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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 F**k You!
25시 | 2003년 8월 16일 토요일 | 박우진 이메일

'Do the right thing'을 부르짖으며 미국 사회에 달려든 흑인 감독, 스파이크 리 식의 거침없는 정의론은 그의 신작 <25시>에서 언뜻 한풀 꺾인 것처럼 보인다. 비판의 대상이었던 주류, 백인 중산층 남성들을 주인공으로 갈등과 고민을 그리다보니 일방적인 비판이나 신랄한 독설을 티내어 퍼붓기란 애초부터 어렵다. 대신 영화는 그들 스스로 반성하도록 이끄는 아량(?)을 베푸는데 그러다 보니 내면 묘사가 섬세해지고-이건 상당부분 배우의 공이다!- 템포는 느려진다. 일각에서 ‘스파이크 리의 보수 성향’을 제기할 만도 하다. 이런 혐의는 9.11 테러로 거의 폐허가 된 뉴욕 시내를 내려다보는 감상적인 씬에서 절정에 달한다. 어쩌면 그것이 스스로가 ‘뉴요커’임을 공공연히 확언하는 감독의, 흑인이면서도 어쩔 수 없는 미국 시민으로서 정체성의 모순을 드러내는 ‘솔직함’일 수도 있다. 어쨌거나, 비판은 애증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닌가.

영화의 초반은 비통한 음악과 함께 다만 지친 걸음의 한 사내를 따라가며 꽤 오랫동안 ‘현재’에 머문다. 도대체 무엇이 그의 표정을 이렇게 굳히고 어깨를 누르는지 알려주지 않은 채 그의 절망과 불안을 목도하게 한다. 얼핏 아무렇지도 않은 풍경이지만 그가 마주칠 때마다 스파크처럼 일어나는 짧은 반복과 점프 컷은 평온한 시공간을 뒤흔들고 균열시킨다. 그러니까 그의 일상은 위기에 처해 있다. 걸음을 멈춘 어느 휴식 같은 순간, 사내의 손끝이 불러낸 플래쉬 백에 따르면 마약상인 그는 7년형을 언도 받고 내일이면 감옥에 들어갈 처지다.

그러니 그 사내, 몬티가 막막한 심정인 것은 당연하다. 게다가 ‘곱상한 백인의 얼굴’로 가서는 안 될 사회의 바깥, 감옥이라니. 그는 여성으로의 역할 전도와 약자에게 가해질 폭력을 두려워한다. 그 두려움을 달래려 화장실 거울에 대고 미국 내 타자들-흑인, 한국인, 러시아인 등-에게 질펀하게 욕이라도 한바탕 쏟아내지만, 결국 자신의 얼굴을 보고는 고개를 떨구고 만다. 뒤늦게 ‘내가 모든 걸 망쳤다’고 뇌까리지만 아무 것도 되돌릴 수 없고, 영화는 창백한 미국의 초상 같은 몬티의 현재에 불길한 레퀴엠을 울린다.

몬티의 과거 사생활에 그의 전형적인 백인 중산층 친구들, 9.11 직후 폐허가 된 황량한 뉴욕 풍경, 아메리칸 드림에 부푼 뉴욕 소수 민족의 얼굴들이 끼어 들면서 그를 감싸고 있는 불안은 더 이상 사적인 영역에 머물지 않는다. 그것이 미국 사회를 관통하는 기운이며, 징후라고 영화는 말한다. 돈과-펀드 매니저인 프랭크- 교양을-학교 선생님인 제이콥- 갖춘 멀쩡한 주류들까지 사실 어딘가 비뚤어져 있고, 가장 가까운 사람마저 의심하게 만드는-몬티는 애인 내추럴을 밀고자로 의심한다- 미국 사회에 대한 감독의 진단인 것이다.

마지막 순간에 던져지는, 난데없고 장황한 몬티의 미래/아버지의 희망은 ‘그런 일 없었다’로 여지없이 깨지며 서늘한 여운을 남긴다. 허무맹랑한 할리우드 식 해피엔딩을 비웃는 듯한 이 마지막 장면에 영화의 메마른 비관론이 농축되어 있다. 제목 ‘25시’는 이중적인 의미가 된다. 아직 오지 않은 시간으로서의 미래이며, 결코 오지 않을 시간으로서의 미래다. 영화가 주목하는 몬티의 ‘현재’는 사실 아직 오지 않았으며-미국은 아직 그런 곤경이나 반성에 이르지 않았다- 아버지가 주문을 외듯 읊조리는, 도망간 몬티의 지극히 평범하고 평온한 삶은 결코 오지 않을 것이다. 자신들에게 적대감을 드러냈던 백인 남자와 화해하듯 웃으며 스쳐 가는 타자들도 몽롱한 화면에 휩싸여 현실이 아닌, 일종의 판타지로 제시된다. 그들과의 관계에서 불거지는 문제와 화해는 결국 미국 사회에 내재한-거울에 욕을 하는 몬티- 상상에 불과하다. 애인을 의심하거나, 친구의 ‘끝’을 단정짓거나, 가장 절친한 친구라면 나를 때려달라고 말하는 백인 남자들의 ‘관계 어긋나기’가 더해지면서 영화는 미국 사회를 지탱해온 근본적이고 상상적인 관계들-편견이나 사랑, 우정과 같은 기본적 가치들에 기초한-의 허구성을 까발리고 가차없이 허물어뜨린다. 직설에서 은유로 화법을 바꾸면서 자못 유해진 첫인상을 만회하기라도 하듯, 혹은 그런 화법으로 더욱 강한 임팩트를 노린 것처럼 몬티의 앞날과 아메리칸 드림-소수자들의 것을 포함하여-을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넣는 결말은 곱씹을수록 비정하고, 미국 사회를 바라보는 감독의 시선은 이제 거의 체념에까지 이른 것 같다.

2 )
ejin4rang
스릴있다   
2008-10-16 09:49
js7keien
잡힐 듯 하면서도 잡히지 않는 신기루 같은 25시가 비단 뉴요커들에게만 해당 될까?   
2006-10-03 11:0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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