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분위기파악] 노래 부르는 배우!
2007년 3월 9일 금요일 | 유지이 이메일


롤플레잉 게임에서 ‘직업’이라는 단어는 현실보다 훨씬 구체적인 뜻을 가지고 있다. 캐릭터마다 특기가 수치적으로 구분이 되어야 하며, 겹치지 않을수록 잘 만든 게임이 될 수 있는 까닭에 게임 속 직업은 대개 현실보다 경계가 더 분명하다.

이를테면 현실에서는 완력이 강하고 머리도 좋은 사람이 (드물지만) 있을 수 있으며, 시샘은 받을지 모르지만 존재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롤플레잉 게임에서라면 (좀더 구체적으로는 여러 사람이 동시에 즐기는 〈리니지〉〈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라면) 양쪽을 동시에 겸비한 캐릭터가 나타나면 게임의 재미가 떨어지게 된다. 그래서 롤플레잉 게임의 ‘전사’란 지력은 보잘 것 없지만 완력이 강한 육박전 전문가로, ‘마법사’란 육체적 능력은 약하지만 지력이 강해 마법을 쓸 수 있는 원거리전 전문가로 직업이란 이름의 제한을 두기 마련이다. (물론 실제 게임은 이런 조건을 더욱 세분화해 여러가지 핸디캡을 두어 다양한 직업을 준비해 놓고 있다)

현실을 모사한 롤플레잉의 직업관을 실제와 맞추어보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다만 간단하게는 ‘가수’와 ‘배우’라는 연예인 직업과 비교해 볼 수는 있겠다. 한 쪽은 (간단하게 정의해서) 노래를 부르는 능력이 특별하게 발달한 직종이고, 다른 한 쪽은 허구의 인물을 그럴 듯하게 흉내내는 능력이 특별하게 발달한 직종이라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한 직업을 가진 사람이 다른 직업이 하는 영역을 노린다는 것은 제법 위험한 일이 될 수 있겠다.

과연, 과거를 기억해보면 수많은 사례를 찾을 수 있는 일이다. 아직도 심심치 않게 이휘재와 이정재의 진지한 가수 경력은 토크쇼 도마에 올라 몇 분 정도의 시간을 웃겨주지 않던가. 진지한 가수 시도는 아니었지만 신동엽은 전업 개그맨 시절 녹음한 캐롤 앨범을 들려주며 쟁반노래방을 진행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롤플레잉 게임이 아닌 현실이라면, 불가능한 임무는 아니다. 성공적으로 연기자와 가수의 영역을 아우르는 넘치는 재능의 소유자는, 분명 있다.

겸비가 당연했던, 전성기 시절의 홍콩

엄청난 인기로 아시아 일대를 석권했던 80년대와 90년대의 홍콩 영화계는, 이름 좀 있는 배우치고 가수가 아닌 경우가 드물었다. 한 두 번 쯤은 어떻게라도 앨범을 내곤 했던 홍콩 스타들의 패턴에 (당시 공산권으로 교류가 힘들었던 중국과 별개인 탓에) 적은 인구에서 스타를 양성하다 보니 그렇다던가, 아시아 일대의 넓은 시장을 익숙한 얼굴로 석권하기 위해서라는 등의 여러 가지 해석이 있었지만 많이 나온 만큼 실제 성공적으로 두 가지 역할을 해낸 스타들도 많았다. 많은 수가 한 두 장으로 잊혀지고 배우, 혹은 가수의 본류로 돌아갔지만 〈영웅본색〉의 대성공 이후 홍콩영화가 반드시 무술 실력을 겸비한 배우를 요구하지는 않게 되면서 가수의 재능을 가진 배우는 점차 자리를 잡았다. 최고조에 이르렀을 무렵 형성된 ‘4대 천왕’ 멤버들은 하나같이 가수와 배우를 성공적으로 오간 스타들이었다.

