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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TRIX is over- ‘매트릭스 3 레볼루션’을 보고
이해경의 무비레터 | 2003년 11월 10일 월요일 | 이해경 이메일

'매트릭스 3 레볼루션' 포스터
'매트릭스 3 레볼루션' 포스터
<매트릭스>(시리즈를 뭉뚱그려 그냥 <매트릭스>라고 칭하겠습니다)가 마침내 막을 내렸습니다. 상영을 마치려면 한참 더 지나야겠지만, 영화를 이미 봐 버린 저에게는 다 끝난 셈입니다. 제작자 조엘 실버가, 더는 안 만들어질 거라고 못을 박았다지요. 괜히 해 보는 소리는 아닐 겁니다. 하지만 그 말이 나중에 헛소리가 되든 안 되든, <매트릭스>는 <매트릭스> 안에서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영화가 끝나고 불이 켜졌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그런 것이었습니다.

이번 <매트릭스>에서 제가 가장 감명 깊었던 장면은, 시온에서 벌어진 전투 중에 나옵니다. 정확히 말하면 전투가 벌어지기 직전에 나오네요. 전투 시퀀스 전체가 대체로 볼 만했지만, 저는 싸움이 시작되기 전에 이미 최고의 눈요기를 했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인간이 들어가 앉아 조종하는 전투 로봇 말이에요. 걔들이 떨치고 일어나는 장면의 스펙터클은 정말 압권이었습니다. 그 장면을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서라도 이 영화는 영화관에 가서 보시라는 말씀을 드릴 정도로 굉장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역으로, 제가 이 영화에 제대로 감동 받지 못했다는, 말을 바꾸면 영화가 저를 제대로 감동시키지 못했다는 증거이기도 하군요. <매트릭스>는 역시 <매트릭스>니까요. <매트릭스>를 보고 나서 기껏 그 정도 장면을 첫손에 꼽게 된다는 것은 김 새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액션 장면들만 놓고 따져도, 영화의 대미를 장식하는 네오와 스미스의 결투가 가장 인상에 남아야지요. 그래야 하지 않나요? <매트릭스>의 싸움은 역시 매트릭스에서 벌어지는 게 제 맛 아닌가요?

'매트릭스 3 레볼루션'의 중간 세계 모빌 애비뉴
'매트릭스 3 레볼루션'의 중간 세계 모빌 애비뉴
워쇼스키 형제가 판을 너무 크게 벌여놨습니다. 그 자체를 나무랄 수는 없는 일이지만, 키워놓은 판을 제대로 수습하지 못한 게 문제지요. 시온과 기계 도시 그리고 매트릭스… 어느 것 하나 만족스럽게 그려내지는 못했다는 인상입니다. 시각적인 면만 하더라도 그렇지요. 상대적으로 따지면 따라올 영화가 드뭅니다만, <매트릭스>를 보는 관객의 기대 수준은 이미 하늘을 치솟게 된 판 아닙니까? 결정적인 대목에서 한 방 먹이지 못하고 넘어가는 느낌이었습니다. 니오베와 모피어스 일행이 시온으로 돌아와서 센티넬 군단을 박멸하는 순간이 기대 이하로 싱거웠구요, 네오와 트리니티가 기계 도시의 방어를 뚫는 데 성공하는 순간도 뭔가 부족했습니다. 그 전에 두꺼운 구름 층을 뚫고 맑은 하늘로 치솟았던 순간이 중요했을 텐데요. 거기서 뭔가 더 강조되었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아쉬움이 남는 판에 트레인 맨이라는 새로운 존재가 주관하는 중간 세계까지 등장해서야…

