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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어
단순히 웃을 수만은 없는 뭔가가 꿈틀대다! | 2004년 4월 21일 수요일 | 심수진 기자 이메일

위급한(?) 순간에 절묘한 거짓말을 생각해 내는 두 라이어, 주진모와 공형진
위급한(?) 순간에 절묘한 거짓말을 생각해 내는 두 라이어, 주진모와 공형진
누군들 좋아서 거짓말을 하겠는가. 사기꾼은 먹고 살기 위해 남을 기만하는 것이고, 이순신 장군을 좀더 띄우기 위해 원균이 평가절하(?)됐던 것처럼 어떤 역사가들은 자기의 시각을 강력히 구축하기 위해 좋게 말하면 약간의 과장, 톡 까놓고 말하면 거짓말을 해댄다. 말하자면 거짓말을 하게 되는 상황이야 사람마다 천차만별이지만, 모두 자기 나름의 이유들이 줄줄이 버티고 있다는 말씀.

『거짓말 까발리기』의 저자 폴 에크만은 보통 사람들이 해대는 거짓말이 평균적으로 8분에 한 번 정도라고 주장하고 있기도 하니, 정말 놀랍기 짝이 없다. 뭐, 거짓말이 악덕이라는 교과서적인 얘기도, 지금 세상엔 지루하기 짝이 없게 들린다. 무조건 사실 그대로 얘기하는 것도 어떤 상황에선 도덕적으로 정당하게 여겨지는 일도 아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삶은 너무 복잡스럽다는 얘기다.

자, 그럼 영화 <라이어>의 주인공 ‘정만철(주진모)’은 왜 거짓말을 했느냐하는 본격적인 얘기로 들어가겠다. 왜냐면 그놈의 ‘양다리’ 때문이다. 잘생긴 외모 덕택에 학창시절부터 연예인 뺨치게 빠글빠글 팬클럽이 조성됐던 만철은 그를 죽자사자 쫓아다니던 ‘양명순(서영희)’과 결혼해 그럭저럭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다. 명순을 아끼고 사랑하는 녀석임은 분명한데, 섹시한 여자 ‘오정애(송선미)’를 만나 스파크가 일면서 그녀와도 동거 생활을 벌인다.

그다지 머리좋은 녀석은 아니지만, 완벽한 스케줄 관리로 두 여자를 감쪽같이 속인 채 살아가던 것이 어언 1년. 아무 일 없이 두 여자를 동시에 사랑하면서 순조롭게 살아간다면야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일은 기어코 터진다. 얼떨결에 현상수배범('신창원'을 슬쩍 패러디한 '신장원')을 잡게 되면서, 양다리가 발각될 위기에 처하게 된 것. ‘용감한 시민’을 취재하겠다며 몰려든 떼거지 기자들이 원인이었다.

만철은 우연히 그의 양다리 사실을 알게 된, 오랜 친구 ‘노상구(공형진)’와 함께 어떻게든 이 위기를 모면하려 하지만, 웬걸 거짓말 작업은 도무지 쉽게 정리되지 않는다. 이런 대략의 스토리를 가진 영화 <라이어>. 따지고 보면, 단 이틀 동안 일어난 일들을 명순의 집과 정애의 집 두 공간에서 압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이 영화는 가장 보편적인 전개 방식인 순차적인 시간 구조 속에서 절묘한 재미를 이끌어 냈다.

앞 상황과 뒷 상황이 재치있게 맞물리면서 유발되는 웃음들은 <라이어>만의 강력한 장점이 되고 있는데, 이는 화려한 비틀림없이 수수하게 전개하는 방식에서 더욱 빛을 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 이상 웃기지도 않는 과다한 욕설, 화장실 유머, 배우들의 슬랩스틱적인 개인기로 압박해 왔던 그동안의 적잖은 한국 코미디 영화를 떠올려 볼때, <라이어>가 놓인 유머의 지점은 분명 차별화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완벽히 부합되진 않아도, <라이어>는 ‘사람들을 웃기려 드는 사람들은 진지하게 보이려고 애를 쓰지만 실패하고 마는 사람들만큼 웃기지 않다’라는 코미디의 기본적인 원칙을 유쾌하게 되새겨 볼 수 있는 영화다. 우스꽝스런 모자를 쓴 사람은 웃기지 않는다. 그러나 자기가 우스꽝스러운 모자를 쓰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면 그 사람은 웃음거리가 된다는 말도 있지 않던가. 이 영화는 사건의 논리적 전개에 따라 내키지 않는 일을 해야만 하는 캐릭터에서 비롯되는 자연스런 웃음에 상당 부분 기대고 있다.

