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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조기, 바람에 펄럭펄럭
룰스 오브 인게이지먼트 | 2003년 6월 14일 토요일 | 유령 이메일

<룰스 오브 인게이지먼트>는 멋진 영화다. 적어도 '영화 그 자체'로는. 관객들이 <태양의 눈물>이나 <위 워 솔저스> 류의 영화에서 기대해야 마땅할 스펙터클이나 <어퓨굿맨>같이 뒤집기 한판으로 마무리짓는 멋진 법정극은 아니지만 영화는 대신 다른 것을 선사한다. 영화의 주연인 사무엘 L. 잭슨과 토미 리 존스의 훌륭한 연기와 카리스마가 바로 그것. 여기에 조역인 가이 피어스도 한 몫 한다. 사무엘 L. 잭슨은 자부심 강하고 애국심 투철한 현역 군인 테리 칠더스 대령, 토미 리 존스는 내면에 회한을 지닌, 퇴역한 군 변호사 하지스 역에 아주 잘 어울리며(자기 제복에 침을 뱉은 시위자의 멱살을 잡는 칠더스 대령의 모습은 군인의 자부심 그 자체 아닌가!) <엑소시스트>와 <프렌치 커넥션>의 감독은 윌리엄 프레드킨의 연출도 괜찮다. 스펙터클은 없지만 지루함 없이 즐길 수 있는 영화임에는 틀림없다. 해병대에서 30년을 복무한 베테랑인 테리 칠더스 대령은 반미 시위에 휩쓸린 예멘 미 대사관의 대사와 그 가족을 구출하는 과정에서 무려 83명에 이르는 예멘 민간인을 사살하고 기소되자 그에게 생명을 빚진 월남전 상이용사 출신의 하지스에게 자신의 변호를 맡긴다. 이것이 영화의 개요인데, 사건의 진상을 더 알아보자.

예멘 주재 미 대사관에 수백의 군중이 몰려들어 반미 구호를 외치고 화염병과 돌을 투척한다. 또한 저격수들이 대사관 맞은 편 건물 옥상에서 대사관에 사격을 가하고 있다. 이에 미군이 예멘 대사와 그 가족을 구하기 위해 투입된다. 지휘관인 칠더스 대위는 얼른 성조기를 챙기고 대사와 그 가족을 헬기에 태워 피신시킨 뒤 저격수들에 의해 사상자가 발생하자 시위 군중에게 발포한다. 이에 83명의 사망자와 100여명의 부상자가 발생한다. 이 사건의 쟁점은 시위 군중이 무장상태였느냐는 것. 만약 시위 군중이 미군에게 총격을 가했다는 것이 입증된다면 칠더스는 정당방위로 불명예제대를 피할 수 있다. 그러나 유일한 증거인 현장 녹화 테이프는 보안위원회의 윌리엄 소컬이 태워버렸다. 윌리엄 소컬은 미 정부의 입장을 대변하는 인물로, 악화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칠더스를 희생양 삼으려 한다. 판결은 어떻게 될 것인가? 그와는 별개로, 칠더스는 유죄인가? 무죄인가?

개인적인 소견으로, 칠더스는 유죄판결을 받아 마땅하다. 정치적으로, 한 나라의 군대가 다른 나라의 민간인을 공격해 200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는 건 보통 문제가 아니다. 아무리 미국 정부가 힘이 세고 거리낄 것이 없다 해도 누군가는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한다. 그렇다면 현장에서 명령을 내린 지휘관이 책임을 피해갈 방도는 없다. 법을 공부한 적은 없지만 영화에서 칠더스 대령과 하지스는 민간인이 무장했다는 사실을 끝내 입증하지 못했기 때문에 법리적으로도 칠더스 대령의 유죄 판결은 당연한 것이 아닐까? 윌리엄 소컬이 테이프를 빼돌렸음을 하지스가 법정에서 폭로하긴 하지만 어쨌든 테이프가 나오지 않았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물론 테이프의 존재는 시위 군중들이 총기로 무장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데, 흥미로운 것은 칠더스가 시위 군중의 모습을 회상하는 장면이다. 칠더스의 회상에서는 모든 시위 군중, 하지스가 예멘에서 만난 다리 잃은 여자아이를 포함하여 시위대 대부분이 총을 들고 있는데, 앞의 시위 장면과 비교해 보면 칠더스의 기억은 분명 과장된 것이다. 칠더스의 기억은 부하들을 잃은 분노와 공포로 과장되어 있고, 그렇다면 시위대가 총을 들고 있었다는 사실 만으로는 칠더스의 정당방위를 인정할 수 없는 것 아닐까? 대한민국의 모 형사가 말하길 잡는데도 규칙이 있고 절차가 있다고 했는데, 쏘는 데는 그런게 없나? 공포와 분노에 사로잡혀 민간인들(무장했더라도!)을 상대로 전쟁을 벌인 것이 사건의 전말이라고 주장하면 지나친 말일까.

<룰스 오브 인게이지먼트>는 여러 면에서 흥미로운 영화지만 결말 부분으로 가면 갈수록 급격히 힘을 잃어간다. 마지막 장면에서 칠더스 재판의 증인으로 등장했던 베트공 출신의 빈리 카우 대령은 당당히 법정을 걸어나오는 칠더스 대령에게 경례를 붙이는데 그건 카우 대령이 재판에서도 하지스 앞에서 인정했듯 내가 그 상황이었더라도 너처럼 했을 것이며 너를 진짜 군인으로 인정한다는 뜻이다. 칠더스 대령은 월남전 때 카우 대령과 통신병을 포로로 잡았고 카우 대령을 협박하기 위해 한점의 주저함도 없이 통신병의 머리에 총을 쏜다. 그건 베트공들에게 퇴각 명령을 내려 위기에 처한 하지스를 구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카우 대령의 행동(경례)은 여러 면에서 충분히 생각해 봐야 할 문제지만, 영화의 맥락은 단 한 가지를 뜻한다. 영화가 칠더스 대령(단 한 점의 죄책감도 내비치지 않는)으로 상징되는 권위, 오만함, 자기 확신, 그리고 공포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는 것. 칠더스 대령이 목숨보다도 소중히 여기는 성조기가 바람에 힘차게 나부끼고 영화는 이에 경배를 바친다.

확실히 말씀드리건대 미선, 효순 양의 1주기를 맞이하여 이 글을 쓰기로 마음먹은 것은 아니다. 어쩌다 시기가 맞았던 것 뿐인데, 오래 전부터 이 영화를 텍스트 삼아 글을 써봐야겠다고 생각했었다. 영화를 영화 자체로만 봐야 된다는 목소리는 점점 높아지고 있다. '미국 만세'는 혐오스럽다는 주장과 영화는 하늘에서 떨어진게 아니라는 어느 영화잡지 기자의 한탄. 반면 그 나라 사람들의 입장에서 영화를 만드는 게 당연하며 영화는 영화로만 봐야 한다는 주장이 있어 서로 맞서고 있다. 이 문제가 공론화 될 수 있을 것인가? 확실한 것은 어느 편이든 텍스트에 대한 꼼꼼한 분석 없이는 설득력을 얻을 수 없다는 사실. 개인적으로는 이 영화를 보면서 미선, 효순 양 사건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두 미군 병사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는 점을 말해둔다.

2 )
ejin4rang
미국을 위한 영화   
2008-10-16 09:59
js7keien
미국의 나르시시즘을 재확인해주는 영화   
2006-10-03 14:1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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