<매트릭스>의 중심은 역시 매트릭스가 잡아줬어야 합니다. 시온은 그 자체로 잘 형상화된 공간이기는 하지만, 영화 전체를 위해서라면 시온에 들인 공의 반쯤은 매트릭스에 쏟아부었어야지요. 좀더 과격하게 말하면, 결과적으로 시온에 대해서는, 그런 게 있다, 그곳에서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고 말로 때우는 식으로 하고 넘어갔어도 괜찮지 않았을까요? 그게 절대로 시온을 푸대접하는 방식이 아니었을 텐데요. 앞서 말씀 드린 굉장한 스펙터클은 안 나왔어도 섭섭하지 않았을 겁니다. 안 나왔으면 몰랐을 테니까요. 그 대신 매트릭스라는 가상 현실을 살아가는 인간들, 그들이 결국은 몽땅 스미스로 복제되고 마는 중차대한 사건의 무대가 영화의 중심 공간이 되었어야 하는 게 아닌지요. 그리고, 기계 도시가 안 나올 수는 없겠는데, 그곳에서 배양되는 인간 배터리들을 카메라라는 기계마저 너무 홀대한 것은 아닌지요.

네오와 스미스의 마지막 결투
네오와 스미스의 마지막 결투
이 짧은 글에서 그 긴 <매트릭스>에 대한 얘기를 모두 할 수는 없겠습니다. 가장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한 가지만 말해 보도록 하지요. 다른 모든 영화처럼 <매트릭스>도 결말이 중요한데, 그걸 입에 담아서는 안 되겠죠. 영화가 진짜 막을 내린 뒤에 기회가 있다면 그것에 관해 말해 보고 싶습니다. 역시 중요한 의미가 담긴 결말이니까요. 하지만 저에게는 결말보다 결말 직전의 한 상황이 더 중요하게 다가오는군요. 네오와 스미스가 일전을 벌인다는 것쯤이야 <매트릭스>의 팬이라면 다 짐작을 하실 테고, 예고편을 통해서도 이미 알려져 있으니까 스포일러가 되는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겠습니다. 천지가 진동하는 싸움의 막바지에 스미스가 네오에게 묻습니다. 너 그렇게 얻어터지고도 포기하지 않고 엉겨붙는 이유가 뭐니? 자유? 아님 평화? 아님 사랑? 아님 그런 비슷한 거 또 뭐? 네오의 대답이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이번에는 스포일러의 위험을 무릅쓰고 밝히지 않을 수가 없네요. 네오가 말하기를, ‘선택’했기 때문이랍니다.

수긍이 갈 만도 한 대답이지요. 영화 전체를 통해서 ‘선택’은 중요한 화두이기도 하구요. 그런데 저는 그 대답을 듣는 순간 왜 맥이 탁 풀리는 기분이었을까요? 너무 뻔해서일까요? 아님 좀더 멋진 대답을 기대했기에? 글쎄요, 왜 그랬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다는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다만, 이건 아닌데… 차라리 스미스가 제시한 보기들 중에 하나를 선택할 것이지, 다 맞으면 다 맞다고 하든가, 그것도 싫으면 대답을 말든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는 겁니다. 그렇다고 그 순간에 네오가 말했어야 하는 정답을 제가 알고 있을 리도 없구요. 어쩌면 ‘선택’이 아주 틀리거나 나쁜 답은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십시오. ‘선택’에서 중요한 것은 언제나 무엇을 ‘선택’하느냐 아닙니까? 그러고 보니 제가 네오의 대답을 듣고 느낀 공허함은, 그가 선택한 것이 과연 무엇이냐는 데 대한 흐릿한 감각에 다름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4년 전에는 알 것 같았는데, 반년 전에 뭔가 더 있을 것 같아 미뤄놨다가, 이제 와서는 시온과 기계 도시와 매트릭스와 중간 세계를 바삐 오가는 가운데 어디선가 흘려 버린 것만 같은…

