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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 셀로판 I
이영순 칼럼 from USA | 2003년 3월 31일 월요일 | 이영순 이메일
‘속리산 행 표 한 장 주세요’
언제였지. 맞아. 대학 일 학년 때 엠티를 가던 날이었어. 고속버스 정류장의 조그만 창문너머로 너의 손이 나왔더랬지. 초등학교 동창인 날 먼저 알아본 건 너였고, 그 후에 널 보러 다시 갔지. 표 판매소 뒤에 딸린 비좁은 방에서야. 넌 싸 가지고 온 도시락을 꺼냈는데 반찬은 병에 담긴 신 김치랑 반찬 한 개 였지만 고맙게도 같이 먹자고 졸라댔잖아.

‘난 주연이 되고 싶어. 화려하게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며 그렇게 살 거야. 그러기 위해선 돈을 모을 거야. 사람들이 보는 건 내 손뿐이지만 언젠가는 내가 지나가면 모두 다 날 부러워하게 될 거야. 나 이 번에 돈 마저 모으면 코 수술할 거야‘ 배꽃처럼 환히 웃으며 말하던 너의 얼굴이 기억나.

‘모든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이름, 록시. 돈을 긁어모으는 여자는 록시. 난 유명인사가 될 거야. 모두가 알아주는 그런 사람 그들은 인정하게 될 거야. 내 눈 내 머리 내 가슴 내 코.‘

아카데미 수상식을 휩쓴 그 영화 <시카고>에서 여자주인공이 부르는 노래야. 되다 만 마릴린 몬로의 관능미랑 어설픈 샤론 스톤의 뇌쇄적인 이미지를 가진 르네 젤위거가 록시 하트란 여주인공으로 나와. 그래도 그녀의 귀여운 강아지 얼굴이랑 백치미는 따라갈 여자가 없는 걸. 아, 네가 좋아하는 섹시한 리차드 기어도 나오니까 혹 너도 봤을지 몰라. 화려한 꿈을 꾸는 르네 젤위거가 이 영화의 주인공이고, 나오다 말다 또 나오는 조연은 케서린 제타 존스란 영국태생의 배우야. 그녀가 이번에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받은 여자가 맞아.

<시카고>란 영화 재미있게 보았니. 좀 난해하지? 이런 영화가 아카데미상을 휩쓸다니 너 재미 없다고 이 영화 안 봤지? 근데 이 영화 말야. 난해해도 멋있어. 우리식으로 둘러친다면 각색한 현대판 춘향전에다 고려짝 춘향전 판소리를 고추장 넣고 각종 봄나물을 넣고 싹싹 비벼댄 화려하고 산뜻한 산채비빔밥 정식 같아.

춘향전보단 역사가 덜 되었지만 시작은 1926년 마우린 웻킨스란 어떤 시카고 리포터가 진짜 여 살인혐의자 스토리를 연극으로 만들고 부터야. 그때 다시 1927년 라는 무성영화로 만들어졌다가 나중에 1942년에 빈약한 르네 젤위거 저리 가라 할만큼 뇌쇄적이고 최고의 춤꾼인 진저 로저스가 나오는 <록시 하트(Roxie Hart)>로 만들어지고, 70년대 뮤지컬시대가 되면서 1975년 뮤지컬 <시카고>가 되어 1997년 후로는 브로드웨이 무대에도 서고 이제 상을 휩쓰는 뮤지컬영화가 된 거야.

이런 장황한 족보이야길 꺼내는 건 이 영화가 난해한 이유를 말해주려고 그래. 사실 몇년에 뭐가 만들어지든 가족 생일도 까먹는 판에 무슨 상관이겠니.

영화에선 판소리 타령대신 올 댓 재즈(All That Jazz)같은 이런저런 노래가
쉴새 없이 나와. 멋있지. 섹시하고 쿨하고. 만약에 현대판 춘향전과 고려짝 판소리가 한 영화에서 왔다갔다 한다면 이 영화도 뮤지컬 장면과 영화적인 장면이 교차하거든. 그래도 되는 건 우리는 춘향전을 졸면서 봐도 이몽룡이 나타나서 ‘암행어사 출두여~~!!’해도 아, 대충 끝날 판이네 하고 다 아는 것처럼 역사가 있는 뮤지컬이니 이리저리 새로운 기교를 부려도 먹히는 거야.

누가 쇼를 보냐고. <카바레>마냥 브로드웨이 쇼들도 할리우드처럼 매년 엄청난 돈을 벌고 많은 사람들이 쇼를 보고 신문의 영화란 옆엔 꼭 쇼 칼럼이 동생마냥 따라다니니까. 현대판 춘향전과 다른 건 줄창 급박한 빠르기인 추임새로 휙휙 장면이 지나가니까 한 눈 팔면 안되고 한 눈 못 팔만큼 화려한 볼거리를 제공한다는 거야. 쇼가 그렇잖니.

조금은 뮤지컬이란 형식이 낯설 거야. 재미없기도 하고. 근데 낯선 건 때로 익숙하기 전까진 지겹지만 잘 견디면 배로 즐거움을 느낄 수 있거든. 혹 네가 안 봤을 까봐 영화이야기를 꺼냈어. 이제 내가 꺼낼 본론은 이번에 여우조연상을 받은 캐서린 제타 존스야. 여우주연상을 받아 사진빵빵하게 찍히고 ‘전쟁통이지만 예술이 더 중요해요.‘하고 나타난 니콜 키드만이나 영화 주인공인 르네 젤위거가 아니고 말야.

영화처럼 캐서린 제타 존스의 인생도 할리우드에서 마이클 더글라스란 남편을 만나기 전까진 빛나는 조연 인생이였어. 할리우드에 도착하자마자 무작위로 스튜디오를 찾아다니며 써달라고 졸라대다가 뜨게 된 건 <마스크 오브 조로(1998)>거든. 올해 서른 중반인 그녀의 고향은 영국의 어느 시골인 작은 해변가 마을이야. 아버지는 사탕공장을 다녔고 줄곧 나름대로 고생하며 연기를 배웠지만 지금까지 약 서른 개의 작품 중에 10개는 TV 시리즈 물이거나 방송이고, 첫 시작도 TV 드라마 시리즈인 ‘Darling Buds of May(1991)'이구 그렇게 주연이고 히트했다는 영화는 손 꼽을 만 해.

그렇지만 그녀가 멋진 건 지금까지 <트래픽>처럼 작은 역이라도 노력하고 열심히 조연의 인생을 밟아온 여자여서야. 과거 탭댄싱 챔피언이란 경력도 영화 <시카고>에 유감없이 발휘되고 다리를 열심히 찢어대며 연기하는 모습이 주연만큼 화려하진 않았지만 인상적이었어. 아마도 이 번에 상을 받게 된 이유겠지. 그런 노력들이 섬세하고 우아하며 섹시한 열정을 가진 지금의 그녀를 만들고 르네 젤위거를 눌렀다고 봐. 조연은 주연의 뒤에 서있지만 빛이 나면 주연을 압도하거든. 야박해도 르네 젤위거는 죽써서 개 준 꼴이지. 이젠 완전히 떠서 주연이 되서는 2004년엔 남편과 함께 나란히 스릴러영화도 찍는다네. 조연은 나름대로 자신의 인생을 살아갈 때 빛이 나는 것 같아.

3 )
loop1434
재밌네요   
2010-04-03 12:59
apfl529
좋은 글 감사~   
2009-09-21 18:38
ldk209
르네 젤위거.....노래도 잘하네...   
2007-04-22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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