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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 빈, 영국을 부탁해!
쟈니 잉글리쉬 | 2003년 6월 20일 금요일 | 임지은 이메일

<미스터 빈> 시리즈에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 하나. 빈은 레스토랑에 갔다가 얼떨결에 타타르 스테이크란 걸 주문한다. 물론, 그게 뭔지 알았을 리는 만무하다. 조금 후 웨이터가 들고 온 음식은 세상에나, 날고기가 아닌가. (이해를 돕기 위해 설명. 타타르 스테이크는 날달걀 노른자에 양파즙을 곁들인 서양식 육회다.)

사실 레스토랑에서 먹고 싶은 음식을 성공적으로 주문하기란 꽤나 까다로운 일이고, 이미 그 점에 대해 숙지하고 있는 우리들은 옆 테이블에서 먹고 있는 음식을 눈치껏 컨닝하거나 아니면 늘 먹는 메뉴만을 주문하는 등의 잔머리를 통해 난관을 타개해나간다. 하지만 결국 실패하고 만 경우라면, 뭐 어쩔 수 없다. 죽을 각오를 하고 재주껏 삼키든지, 아니면 “체중조절 중이라서...” 등등의 핑계를 대고 고픈 배를 움켜 쥔 채 비틀비틀 음식점을 나서든지. 그런데 빈의 대처방법은 좀 남다르다. 한 마디로 ‘식겁해 버린’ 그는 갑자기 반죽 같은 스테이크 덩어리를 꽃병, 옷 속, 테이블 보 밑에 닥치는 대로 쑤셔 넣기 시작한다. 어쨌든 그에게는 이 음식, 혹은 식물(食物)이 눈앞에서 사라지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이런 허접한 대처를! 그야말로 눈 가리고 아웅, 영어로 하면 “The cat that ate the canary.” 자체가 아닌가.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흑흑.

베르그송 말마따나, 확실히 웃음이란 변화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하는 대상을 보는 바로 그 순간에 터져 나온다. 그렇다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우월감을 느끼게 하는 바보, 혹은 광대들의 대척점에 서있는 사람들은 누굴까. 아마도 일반인보다 피가 몇 도 쯤은 차가울 것 같은 첩보원들이 아닐까. 지략도, 날렵한 몸놀림도, 사격 솜씨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첩보원에게 요구되는 가장 핵심적인 사항은 어떤 상황이 닥쳐도 당황하지 않는 침착함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미스터 빈이라는 어이없는 인물이 절대로 가져서도 안되고 가질 수도 없는 직업 일순위도 첩보원이 아닐까. 그런데 영화 <쟈니 잉글리쉬>는, 빈 디젤도 아닌 미스터 빈을, 남보원도 아닌 첩보원으로―아, 정말이지 삼류개그다―만들어버리고 만다. 뒷감당을 어떻게 하려고?

물론 이런 파격인사가 정상적인 경로로 이루어졌을 리는 없다. 이유는 단 한 가지, 001을 위시한 영국의 걸출한 첩보원들이 모두 사망해버렸기 때문. (게다가 그들의 비명횡사는 알고 보면 쟈니의 책임이 크다.) 그리하여 첩보원들의 생활을 오매불망 동경해왔지만 실제로는 시다바리 신세였던 영국 첩보국 MI7 직원 쟈니 잉글리쉬(로완 앳킨슨)는 일약 (유일무이한) 첩보원으로 승진하게 된다. 한편 영국 여왕의 왕관이 사라져버리고 여왕마저 느닷없이 왕위를 내놓겠다는 편지를 남긴 채 행방이 묘연해지는 상황이 일어나자, 역시 마땅한 인물이 없는 관계로 사건은 쟈니의 손으로 넘어간다.

