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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 만세, 늙어도 죽지는 않는다 | 2004년 2월 7일 토요일 | 유령 이메일

<영웅본색 1, 2>에서 장국영의 형으로 출연했던 적룡은 젊은 시절 대단한 액션 배우였다. <영웅본색>, <취권 2>의 엄하고 자애로운 부형(父兄) 이미지에서는 찾아내기 어려운 힘과 야성이 젊은 시절의 그에게는 존재했다. 1960, 70년대에 찍은 그의 영화들 중 <13인의 무사>나 <복수>같은 작품들을 보면, 아주 잘 단련된, ‘너무 실한’ 육체를 가진 꽃미남인 그에게 침이라도 흘리지 않을 수 없으며, <영웅본색> 1편에서 주윤발이 그러했던 것처럼 비장하고 처참하게 죽어가는 모습엔 그만 숨이 막혀 버리고 만다.

우리 배우들 가운데서는 <순풍 산부인과>의 오지명이나 < TV 손자병법 >의 김희라(1980년대 이후 태어난 분들은 잘 모를 수도 있겠다) 등이 1960년대 한국 액션 영화계를 주름잡은, 날리던 액션 배우였다고 한다. 40여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으로서는 짐작도 할 수 없지만, 액션 배우 오지명! 머릿속에서 오지명의 액션 연기를 아무리 그려봐도, 그의 구수하고 익살맞으며 천진한 표정 밖에는 떠오르지 않는다.

<매디슨카운티의 다리>, <스페이스 카우보이>, <퍼펙트 월드>, <용서받지 못한 자>, <사선에서>, <미스틱 리버> 등등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감독하거나 출연했던 숱한 영화들 가운데서 내가 본 것은 달랑 세 편뿐이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건틀렛>(이하 건틀렛)과 <더티 하리>, 그리고 지금 얘기할 <블러드 워크>. 내가 생각해도 좀 너무한 것 같다. <건틀렛>과 <더티 하리>는 모두 케이블 TV를 통해서 보았고, 그 중 <더티 하리>를 본 건 바로 며칠 전이었다.

여기 <더티 하리>에 1971년, 지금으로부터 30년 전의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있다. 훤칠한 키에, 바늘로 찔러 봤자 피 한 방울 안나올 것임을 알리는 날카로운 눈빛이 매력적인데 지금의 그에게서 평소에 보이는 피곤해하면서도 뭔가 곤혹스러워하고, 탐구하는 듯한 그런 눈빛이 아니다. 게다가 머리에 새치 한 오라기도 없을 만큼, 놀랍도록 젊다.

이 영화에서 마치 그에게 폭행당한 것처럼 꾸며 주인공 캘러한을 궁지에 몰아넣었던 살인범은 아이들을 인질로 잡고 돈을 뜯어내려다, 상사의 명령을 무시하고 사건에 뛰어든 그에게 덜미를 잡히고 만다. 범인은 캘러한과 총격전을 벌이다 근처에서 한적하게 낚시를 하고 있던 꼬마를 붙잡는데, 총을 버리지 않으면 아이를 쏘겠다! 캘러한은, 다른 모든 영화에서 그렇듯 총을 버리는...척 하다! 재빨리 범인의 어깨를 쏜다.

내가 가진, 세계 최고의 매그넘 44는 절대 빗나가지 않는다! 범인과 잠시 수작을 주고받다 이윽고 그의 가슴에 한발. 물론 범인이 다시 총을 집으려 했지만. 무적의 신념, 냉혈함, 집념, 마초적 폭력성을 모두 지닌 형사 캘러한은 끝내 범인을 쏴 죽이고는 뒤돌아서 그 자리를 떠난다.

<블러드 워크>에서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FBI 수사관 맥칼렙을 연기하고, <더티 하리>에서 그러했듯 범죄의 중심에 있다. 하지만 백발이 성성한 그가 연쇄 살인범, 코드 킬러를 쫓다 심장마비로 쓰러진 다음부터 우리는 노쇠하고 병든 그의 모습을 보게 된다.

2년을 기다려 심장 이식수술을 받은 그는 자신에게 심장을 기증한 글로리아의 자매인 그라시엘라를 만나고 그녀의 부탁을 받아 글로리아의 살인범을 쫓게 되는데, 조금만 무리해도 몸에서 열이 나는 그가 쉬는 대신 수사를 하러 다닌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의사(안젤리카 휴스턴)는 그의 면전에 대고 “Shut up!"을 외친다.

