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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바스 키에로스타미 감독의 밀물과 썰물:체리향기,텐
이영순 칼럼 from USA | 2005년 7월 18일 월요일 | 이영순, 영화 칼럼리스트 이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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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감동을 받고 즐거워하는 건 큰 사건이나 비싼 선물보다는 진심어린 작고 사소한 것들로부터 시작되는 것 같다. 이란감독 압바스 키에로스타미의 영화를 보며 든 생각이다. 압바스 키에로스타미 감독은 잔잔한 감동과 함께 그 재미를 던지는 재주가 탁월하다.

그의 영화를 보는 것은 영화라기보다 한편의 인간극장을 보는 기분이 든다. 그의 영화가 픽션과 다큐멘터리를 오가고 현란한 컴퓨터 그래픽 효과 대신에 느리고 소박한 디지털 카메라만을 사용해서도 그렇다. 더불어 그가 현장에서 픽업한 비전문적인 배우들이 일상에서 일어나는 작은 사건 속에서 시작부터 끝까지 충실하게 이야기를 꾸려가기에 관객은 사실이라고도 믿는다. 사람이 감동을 받는 것은 마음으로 어떤 것이 진심이라고 믿을 때이니까. 픽션이라는 점은 그 것이 모두 감독의 의도로 짜인 각본이라는 것이다.

그는 국제무대에서 상복이 많다. 로카르노영화제에서 받은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1987>등을 이어 <체리향기A Tast of cherry,1997>, <바람이 우리를 그곳으로 이끌 것이다. The Wind Will Carry us,1999>등은 깐느영화제에서 각기 상을 탔다. 이란의 대표감독으로 손꼽히는 그이지만 과연 그는 국제무대에서 상을 받을만한가에 대해서는 불명확하다. 그의 뛰어난 예술성은 인정되지만 누구나 디지털 카메라만 산다면 찍을 수 있는 영화기법이며 그가 이란감독이 아니었다면 어려워 보인다는 게 평론가들의 견해기도하다.

일부 그렇다고 해도 그의 영화는 이란브랜드 이전에 압바스 브랜드를 갖고 있다. 모든 것이 빠르게 변화고 변화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경쟁시대에 느리게 사는 법과 잃어버린 정서를 되돌려주는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촬영방식은 초당 24프레임으로 돌아가는 필름과 다르다. <체리향기>,처럼 차에 두 대의 디지털 카메라만을 부착하여 차안에서 찍어낸다. 화면이 느리고 장면변화도 제한되어 있기에 요즘 관객들로서는 지루하기 짝이 없기도 하다. 필름 값이 없어서도 아니고 촬영법을 몰라서도 아니다. 자신만의 방식을 고수하는 고집이다.

그 고집을 통해 그는 아주 골치 아픈 문제를 묻는다. 일면 보기에는 단순하고 소박한 줄거리와 장면이고 감동을 받지만 영화관을 나서는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가 왜 살아야 되는 걸까? 구지 살아야 되는 이유가 뭘까?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에서 ‘라마데자네 집이 어디에요'를 묻는 것과 <체리의 향기> 에서 '나를 묻어줄 수 있나요?'를 묻는 바디의 물음이며, 되묻다가 악에 받쳐서 최근작 <텐>에서는 '이 땅에서 이혼하려면 두들겨 맞거나 마약중독이여만 대'를 외친다. 분명한 것은 그는 그 화두를 던지기 위해 영상보다 줄거리를 통해 삶의 진실을 캐묻고 그 삶을 오늘도 힘겹게 살아가는 인간에 대해 따듯한 연민을 갖는 다는 것이다.

영화<체리향기>는 중년 남자 바디가 어떻게 하면 자살을 할까를 고민하는 영화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죽는 것도 참 쉽지 않구나 했다. 그는 단지 새벽 6시에 와서 묻어줄 사람을 찾는다. 그러느라 웬 종일 차를 몰고 인도 테헤란의 황무지 언덕길을 돌고 또 돈다. 제일 먼저 차에 태운 이는 지역 전쟁 때문에 이란으로 들어와 직업군인을 택한 소년 병사이다. 겁에 질린 소년병사는 언덕 아래로 도망쳐버리고 두 번째 만난 이는 코란을 공부하는 신학생이다. 코란을 근거로 신학생은 가버리고 바디는 드디어 자신을 묻어줄 노인을 만나게 된다. 바디는 노인을 박물관에 내려주기 위해 차를 돌리고 노인은 문득 체리이야기를 들려준다.

노인은 젊은 시절에 사는 게 너무 힘들어서 목을 매려고 체리나무에 올라갔다고 한다. 그러다 체리를 따먹었는데 너무 달콤해서 먹다 보니 인생이 환하게 느껴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도로 내려왔고 누구나 삶의 문제는 갖고 있지만 체리의 달콤함처럼 인생에는 달콤함도 있다는 말을 해준다. 영화에서 내내 보이는 황무지처럼 우리네의 인생은 끝없이 좁은 황무지 언덕길이 아닐까. 그 길은 주인공들의 대화들처럼 때로 단조롭거나 침묵이 이어진다. 아무리 불행한 인생이더라도 단 한번은 행복한 기억이 있을 것이다. 단 향내를 내는 체리향기를 맡던 그 때 말이다. 그 순간을 떠올리며 산다면 황무지 길이 고단하거나 지겹지 만은 않을 성 싶다.

<체리향기>가 중년사내의 자살 고민이라면 압바스 감독의 최근작인 은 이란중년여성의 고달픈 인생사를 열개의 세트에 담은 영화이다.

