관객도 모두 <고스트>와 공명하기란 쉽지 않을 것 같다.

2010년 11월 22일 월요일 | 글_프리랜서 양현주(무비스트)    




-송승헌의 팬이라면 만족도 100%.
-‘죽음도 불사한 사랑’을 테마로 한 데이트 무비 활용도 80%.
-송승헌식 주윤발보다 송승헌식 몰리(데미 무어) 싱크로율이 차라리 높다
-혹시 <사랑과 영혼> 패러디?
-무려 한미일합작 프로젝트라고? 요즘 리메이크작에서 재미 본 적 있어?
-솔까말, 이런 류의 기획 리메이크에서 어떤 의미도 찾을 수 없다(상업논리라면 할 말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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