프랑스 출신 기업인 파스칼 소바주(존 말코비치)를 범인으로 확신한 쟈니는 인터폴 프랑스 지국의 로나 캠벨 형사(나탈리 임부루글리아)와 함께 그의 뒤를 쫓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서서히 밝혀지는 소바주의 음모. 알고 보니 영국 왕위 계승 후보였던 그는 여왕을 밀어내고 왕위에 오르려는 가공할 야심을 불태우는 중이었다. 한편 왕좌를 노리는 진짜 목적을 볼작시면 더 기가 막히다. 자신이 소유한 수백 개 교도소에 수감된 죄수들을 영국 땅에 풀어놓아 영국을 유럽과 격리된 거대한 감옥으로 만들겠다는 게 이 양반의 진짜 꿍꿍이였던 것. 아, 이런 어떤 황당무계한 야심... 영국인들이 오랜 맞수, 혹은 앙숙인 프랑스에 대해 가지고 있는 악감정을 그대로 드러내는 대목이긴 하지만 바다 건너 한반도의 관객이 바라보기에는 그야말로 뜬금없다. 다시 한 번 눈물이 흑흑.

어쨌든 욕실에서 오리 인형 가지고 노는 게 취미고, 국장 비서를 엉겁결에 독침으로 쓰러뜨리는 쟈니 잉글리쉬의 수사가 원활하게 이루어질 리는 만무하고, 결국 쟈니와 로나는 되려 소바주 일당에게 붙잡혀 성에 감금당하는 신세가 되고 만다. 자아 위기일발! 비록 자격 미달 낙하산 첩보원이지만, ‘프랑스 악당’의 손에서 나라를 구해낼 사람은 오직 쟈니 뿐이다. 짐작하기 어렵지 않은 대로, <쟈니 잉글리쉬>는 관객에게 친숙한 기존의 이미지들을 더없이 충실히 끌어온다. 주인공이 엄연히 다른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미스터 빈, 첩보원 되다> 쯤의 부제를 붙인다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음은 물론, 우왕좌왕 아비규환의 도가니 속에서도 어딘가 노련한 첩보물의 향기가 배어 나온다. 각본을 쓴 닐 퍼비스와 로버트 웨이드가 <007 언리미티드>의 각본가였다는 사실을 알고 보면, 이런 점들에 대해 납득하기 한층 쉬워질 것.

불만을 가질만한 부분도 적지 않다. 영국 영화의 가장 성공한 두 장르인 스파이물과 코미디를 결합한다는 야심으로부터 출발한 <쟈니 잉글리쉬>에서 사실 소위 ‘지적인’ 면모를 찾아보기는 힘들다. 특히 후반부의 마무리는 다분히 엉성한 느낌. 그러나 쉴새 없이 웃음이 터지게 한다는 당초 목표에 이 이상으로 충실하기는 쉽지 않아 보이며, 이는 영화의 만듦새보다는 아무래도 코미디언으로서의 로완 앳킨슨의 장악력에서 유래한다. 이 영화를 통해 성공적인 스크린 신고식을 치른 나탈리 임브루글리아는 < Torn >을 열창하던 시절의 청순함과 비교하자면 조금 늙었으되, 여전히 남성들의 애간장을 녹일 정도로 충분히 매력적이다. 흉내도 못 낼 프랑스어 악센트의 영어를 우아하게 구사하는 존 말코비치를 구경하는 것도 쏠쏠한 재미.

사족으로 아까 영국과 프랑스의 악감정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말 나온 김에 좀더 언급하고 넘어가기로 하자. 진한 키스를 영국에서 ‘프렌치 키스’라고 부른다는 건 이미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고... 프랑스에서는 동성애를 가리켜 ‘영국인들의 나쁜 버르장머리’라고 지칭한단다. 프랑스인들은 콘돔을 ‘영국 망토’라 부른다는데, 영국인들의 반격은 더 무섭다. 포르노 잡지를 글쎄 ‘프랑스 잡지’라고들 얘기한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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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jin4rang
미스터빈의 연기 최고   
2008-10-16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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