'매트릭스', 현실로 귀환하려는 트리니티
'매트릭스', 현실로 귀환하려는 트리니티
많은 이들이 <매트릭스>의 종교적이고 철학적인 면을 주목합니다. 저 또한 그런 면에 흥미를 느끼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 때문에 제가 <매트릭스>의 팬이 된 것은 아닙니다. 그런 거야 책을 읽으면 더 깊이 있는 앎을 얻을 수 있겠지요. 네오가 예수를 닮았다는 데 너무 얽매이면 누구보다 예수가 딱하다는 표정을 지을 것이고, 한문을 배우러 서당을 다니지도 않았을 워쇼스키 형제가 장자를 알면 얼마나 알겠습니까. 또 많은 이들이 <매트릭스>의 영화적인 새로움에 열광합니다. 저 또한 그 중의 한 사람이지만, 알고 보면 새로울 것도 없다는 의견에도 고개를 끄덕일 정도일 뿐입니다. 설령 에누리 없이 새롭다 해도, 저는 새로운 것을 그 자체로 좋아할 만큼 진취적이지 못합니다. 좀 엉뚱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저에게 <매트릭스>가 주는 매력의 포인트는 그 둘 사이의 적당한 타협이었습니다. 심오해 보이는 내용과 새로워 보이는 형식. 그 둘이 만나 빚어내는 절묘한 겉멋, 그 겉멋이 자아내는 이상한 절박함이었습니다. 저는 <매트릭스>가 처음에 보여줬던 가상 현실에서의 탈출, 네오와 트리니티와 모피어스가 전화를 찾아 달리거나 결국 전화를 못 받는 순간의 긴박감이 좋았고, 그 전에 빌딩 난간에서 무서워 떨다가 붙잡히고 마는 앤더슨에게 사로잡혔습니다.

역시 다 말할 여유는 없고, 한 가지만 더 예를 들겠습니다. 네오와 트리니티의 사랑 말입니다. 트리니티의 사랑으로 부활한 네오가 보여준 변모는 어떤 것이었습니까? 총알을 안 피했지요. 총알을 안 맞겠다고 허리를 뒤로 젖히며 요란을 떨지 않았지요. 그러자 총알들이 네오 앞에서 멈췄지요. 저는 그 순간이, 이 영화로서는 별로 특수한 효과를 부렸다고 할 수도 없는 그 장면이 가장 좋습니다. 거기서 저는 아무런 상징도 읽어낼 생각이 없습니다. ‘상징’이라는 고차원적인 미학적 용어는 저와 <매트릭스> 사이에 설 자리가 없습니다. 제가 <매트릭스>를 좋아하는 수준은 그렇게 유치합니다. 유치하게도 저는 <매트릭스>를 무엇보다 사랑의 영화로 봤고, 끝까지 그렇게 보고 있었습니다.

감독의 주안점은 달랐을까요? 네오와 트리니티는 계속 목숨 걸고 사랑하는 사이로 나오지만, 둘의 사랑에 집중하기에는, 혹은 둘이 사랑에 집중하기에는, 영화가 너무 많은 것들을, 너무 많은 사람들을 보여줍니다. 입체적이라기보다는 피상적으로. 단언하건대, 사랑이 가슴에 와 닿지 않고서는, <매트릭스>가 어떻게 끝난다 해도 찜찜한 구석이 남을 수밖에 없습니다. 저만 그렇다면 영화를 위해 나쁠 게 없지만 말입니다.

8 )
h6e2k
잘읽엇어여~   
2010-01-31 02:46
apfl529
좋은 글 감사~   
2009-09-21 18:32
qsay11tem
알찬 기사네요   
2007-11-27 14:02
kpop20
기사 잘 봤습니다   
2007-05-18 23:31
bjmaximus
<매트릭스 레볼루션> 내용적(특히 결말의 허탈함)으로나 액션(CG,특수효과)면에서나 모두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는.. 그나마 시온에서 인간 로봇 부대와 센티넬들과의 대규모 전투씬만 위안이었을 뿐..   
2007-02-27 14:01
js7keien
네오는 메시아이자 미륵인가?
힌두교와 조로아스터교도 엿보이는 종교종합선물세트!   
2006-10-08 22:45
khjhero
저두 콘스탄틴 무지 기대한다는...   
2005-02-02 16:50
imgold
아,,,무언가 섭섭한 기분은 어쩔수 없군요   
2005-02-01 2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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