물론, 코믹 연기라면 두 세 가닥씩 주름을 잡고 있는 공형진, 임현식, 손현주와 같은 배우들은 순간순간 ‘연기’된 코믹 이미지로, 관객들의 웃음을 잡아채지만 말이다. 이런 부분을 좀더 파고들면, 거슬리는 부분도 몇몇 발견된다. 예를 들어 ‘박형사’로 분한 손현주가 ‘어루루루’ 식으로 말꼬리 독특하게 늘이기, ‘김기자’ 역할의 임현식이 예의 사람좋은 미소로 대머리 노출하기 등의 장면들은 한물간 유머의 방식을 답습하고 있기도 한 것(그래도 웃음이 피식 나오니, 그 배우들만이 지닌 강력한 매력이다!).

주진모의 저 느끼한(?) 표정에 주목해보시라~
주진모의 저 느끼한(?) 표정에 주목해보시라~
‘두 사람을 사랑할 순 없는 걸까’라는 자못 심각한 주제를 파고들 수도 있었겠지만, ‘거짓말’에 대한 화두로 똘똘 말려가는 <라이어>는 거짓말의 참담한 말로를 보여주며 ‘불륜남=나쁜 남자’의 공식으로 평범하게 결론을 지었다. 결국 모든 사실을 알게 된 두 여자는 만철 곁을 떠나고, 애쓴 보람(?)도 없이 만철은 백수 친구 상구와 함께 단칸방에서 라면이나 먹는 신세가 된다. 하지만 얼핏 평범해 보이는 <라이어>의 결말은 어쩌면, 거짓말로 왜곡할 필요없이 처음부터 진실을 말했다면, 두 여자가 어떤 반응을 보였을지를 생각할 수도 있다.

첫 코믹 연기에서 기대 이상의 매력을 보여준 주진모, 또 전작 <동갑내기 과외하기>만큼의 상큼한 맛은 없어도, 차분하게 퍼즐맞추듯 내용을 전개시켜 나가면서 노련한 운용의 묘미를 선보인 김경형 감독 등 즐길거리 적지 않았던 <라이어>. 그럼에도 이상한 섬뜩함이 필자에겐 더 깊이 파고들었다. 유머로 활용된 ‘게이’나 ‘복장도착자’ 등의 퀴어적인 부분 때문이다. 동성애에 대한 가장 상식적인(?) 편견에 사로잡힌 <라이어>의 캐릭터들은 보다 보면, 무척이나 신경쓰이는 무식한 발언과 행동들을 거침없이 쏟아낸다.

특히 못 볼 걸 본 것처럼, 동성애에 과도하게 반응하는 ‘박형사’, ‘양명순’의 캐릭터는 괴물보다 더 정떨어지는 일그러진 초상으로 느껴진다. 만약 표면그대로 동성애 부분을 다루고 있는 거라면, 이 영화는 상당히 불쾌한 영화다. 하지만 그 이면에서 편견에 사로잡힌 사람들을 꼬집는 거라면 시사하는 바가 큰 영화. 과연 <라이어>는 어느 쪽에 닿아있는 영화일까?

*연극 <라이어>와 비교해 보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보지 못한 관계로 언급하지 못했으니, 보신 분들은 명철한 평을 많이 많이 올려주시길.

3 )
ejin4rang
거짓말이 점점 커지네요   
2008-10-15 16:58
callyoungsin
거짓말이 거짓말을 낳는 계속 반복됨이ㅋㅋ   
2008-05-16 16:16
qsay11tem
아쉬움이 남아여   
2007-11-24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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