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옴므파탈은 거들 뿐 (오락성 6 작품성 5)
벨아미 | 2012년 8월 28일 화요일 | 양현주 이메일

1890년 파리는 향락의 도시다. 너도 나도 부를 찾아 부나비처럼 파리로 모여든다. 거리의 여인들까지도 어렵지 않게 돈다발을 거머쥐는 그 곳으로 퇴역 군인 조르주 뒤루아(로버트 패틴슨) 또한 찾아온다. 알제리 전선을 뒤로하고 스며든 파리의 생활이란 값비싼 턱시도, 고급 구두, 여인들의 웃음소리가 어우러질 줄 알았지만, 현실은 꿈과 다르다. 매달 말이 되면 쥐꼬리만한 월급도 바닥나고 바퀴벌레가 기어 다니는 단칸방을 나와 끼니 대신 밤 산책으로 주린 배를 달랜다. 하지만 행운이란 스치듯 찾아오는 법이다. 조르주 뒤루아는 우연히 만난 군인 동료 포레스티에(필립 글레니스터)에게 저녁 식사를 초대받고 파리 상류층 모임 속으로 첫 발을 내딛는다. 상류층 부인들은 매혹적인 청년 조르주 뒤루아에게 눈길을 주고, 그는 본격적인 신분상승의 열차를 타기 시작한다. 벨 아미(아름다운 친구)라는 애칭과 함께.

<벨아미>가 원작으로 삼은 기 드 모파상의 동명소설은 자연주의 소설의 대표작이다. 19세기 후반 프랑스를 대표했던 자연주의 사조는 사랑, 우정, 신의, 종교 등 인간이 믿어온 가치를 깨부수고 선과 악을 있는 그대로 묘사했다. 에밀 졸라의 '테레즈 라캥'을 떠올려보라. <벨아미>는 한마디로 가난한 농사꾼 아들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신분상승에 성공하는 이야기다. 주인공 조르주 뒤루아는 풍요롭던 19세기 파리의 상징으로 치환된다. 또한 프랑스 제국주의를 배경으로 부를 쌓는 뒤틀린 시대와 인간을 대변한다. 재미있는 것은 이런 인물이 몰락하는 과정이 무게 있게 다뤄지는 보통의 텍스트들과 달리 성공의 정점에서 이야기가 끝난다는 것이다. 21세기에 영화로 부활한 <벨아미>는 원작과 마찬가지로 마지막까지 악행을 단죄하지 않는다. 사람을 취하고 버리는 데 거리낄 게 없는 벨 아미는 자신이 오를 수 있는 욕망의 첨탑까지 오른다. 고리타분한 권선징악 따위는 철저하게 배제한 소설의 작법 그대로다.

가난하지만 매력적인 외모와 욕망을 무기로 한 청년이라는 캐릭터는 우리에게 낯설지 않다. 할리우드 고전 <젊은이의 양지>, 그리고 더 거슬러 올라가 스탕달의 소설 '적과 흑'에서도, 그리고 주말 드라마 속에서도 심심치 않게 만나고 있다. 문제는 벨 아미라는 캐릭터에게 매력을 느끼기 어렵다는 것이다. 낭만적인 화술, 매력적인 눈빛, 낮고 부드러운 음성 등 영화는 원작과 마찬가지로 그가 가진 매력이나 무기를 상세히 설명하려 하지 않는다. 어떻게 그가 쉽게 여자들을 취하는지 알 수 없지만 그 공백을 설득시키는 것은 오로지 배우의 몫이다. 애초에 벨 아미라는 선과 악이 배제된 캐릭터에게 감정이입을 기대하는 것은 원작의 핵심이나 영화의 시선과 부합되지 않는다. 하지만 오직 남자 주인공 조르주 뒤루아의 치명적인 매력이 모든 사건의 시작이자 끝이라면 관객 또한 스크린 속 백작 부인들과 마찬가지로 벨 아미에게 매혹되어야 마땅하다. 퇴폐적이지만 거부할 수 없는 벨 아미가 되기에 로버트 패틴슨의 연기는 역부족이다. 다만 그가 받아야 할 빛과 영예를 그에게 농락당했던 연인들이 나눠가지면서 영화는 주객이 전도된다. 특히 클로틸드로 출연한 크리스티나 리치는 벽화 같은 로버트 패틴슨 곁에서 생생하게 살아있다. 영화의 벨 아미는 크리스티나 리치였다.

2012년 8월 28일 화요일 | 글_프리랜서 양현주(무비스트)    




-크리스티나 리치의 귀환
-자연주의보다는 여성주의에 힘이 실린 영화
-고급 막장 드라마 스토리의 원조
-관객은 그를 욕망하지 않는다
-로버튼 패틴슨의 거품이 빠질 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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