무술 실력으로 유명한 홍콩 배우는 대개 가수 경력과는 거리가 있었지만, 모두가 이소룡이나 이연걸 같았던 것은 아니다. 훌륭한 몸놀림과 무술 실력으로 유명한 성룡은 무엇보다 뛰어난 코미디언의 재능만큼이나 노래도 곧잘 부르는 스타였다. 앨범을 떠나 자신의 영화에서도 가끔씩 주제곡이나 삽입곡을 불렀고, 매우 유명한 〈황비홍〉의 주제곡 ‘남아당자강’같은 경우 두번째 편에서 성룡이 부른 버전은 널리 알려져 있다. 특히 80년대 홍콩 가수 겸 배우를 대표하던 알란 탐과 한 때 그룹사운드를 이루었던 것으로 나오는 〈용형호제〉같은 경우가 재미있다. 최근처럼 성룡 영화가 추석 극장가에서 시들해지기 전에는 한국에 들러 인터뷰를 하는 와중에 (절친한 친구라는) 조용필의 노래를 구성지게 부르는 성룡을 TV에서 보기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본격적으로 배우만큼이나 뛰어난 가수였던 이는 단연 장국영. 한동안 홍콩 발라드 가수의 표상이었던 장국영은 곱상한 외모로 〈영웅본색〉 시리즈를 통해 스타가 되었지만, 동시에 감정이 넘치고 무대를 장악하는 라이브와 앨범으로 홍콩 음악계를 대표하는 가수가 되었다. 알란 탐과는 한동안 불꽃 튀는 라이벌 관계로도 유명했던 사이. 이후 유덕화와 곽부성이 〈천장지구〉 시리즈로 미남 + 배우 + 가수 삼박자를 갖추며 인기 몰이를 할 때, 나중에 4대 천왕으로 합류한 장학우 역시 배우로 가진 스타성 보다는 가수로 가진 실력을 먼저 인정받았는데, 초창기 그에 대한 수식어가 “성룡의 외모와 장국영의 가창력”이었으니 장국영의 그림자는 작지 않은 셈.

물론 한국에는 개성 있는 외모를 가진 배우정도로 알려져 있어 훌륭한 가창력을 소유한 가수로서의 장학우가 피부에 덜 와닿기는 하나, 실제 장학우는 장국영 이후 가장 뛰어난 남성 가수 중 하나다. 활동 덕분에 오히려 한국어 싱글도 발표했고 한 때 정력적인 활동도 했으며, 한국에서 잘 알려진 〈유리의 성〉같은 영화에서 부드러운 목소리로 노래를 들려준 4대 천왕 마지막 주자 여명이 가수로서는 익숙할 듯. 이후로도 막문위나 진혜림 등 홍콩에서 가수로서 성공적인 경력을 쌓은 스타들을 한국에서 배우로 만난 경우는 적지 않았다. 특히 진혜림 버전의 〈Lover’s Concerto〉는 한 때 사라 본 버전만큼이나 인기를 끌었던 곡.


산업 구조 변화를 따라, 전문성으로

홍콩 영화가 시들해지고, 젊은 세대는 당연스레 외국곡을 들었던 시대를 지나 한국 가수와 영화가 한국 문화계를 장악하는 시기가 오며, 한국 영화계에도 변화가 있었다. 가수로 유명한 전영록이 액션 영화 시리즈 〈돌아이〉로 청춘 배우로도 등극한 시기가 한참 지나서, 홍콩 영화계에서 바톤을 넘겨받은 한국 연예계는 자주 겸업을 시도하곤 했다. 미남 스타로 틴에이져의 인기가 대단했던 이휘재나 이정재가 가수로서 앨범을 발표했던 것도, 당시로써는 트렌드의 일종이었다. 역시 배우로 이름을 알린 많은 청춘 스타들이 노래를 발표했고, 가수 데뷔도 했지만 트렌드는 홍콩 스타일에서 배우와 가수의 시장이 전문화 되어있는 미국식으로 변해갔고, 특별한 재능이 없이 가수를 겸업하기는 힘든 세계가 되었다.

배우와 가수를 겸업하여 대성공한 90년대의 예는 단연 김민종. 영화배우보다는 탤런트로 유명한 인물이지만, 손지창과 함께한 듀오 ‘더 블루’나 꽤 많은 솔로 앨범과 라이브에서 가수로서의 능력도 높이 인정받았다. 점점 얄팍한 노림수로 영화배우가 앨범을 내기는 힘든 시기가 되었지만, 이젠 댄스 여가수로 유명한 이정현도 장선우 감독의 〈꽃잎〉에서 가능성을 인정받은 배우였고 해외에서 주로 활동하는 안재욱도 영화배우와 탤런트로 경력을 쌓은 배우였다. 지금은 가수 활동을 접고 영화에 집중하고 있는 임창정은 90년대말과 2000년대 초반 연기력 좋은 성격파 배우와 가창력 있는 솔로 가수를 성공적으로 겸업한데다 재치있는 말솜씨와 유머로도 유명했던 대표적인 ‘만능 엔터테이너’였다. 최근 영화 〈복면달호〉를 만들기 전 주연을 캐스팅 하던 시점에서 가수 역할을 훌륭하게 소화할 수 있는 코미디 배우를 찾던 제작진이 염두에 두었던 배우 역시, 실제 영화의 주연을 맡은 차태현과 임창정.