주인공은 한 번의 이혼경험이 있는 재혼녀이다. 그녀는 자가용 택시운전기사로 밤낮을 일한다. 그녀가 처음 태운 이는 열 살 사춘기 아들이며 타자마자 어머니에게 비난을 퍼붓는다. 비전문 배우지만 꽤나 연기를 실감나게 하고 똑똑하다. '당신은 내 엄마이고 나는 아직 미성년이에요. 미성년자인 나를 당연히 사랑해주고 돌볼 의무가 있는데 왜냐면 난 아직 어리니까. 그런데 엄마는 책임과 의무를 져버렸어요.' 운전대를 잡은 그녀도 만만치 않다. 난 너를 당연히 사랑하지만 그보다 먼저 나의 인생을 사랑해. 미안하지만 이게 진실이야.'라고 항변한다.

이제 아들은 내리고 그때부터 그녀의 옆 자리는 언니, 친구, 할머니에 매춘녀, 실연녀, 미망인 등의 손님이 탄다. 그녀들은 그 곳에서 고달픈 삶을 토로하거나 울먹인다. 어떤 이슈나 주장을 하는 것도 아니고 이란여성으로 제각각 사는 것이 고단하고 퍽퍽하다는 하소연이다. 그 하소연을 듣다 보면 ‘그래. 그렇지. 그럴 거야.’하는 연민이 생긴다. 이러한 자연스러운 마음은 실제처럼 묘사하는 컴퓨터그래픽 효과나 작위적인 시나리오 구조로 이끌어 내기에는 제약이 있다. 현실성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압바스의 영화가 픽션인 것은 의도적으로 주인공들에게 부여한 주제의식이다. 그의 영화에 주인공들은 어린이들부터 어른까지 각기 물음표를 갖고 다닌다. 사는 게지랄 맞은데 왜 살아야 되며 도무지 그 희망이 어디에 있냐는 물음표이다.

이 존재적 가치에 대한 물음은 사회 속에서 약하고 힘이 없는 어린이와 여성 그리고 실업자, 전쟁 난민 등을 통해 물어진다. 그 답은 관객인 우리가 갖고 있다고 압바스 감독은 말한다. 영화<체리향기>의 마지막 부분에 의도적으로 감독과 스텝들의 촬영장면을 넣으며 영화와 현실의 간극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장면들을 통해서 이다. 어떤 영화도 정치성을 배제 할 수 없다고 감독은 말한다.

이란에는 압바스 키에로스타미류 감독 류와 반대로 영상미를 강조하는 작가주의 영화감독들도 있다. 최근에 디지털 혁명과 인터넷배급을 주장하는 젊은 사미라 마흐발바프감독과 마리암 샤리아 등의 작가주의 영화감독들처럼 이란 영화들도 느리지만 변화의 새 물결을 타고 있다. 압바스 감독처럼 휴머니즘을 다룬 미니멀리즘 영화는 타흐미네 밀라니의 <두 여인 Two Women,1999>과 마리암 샤리아 감독의 <태양의 딸들 Daughters of the Sun,2004>,자파르 파나히 감독의<하얀 풍선 The white Ballon,1995)>, <거울 The Mirror,1998>,<순환 The circle,2000>,사미라 마흐말바프 감독의 <칠판,Black Boards>등이 있다.

이십년도 더된 압바스 키에로스타미 감독의 영화를 지금에서야 극장에서 보는 마당에, 아주 부지런해서 어쩌다 영화제에서나 만날 수 있는 저런 영화는 또 언제 볼까 싶지만 관객이 아우성을 해대야 그나마 흥행성과 상관없이 틀어주지 않을까한다.

90년대 이후 압바스 감독은 이전의 영화들과 표현기법과 던지는 화두는 같되 아이들의 세계에서 어른들의 세계로 이동했다. 제자인 자파르 파나히 감독도 초기데뷔작인 아이들을 다루는 영화인 <하얀 풍선>,<거울>에서 최근에는 <순환>처럼 어른들의 세계로 이동했다. 압바스 감독이 아이들의 세계를 떠나 <체리향기>와 <텐>으로 옮겨가며 동일한 존재적 질문을 던지듯이 말이다.

자파르 파나히 감독은 어느 인터뷰에서 그런 말을 했다. 자신의 영화 속 주인공들인 어린이들이 자라 이제 어른이 되었지만 갖고 있는 문제는 변화지 않았다고 말이다. 그게 그렇게 쉽게 변화됐으면 두 감독은 굶어 죽었을 것이다. 압바스 감독과 자파르 감독의 다음 행로가 궁금해진다. 아이들의 세계에서 어른들의 세계로 이동하는 동안 이전 영화에서 느끼던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미소와 웃음은 사라졌다. 남은 것은 사실 냉소적이고 고달픈 어른들의 세상이다.

하지만 내가 왜 사는가, 왜 죽지 않고 이곳에 존재해야 되는 가란 물음을 지루하게 ,유쾌하게, 단순하게 던지는 영화를 만나는 것도 쉽지 않다. 어느 순간은 그런 질문을 던지는 것조차 너무 무겁기 때문일까. 아니면 달콤한 체리향기는커녕 독약의 향기만 맡고 살아서 일까. 어느 쪽이든 어떤 향기든 맡고 싶은 날에 이들 영화를 본다면 가슴에 오래 남는 영화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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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fl529
좋은 글 감사~   
2009-09-21 18:24
qsay11tem
따분함이 밀려와여   
2007-11-25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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