그는 수사를 다니는 와중에도 의사의 강권으로 검진을 받느라 바쁜데다 자신의 등장을 달갑게 생각하지 않는 다른 경찰들의 등쌀에도 시달려야 한다. 맥칼렙의 허약함이 절정에 이르는 대목은 그가 공장으로 용의자를 찾아가는 장면이다. 건장한 용의자는 어린애 팔 비틀듯 그를 쓰러뜨린 다음 지갑을 빼앗고, 경찰 뱃지가 없는 것을 확인한 뒤 협박을 늘어놓는다. 총을 갖고 들어갔지만 아무 소용이 없으니, 늙고 허약한 맥칼렙은 고스란히 당할 수밖에 없다.

그래도 맥칼렙은 할 일, 하지 않을 일, 가리지 않는데, 영화가 절정부에 다다를수록 그는 점차 허약함에서 벗어난다. 직접 총을 들고 총격전을 벌이는데다, 그 나이에 달려오는 차를 피해 몇 바퀴 구르기까지 하고 의뢰인과 로맨스를 벌인다. 총격전까지는 그렇다 치고, 로맨스는 좀 무리하는 것 아닌지 싶은데. 어쨌든 (결말을 얘기하게 되어 면구스럽지만) 그는 끝내 범인의 가슴에 총알을 박아 넣고야 만다. <더티 하리>와 같은 결말이다. 악인은 ‘인간 사표’를 쓰게 된다.

<블러드 워크>를 못내 아쉽게 만드는 것들이 몇 가지 있다. 범인이 누구라고 말하지는 않겠지만, 영화 막바지에서 악명 높은 연쇄살인범, 코드 킬러의 정체를 드러내는 대목이 좀 허술하지 않나 싶은데, 대결 끝에 중상을 입은 범인은 맥칼렙 앞에서 내가 없으면 너도 없느니, 너와 나의 싸움은 선과 악의 대결이니 하는 뜬금없는 말들을 지껄인다.

그의 살인행각이 잔혹하긴 하지만 이런 말들은 무게도 없고 공허하기 짝이 없다. 영화의 설정대로 맥칼렙의 병든 몸이 그의 발목을 붙잡아야 되는데, 영화가 절정으로 다가가면서 앞서 말한 것처럼 그는 펄펄 날고, 설정의 힘은 점차 약해진다. 범인이 자신의 입으로 말했듯 자기가 가진 심장의 기증자, 그녀의 자매와 사랑에 빠진다는 것, 결과적으로 자신 때문에 피해자들이 살해되었다는 것도 그를 사로잡는 윤리적 굴레인데, 여기서 그는 너무 쉽게 벗어나는 것으로 보인다. 나중에 그라시엘라와 함께 유유히 요트를 타고 낚시를 즐기는 모습은 참.

그러나 이 모든 결점들에도 불구하고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는 즐거움을 준다. 적룡이나 오지명이 30년 전에 했던 일들, 그러나 지금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하지 않는 것들을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이 영화에서 변함없이 보여주고 있다.

다른 이들은 자신의 연륜과 경력에 걸맞는 역할을 찾아, 옛 관객들이 아닌 새 시대의 새로운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지만,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여전히 살인마, 악당, 관료적인 경찰에 맞서 싸우고, 쫓고, 쫓기며, 죽인다. 물론 이것이 그의 본령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기엔 그가 보여준 것들이 너무 많으니까. 단지 그 나이에도 이런 것을 보여줄 수 있는 배우와 동시대에 살고 있음은 행운으로 여기고 싶다. 더구나 그가 자신의 늙음을 충분히 깨닫고 있을 만큼 지혜롭기 때문에, <더티 하리>의 무지막지함은 <블러드 워크>에서 충분히 상쇄되고도 남는다.

자신이 지닌 모든 핸디캡을 무릅쓰도록 맥칼렙을 이끄는 것은 심장을 받았으므로 자신은 갚아야 한다는 소박한 의식이다. <건틀렛>에서 벤 샤클리가 수백의 경찰 병력에 둘러싸여 총알받이가 되는 것을 무릅쓰고 시청으로 질주하는 것도, 자신이 지지 않음을 보여주려는 단순한 의지에서 비롯된다. 그 소박함은 마초적 속성을 갖고 있긴 하지만, 이미 후카사쿠 긴지가, 1973년에 만든 <의리없는 전쟁>에서 이제 의리 따위는 개밥이라는 시대가 왔음을 갈파했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놀랍도록 기이하고 언뜻 언뜻 아름답기까지 하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노익장도 그렇고, 시대에서 이탈한 것의 아름다움이 보인다고나 할까.

2 )
ejin4rang
노익장의 연기최고   
2008-10-15 17:16
callyoungsin
죽지않는 노익장의 투혼   
2008-05-19 13:33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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