극도의 전문화, 그러나 가수이고 싶다

서로 다른 영역에서 엄청난 재능들의 경쟁을 거쳐 메이져 반열에 오르는 미국 시장은, 쉽게 겸업이 힘든 연예계로 유명하다. 한 영역에서 이름을 알리기 위해 넘어야 할 산이 많은 미국 시장에서 가수와 배우를 겸업한 스타는, 스포츠에서 메이져리그와 NBA를 겸한 프로선수와도 비슷한 수준. 하지만 꼭 같은 것은 아니어서 미남가수 같은 경우 엄청난 인기를 타고 영화배우로도 명성을 쌓은 프랭크 시나트라 같은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다. 심지어 대스타 엘비스 프레슬리마저도 영화로 넘어가서는 기존 스타가수의 이미지를 벗지 못할 정도로 성공적인 겸업이 힘든 헐리웃이지만, 많은 대표작을 남긴 프랭크 시나트라나 성격파 배우이자 전설적인 가수이기도 한 바브라 스트라이센드, 이젠 배우보다는 가수로서 경력이 더 좋은 제니퍼 로페즈같은 극히 드문 예도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나 헐리웃 배우라고 반드시 노래를 못 부르는 것은 아니며, 때에 따라선 가수를 하고 싶은 경우도 있을 것이다. 이미 배우로서 입지를 다졌다면 아주 전설적인 가수는 되지 못할지라도 시도를 하고 싶지 않을 리 없다. 영화와 TV에서 미국 십대들의 아이콘이 된 린제이 로한이나 패리스 힐튼 같은 경우가 엄청난 인기를 타고 가수 데뷔를 하는 경우. 비슷한 틴에이져 스타인 힐러리 더프 같은 경우는 TV에서 인기를 얻어 영화도 찍었지만, 가수로서의 재능도 제법 인정받고 있는 경우다. 그대로 재능을 발전시키고 가수로 좋은 곡을 받아 집중했다면 틴에이져 스타 가수 시절의 브리트니 스피어스나 크리스티나 아길레라처럼 되었을지도 모르는 일. (둘 다 유명세는 TV에서 시작되었다)

메이져 가수가 아니라도 무대에 서고 싶었던, 혹은 자기 이름의 앨범을 내기 위해 진지한 가수 생활을 했던 배우들은 많다. 공포영화 〈나이트메어〉에서 단역으로 아르바이트 출연하기 전까지 록그룹 기타리스트로 활동해 가수 데뷔를 노리던 조니 뎁이 대표적인 경우. 지금이야 자신만의 영역이 확실한 배우가 되었지만, 영화배우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는 대표적인 경우가 바로 조니 뎁이다. 속도감 넘치고 재치있는 액션 영화 〈스피드〉로 스타덤에 오른 키애누 리브스도, 한창 시절 자신의 펑크 록밴드를 이끌고 다니며 공연을 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솜씨가 나쁘지 않은 왼손잡이 베이시스트라는 후문. 브루스 윌리스 같은 경우처럼 세 장의 정규 앨범을 낸 경우도 있다.

한 때 브루스 윌리스가 참여한 록그룹의 곡은 (브루스 윌리스의 유명세를 타고) 국내 라디오 프로그램에서도 곧잘 선곡하곤 하는 인기 메뉴였다. 실제 수준급 기타 실력과 보컬을 가지고 있는 잭 블랙은 자신의 솜씨를 〈스쿨 오브 락〉같은 영화에서 보여주기도 했을 뿐더러, 코미디 록그룹 〈테내시어스 D〉를 조직해 동명 영화 시리즈나 뮤직비디오에서 특유의 음악성을 유감없이 펼치는 것으로 유명하다. 원래 가수가 꿈이었다는 제이미 폭스는 오랜 고생 끝에 자신 이름의 쇼를 거쳐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딴 훌륭한 배우가 되었지만, 작년 그래미에서의 명공연으로 빼어난 가창력도 선보였다. 작년 최고의 곡 중 하나였던 카니예 웨스트의 〈골드 디거〉에서 흉내낸 레이 찰스의 목소리도 좋았지만, 그래미 시상식에서 벌어졌던 레이 찰스 추모공연에서 당대 최고의 여가수 중 하나인 알리시아 키스와 함께한 듀엣은 소름끼칠만큼 놀라운 목소리를 선보인 인구에 회자되는 공연 중 하나.

