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검색
검색
사랑도 복제가 된다면 (오락성 6 작품성 7)
| 2012년 2월 24일 금요일 | 정시우 기자 이메일

할아버지가 사는 바닷가 마을에 잠시 놀러온 소녀. 그곳에서 한 소년을 만난다. 둘 사이에 싹트는 깊은 교감. 하지만 소녀는 떠나고 소년은 남겨진다. 12년 후. 성인이 된 소녀가 기억 속의 소년을 찾아 마을로 돌아온다. 기다렸다는듯, 두 사람은 사랑에 빠져들지만 재회의 시간은 너무나 짧다. 남자가 갑작스러운 사고로 세상을 떠나면서 이번엔 여자가 남겨진다. 사랑하는 사람을 보낼 수 없는 여자는 남자의 유전자를 채취해, 자신의 자궁에 품는다. 그렇게 태어난 아이의 이름은, 남자의 이름을 따서 토미(맷 스미스). 토미에게 평생을 바치는 여자의 이름은 레베카(에바 그린)다.

복제인간이 등장한다고 해서 SF장르라 단정 지으면 곤란하다. 이건, <블레이드 러너>나 <아일랜드>와는 다른 영화다. 굳이 비슷한 종을 찾자면, 가즈오 이시구로의 소설 ‘나를 보내지 마’를 영화화한 <네버 렛미고>에 가깝다. 내용이 아니라 분위기에서 퍽이나 닮았다는 얘기다. <네버 렛미고>처럼 <움>도 장르보다는 뉘앙스가 도드라지는 영화다.

장기 제공을 목적으로 복제된 <네버 렛미고>의 복제인간들과 달리, <움> 속의 복제인간들은 추억을 위해 복제된다. 인간들은 죽은 부모에 대한 그리움을, 먼저 떠난 자식에 대한 아쉬움을 그들의 복제인간을 통해 위로받으려한다. 알다시피, 레베카의 경우 그 대상이 사랑하는 연인이다. 복제인간을 다룬 영화에는 윤리적 문제들이 뒤따르기 마련인데, 레베카의 경우 또 하나가 추가된다. ‘근친상간’이라는 이름의 금기다.

사랑하는 남자의 유전자로 낳은 아이. 이 아이는 아들인가 연인인가. 혹은 아들도 연인도 될 수 없는가. 이것은 ‘복제인간에게 존엄성은 있는가’를 묻는 것과는 또 다른 문제다. 영화는 아들(혹은 연인)을 아슬아슬하게 바라보는 여자의 심리를 공허하리만치 꾹꾹 누르며 담아낸다. 대사가 아닌 눈빛에서 긴장감이 조성된다. 여자의 강렬한 욕망도 아주 작은 몸짓 하나로 표출될 뿐이다. 을씨년스러우면서도 적막한 바다 풍경은 영화의 서정적인 정서를 주조하는데 또 하나의 큰 몫을 담당한다.

“오랜 시간이 흘러도 난 너를 기억할거야” 남자가 여자에게 남긴 이 말은, 아마 <움>을 지배하는 주된 동력일 게다. 아쉬움이라면, ‘남자를 향한 여자의 기억’이 비해, ‘여자에 대한 남자의 기억’이 소심하게 그려지지 않았나 하는 점이다. 영화는 남자가 자신의 정체를 (비로소) 알게 되는 부분에 다다라, 황급하게 매듭을 지어버린다. 존재론적 고민과 마주한 남자의 심리에 보다 집요하고 접근했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영화에 대한 잔상이 보다 묵직하게 다가오지 않았을까 싶다.

2012년 2월 24일 금요일 | 글_정시우 기자(무비스트)     




-여신 에바그린!(아, 이젠 조니 뎁의 여신님)
-아역들의 감질 맛 나는 감정연기. <해품달>의 유정이와 진구도 그렇고. 요새 아역들은 사랑을 아는겨?
-아름답다, 영상미
-소재는 파격적. 분위기는 감성적. 뜨겁게 활개치는 영화를 원하신다며
1 )
tprk20
네버 렛미고처럼 약간 무거운 영화일까 호기심에 더 기대되는 영화같습니다..과연 어떤 영화일지 눈으로 확인을 하고싶네요..   
2012-02-25 02:26
1

 

 

1일동안 이 창을 열지 않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