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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을 지배하는 사랑 혹은 집착
중독 | 2002년 10월 23일 수요일 | 이메일

자고로 반전이 있는 영화에는 말을 아끼라고 했다. <식스센스>가 그랬고, <디 아더스>가 그랬듯이 충격적인 반전은 영화의 재미를 증가시키고 때로는 그 가치까지 결정한다. 영화사 역시 반전이 있다는 것은 강조해도 반전의 실체는 숨기기 위해 당부를 거듭하는 것이 보통이다. 영화에 대한 평가와 흥행을 좌지우지 할 수도 있는 반전이 미리 노출된다는 것만큼 치명적인 일 또한 없기 때문이다. 결국 결정적인 재미를 반감시키는 스포일러가 되지 않도록,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미래관객들의 순수한 영화 관람을 위해 반전부분에 대해서는 거론하지 않을 터이니, 이해를 바란다.

서두가 길었지만 그 서두만큼이나 오랜 관심을 받았던 영화 <중독>은 비단 이미연과 이병헌이라는 두 배우의 조우뿐만 아니라, 톱스타들을 기용해서 ‘외도’, ‘불륜’을 넘어서서 ‘패륜’이라는 자극적인 소재를 직접적으로 거론하며 관객들을 흥분시킨 화제작이다.

은수(이미연)와 호진(이얼)은 결혼한지 3년이 된 누구보다 사랑하는 부부. 그들은 카레이서인 호진의 동생 대진(이병헌)과 행복하게 살고 있다. 그러나 대진의 경기를 보러가던 호진은 교통사고로, 대진은 레이스 중 충돌로 동시에 큰 사고를 당하게 된다. 그리고 1년 뒤에 깨어난 대진은 자신이 호진이라고 주장하고 호진의 체취가 느껴지는 대진의 행동에 은수는 혼란에 빠진다. 결국 서로의 사랑에 중독되어 있던 대진(혹은 호진)과 은수는 다시 영혼까지 끌어안는 사랑을 시작한다.

영화는 빛 바랜 추억 속의 사진처럼 모노톤의 화면으로 시작한다. 그러나 행복한 순간의 모습들은 이제 곧 과거가 될 것이라는 것을 암시하듯 위태롭다. 동화 속에나 나올 것 같은 전원주택에서 결혼 기념일을 축하하는 부부의 모습 등 민망할 정도로 상투적인 행복의 묘사가 계속되지만, 행복하기만 해 보이는 도입부에는 불길한 미래를 암시하는 복선들도 가득하다. 사고가 있는 날 아침 끊어진 세상에서 하나뿐이라는 은수의 목걸이는 ‘소중한 물건의 파손은 불행을 상징한다’는 클리셰를 그대로 따르며 사랑 혹은 행복의 종말과 닥쳐올 비극을 예고한다. 대진이 카레이싱을 즐긴다는 사실 역시 평화롭게만 보이는 그의 얼굴 뒤에 숨겨진 강한 욕망이 자리잡고 있다는 것을 암시하고, 남편과 시동생을 ‘호진’과 ‘대진’이라는 이름으로 부르는 은수의 모습에서 이 둘의 정체성을 구분해야만 하는 감독의 의도가 엿보인다.

최고의 장면 중 하나라고 꼽을 정도로 소름끼치게 리얼리티가 느껴지는 사고장면으로 관객들의 넋을 빼앗은 뒤, 세상에서 가장 행복했던 부부의 모습은 호진의 영혼이 대진에게 빙의된 채로 깨어나면서 스크린에서 사라진다. 지나친 사랑이 집착으로 이어져 사랑하는 이의 곁에 남아있는 것은 흔한 모티브이지만, 영혼까지 빙의될 정도라면 차원이 다르다. 그것도 친동생에게. 박영훈 감독은 이런 지독한 사랑을 적절한 완급조절을 통해 관객들에게 이해시키고자 한다. 그리고 이 가볍지 않은 짐을 이병헌과 이미연 두 배우에게 맡긴다.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내면의 떨림을 그대로 보여주는 이병헌의 눈빛 연기는 그가 이제 배우로 거듭나고 있음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관객들에게 쉽게 이해하기 힘든 사랑을 받아들이게 하는 것도 순전히 그의 힘이다. 그에 비해 다소 전형적인 연기를 보여주며 전작 <물고기 자리>를 연상케하는 이미연도 병실의 독백신에서는 여배우로서 성숙함과 노련함이 느껴진다. 특히 농염하게 천천히 달아오르는 정사씬은 이 두 배우의 호흡과 함께 화려하면서도 조용히 관객들을 매혹시킨다. 육감적이거나 노골적인 포즈 하나 없이 조용하면서 거친 듯한 숨결만으로도 정념이 넘친다.

상식적으로는 용납하기 힘든 사랑을 제시하는 <중독>은 기존 멜로 영화의 틀을 벗어난 멜로 영화이다. 그러나 영화는 후반부에 접어들면서 난데없는 공포물이 되는 우를 범하기도 한다. 영화가 멜로와 스릴러의 중간계를 가는 동안 당황하는 것은 관객들이다. 반전 이후의 대진의 독백 역시 사족이다. 무엇보다도 <중독>의 가장 큰 아쉬움은 반전을 소화해내지 못하는 결말의 설득력이다. 영혼까지 사로잡은 운명적인 사랑으로 관객을 눈물짓게 하던 영화가 이제까지 쌓아왔던 운명론을 거부할 때, 그 사실을 관객들에게 자연스럽게 흡수시키기 위해 필요한 것은 연기력 그 이상의 것이다. 그러나 <중독>은 관객에게 반전을 던져둔 채 충분한 이해의 조건들은 제시하지 않고 서둘러 마무리를 지어, 마치 2시간 동안 특정한 감정선을 따르도록 강요당한 것 같은 느낌을 남긴다. 물론, 애절한 사랑에 저절로 가슴이 저리듯이 이 모든 느낌까지 포용하고 이들의 미친 사랑을 받아들이는 것은 관객들의 몫이다.

4 )
naredfoxx
어머? 이병헌씨 완전 어려보임.   
2010-01-01 20:35
ejin4rang
중독성있다   
2008-10-16 15:41
kangwondo77
리뷰 잘 봤어요..좋은 글 감사해요..   
2007-04-27 16:09
js7keien
비밀 후에 개봉되어서 빛을 잃고 퇴보해버린 영화,
차라리 비밀 이전에 영화화되었다면 좋았을...   
2006-10-03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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