필요하면 부른다, 당신 재능의 일부

가수 타이틀에 그리 욕심이 있는 것 같지는 않지만, 가수 뺨치는 재능을 가지고 있는 경우도 있다. 뮤지컬 배우로 시작한 줄리 앤드류스의 노래 실력이야 〈사운드 오브 뮤직〉이나 〈메리 포핀스〉를 보지 않아도 될 일이지만, 뮤지컬에서 줄리 앤드류스가 맡았던 역을 영화판에서는 영화배우로 가진 지명도 때문에 빼앗아야 했던 오드리 햅번도 좋은 노래 실력을 〈문 리버〉등에서 선보였다.(비록 해당 작품이었던 〈마이 페어 레이디〉에서 자기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지는 못했지만) 색기 넘치는 대통령 생일 축하곡으로 관능적인 노래 솜씨를 선보인 마를린 먼로 역시 서부극 〈돌아오지 않는 강〉에서 가수 역을 손색없이 소화할 정도의 실력파.

헐리웃에서는 배우로 널리 알려졌지만 〈시카고〉를 통해 뮤지컬 배우 출신임을 각인시킨 캐서린 제타 존스나, 출중한 뮤지컬 경력을 가지고 있는 리처드 기어나 존 트라볼타의 재능은 이미 영화에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호주에서 유명한 뮤지컬 배우였던 휴 잭맨은 뮤지컬 애니메이션 〈해피피트〉에서 엘비스 프레슬리를 가볍게 흉내 낸 재치있는 노래를 통해 소문을 확인시켰다. 휴 잭맨과 〈해피피트〉에서 함께 했고, 뮤지컬 영화 〈물랑루즈〉에서 멋들어지게 뮤지컬 넘버를 소화한 니콜 키드먼 역시 영국 인기가수 로비 윌리엄스와 듀엣곡을 취입할 정도로 감정 깊은 목소리를 인정받는 경우.

혼자서 작은 애니메이션 하나 정도는 우습게 녹음한다는 목소리의 일인자 로빈 윌리엄스의 노래 실력은 이미 유명하다.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보여준 재치 있는 공연에서 디즈니 애니메이션 〈알라딘〉에 뮤지컬 넘버에 〈해피피트〉의 멋들어진 남미풍 ‘마이웨이’까지 공식적인 매체에서 로빈 윌리엄스의 흥미진진한 공연을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비틀즈 기념 앨범 등에 자주 가수와 함께 초대되어 노래를 부르곤 하는 재능 넘치는 배우. 비슷하게 스탠드업 코미디로 명성을 쌓은 짐 캐리 역시 〈마스크〉같은 영화에서 현란한 노래실력을 보여주었다. 역시 빌보드 싱글 차트에 기여한 곡이 올라간 정도의 실력자.

재치 있게 80년대 영국 보이밴드를 패러디하는 휴 그랜트와 드류 배리모어의 로맨틱 코미디 〈그 여자 작사 그 남자 작곡〉에서, 휴 그랜트가 연기하는 알렉스 플레처는 왕년을 풍미했던 가수다. 놀라운 것은 영화에서 수많은 노래를 실제로 부르는 휴 그랜드의 목소리가 나쁘지 않은 것. 아니 영화가 공공연하게 패러디하는 웸이나 토미 페이지 같은 80년대 유행하던 남자 가수의 목소리를 휴 그랜트는 그럴싸하게 불러낸다. 두 가지 재능을 가진 배우들, 과연 세상은 공평하지 않은 구석이 있다니까.

(총 35명 참여)
loop1434
만능   
2010-02-24 11:23
fatimayes
노래로 기억되는 영화도 있다   
2008-05-07 16:33
ymsm
영화보다 노래가 더 히트엿죠~   
2008-04-29 11:23
ejin4rang
신나는 노래와 음악   
2007-07-28 09:54
qsay11tem
노래 조아요   
2007-07-05 21:24
remon2053
영화에서 노래하는 연기 감동도 주고 웃음도 있는거 같아요   
2007-06-01 19:59
kpop20
노래도 연기의 일부   
2007-05-16 00:26
ldk209
드류 베리모어는 노래를 잘하는 건 아닌데... 오히려 투박한 게 좋네...   
2007-05-01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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