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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으리
집으로 가는 길 | 2002년 10월 5일 토요일 | 리뷰걸2 이메일

조금씩 단풍이 드는 나무들을 바라보니까 마음 한 구석에 스산한 바람이 부는 것처럼 왠지 가슴이 아려. 사랑이라는 감정을 잉태하고 비워내는 일이 유독 힘들면서도 그립게 느껴지는 가을이라 그런가. 그러면서 기억 속에 스친 한 편의 영화가 있어. 늦가을의 어느 날 순수했던 첫사랑을 기억하게 해준 영화, 그리고 어느 것보다 눈부셨던 19세의 장쯔이가 부러웠던 영화 <집으로 가는 길>. <와호장룡>에서 도도한 아름다움을 뽐냈던 그녀를 아직 보지 않았던 나였기에 더욱 그 순수함에 동요되었던 걸까. 이 영화가 데뷔작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사랑스럽고 순박한 시골소녀 ‘쟈오 디’ 그 자체인 장쯔이. 아직까지 그녀 최고의 영화는 <집으로 가는 길>이 아닐까 싶어.

시골에서 한평생을 교사로 지낸 아버지의 부음을 듣고 도시에 사는 아들은 장례준비를 위해 시골로 내려오지. 많은 사람들이 길을 걸어와야 하는 불편에도 불구하고 전통장례식을 고집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아들은 부임교사였던 아버지와 시골소녀였던 어머니의 사랑이야기를 떠올려. 그리고 건조한 다큐멘터리 같은 흑백화면으로 묘사되던 아들의 현재는 화려한 컬러로 탈바꿈하고, 영화는 어머니와 아버지의 사랑이 처음 시작된 과거, 순수하고 진실된 사람들이 살았던 진정 아름다웠던 시대에 대한 예찬을 시작하지.

낡은 베틀과 금이 간 사발, 먼지가 이는 길과 수수밭, 펑퍼짐한 솜바지까지 아름답게 보이게 하는 카메라는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작품처럼 소박한 아름다움을 돋보이게 하면서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지. 노란 단풍이 들었다 낙엽이 지고 눈이 내리며 계절에 따라 변하는 자연의 풍광은 중국의 4계절을 고스란히 가져다 놓은 한 폭의 풍경화가 되어 빼어난 영상미를 자랑해. 거기다 청순함의 극치인 장쯔이의 웃음과 몸짓은 그보다 더 아름다운 그림이 되어 관객들에게 ‘예쁘다’를 연발하게 하지.

이뿐인가. <집으로 가는 길>은 ‘처음’이라는 것의 소중함을 기억나게 해줘. ‘처음’은 수줍던 첫사랑을 더듬어가는 시간과 함께 잃어버린 순수와 사라진 전통을 의미해. 배움을 주는 교사를 존경하고, 희망을 간직하는 사람들의 모습과 함께 되살아나는 ‘디’의 사랑은 소박하고 순수한 첫사랑에 대한 한편의 시처럼 다가오고 이것이 내가 <집으로 가는 길>이 어떤 멜로 영화보다도 가장 첫사랑의 설레임을 잘 묘사한 영화라고 주장하는 이유야.

영화는 사랑에 빠진 디의 모습을 통해서 첫사랑의 애잔함을 고루고루 드러내. 사랑하는 이를 몰래 훔쳐보기 위해 먼 길을 돌아가고, 자신이 만든 버섯만두를 먹게 하기 위해 언덕을 뛰어다니다 그가 준 머리핀을 잃고 절망하는 디의 모습에서 누구라도 한번쯤 자신의 첫사랑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을 거야. 그 사람을 처음 만났을 때의 설레임. 사랑의 처음 시작. 그 모든 추억들의 처음. 그 처음이 떠올라 끝내는 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미소가 번지고 다시 한번 그런 사랑이 하고 싶어지게끔 만드는 영화. 누군가가 걸어올 그 길 위에서 끊임없이 기다리고 싶게끔 만드는 영화. <집으로 가는 길>은 그런 영화야.

개인적으로 장예모 감독의 작품을 많이 좋아하지만 특히 이 영화 <집으로 가는 길>은 그에 대한 나의 충성도를 더욱 높여준 작품이야. 그렇게 지나가버린 ‘처음’을 그리워하는 것은 장예모 감독만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을 만큼 깊이 공감할 수 있었거든. 물론 <집으로 가는 길>이 말하고 싶어하는 것에 대해서는 전통과 현대를 이어주는 길의 의미 혹은, 가난했지만 아름다웠던 과거에 대한 그리움이나 인간 본연의 아름다운 가치라는 등 다양한 해석이 있고 이 모두 다 맞는 말이라고 생각해. 그러나 난 무엇보다도 이 영화를 첫사랑의 아련함과 순수한 열정에 대한 영화라고 보고 싶어. 중국의 한 시골소녀가 머리핀을 잃고 울 때 나도 울먹이고 싶었다면 지나치게 감상적일까? 그렇다면 가을이니까 ‘가을 타는구나’ 하고 이해해줄 수 있겠지? 어떻게 보든 <집으로 가는 길>이 큰 기쁨이 될 것이라는 건 보증하니까 아직까지 안봤다면 어서 서두르길~

4 )
ejin4rang
정말 사랑스럽다   
2008-10-16 15:42
ldk209
정말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으리...   
2008-07-01 23:51
kangwondo77
리뷰 잘 봤어요..좋은 글 감사해요..   
2007-04-27 16:08
js7keien
장쯔이 최고의 수작   
2006-10-03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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