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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객> 보러 가기 전에 참고하자! 식당 밖 요리여행
2007년 11월 1일 목요일 | 유지이 기자 이메일


요리는, 혹은 맛집은 21세기 인터넷의 트렌드 중 하나가 되었다. 주부들이 TV를 차지하던 시간에 요리연구가를 모셔놓고 가정요리를 가르치던 프로그램과 시사주간지 부록으로 전국의 이름난 맛집을 소개하던 20세기형 요리 컨텐츠는 인터넷의 젊은 네트워크를 타고 새롭게 진화한다. 최소한 21세기에 요리는, 인터넷에 서식하는 젊은 네티즌의 주된 화제 중 하나다. 그리고 인터넷 트렌드의 한 끝에서 한국의 요리를 다루는 〈식객〉이 태어났다.

영화는 유명한 전통 한식집 〈운암정〉의 대를 잇는 요리사를 뽑는 자리에서 격돌한 성찬(김강우)과 봉주(임원희)의 대결로 시작한다. 막상막하의 실력을 보이지만, 봉주가 꾸민 야비한 계획에 의해 요리사의 길을 갈 수 없게 된 성찬이 5년 후 대령숙수의 칼을 걸고 다시 한 번 요리대회에 나서 봉주와 맞붙는 것이 영화 〈식객〉의 대략적인 이야기다.

원작의 매력을 차용한 영화적 각색

허영만 화백의 만화 원작 〈식객〉을 좋아하던 사람이라면 좀 심드렁해지기도 하겠다. 원작의 주된 이야기는 한국 요리에 대해 해박한 주인공 성찬이라는 청년의 생활 주변을 따라가며 맛깔 나는 음식을 소개하는 것에 최선을 다하기 때문이다. 분명 〈운암정〉이라는 음식점이 등장하고, 영화처럼 성찬이 후계자 강력 후보였던 것도 맞지만 만화의 주된 스토리라인이라기 보다는 야채장수가 어떻게 요리에 대해 해박한지에 대한 설명과 몇몇 극적인 에피소드를 끌어내기 위한 장치로 쓰인 성격이 짙다. 그러니 요리에 대한 소개에는 별 관심이 없는 영화 〈식객〉을 만화 〈식객〉과 비교하면 실망스러울 수 밖에.

하지만 〈식객〉은 스크린에서 개봉해야 하는 2시간 남짓 극영화가 아닌가. 원작의 이야기 구조를 따라갔다면 24부작 TV 다큐멘터리 정도는 되어야 했을 게다. 원작에서 극화할 수 있는 플롯을 뽑아낸 어쩔 수 없는 각색이라면 보기가 쉬워진다. 그러고 나면 영화 곳곳에 원작 팬이 즐길 만한 귀여운 설정이 숨어있다. 영화 초반 성찬과 봉주가 대결한 재료가 ‘황복’이라던가, 원작에서도 성찬과 봉주의 대결 소재로 쓰였던 (영화처럼 직접 도정까지 하지는 않았지만) 쇠고기가 비슷한 구도로 등장하는 장면에서 원작을 연상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원작처럼 유명 요리집 탐방에 집중하지는 않지만 칼국수로 유명한 충무로 사랑방 칼국수에서 선명하게 새겨진 그 집 메뉴를 배경으로 VJ 진수(이하나)가 성찬을 설득하는 장면에 이르면, 원작을 최대한 반영하려고 한 각색 의도가 새삼스럽게 느껴진다. 게다가 그 장면의 배경에는 손님으로 찾아온 허영만 화백이 (이전에 영화화되어 대성공한 〈타짜〉때처럼) 까메오로 앉아있다.

아쉽다면 영화의 하이라이트를 장식하는 성찬과 봉주의 요리 대결이다. 원작에서도 극적 긴장을 위해 성찬과 봉주의 대결을 집어 넣기는 했지만, 영화에서처럼 컨테스트 개념은 아니었다. 원작에서 두 라이벌 사이의 대결은 보다 자연스러운 상황에서 사실적으로 펼쳐졌다. 영화 속 요리 대결 묘사는 원작 〈식객〉과 가장 거리가 먼 부분이다.

요리 대결의 장

요리 재료를 던져주고 창의적이고 맛있는 요리를 만든 후 심사위원이 맛을 보고 점수를 매기는 형태의 컨테스트가 실제로 있기는 하다. 흔히 세계 3대 요리대회라고 불리는 독일, 룩셈부르크, 싱가포르 대회는 마치 스포츠 경기처럼 요리 솜씨로 승부를 겨룬다. 요리 재료를 대회 직전까지 비밀에 부치기 때문에 ‘블랙박스’ 대회라고 부르고 요리를 마친 후에는 세계적으로 명망 높은 요리사들이 심사위원으로 나서 직접 점수를 매긴다. 하지만 영화 〈식객〉에서처럼 요리를 먹으며 호들갑스러운 제스처를 취한다던가 장황한 감상을 늘어놓거나 안하무인격으로 소리를 지르지는 않는다. 이런 스타일은 실제 요리 대회를 취재한 결과라기 보다는 요리를 소재로 하는 일본 만화의 클리셰다.

일본에서 인기가 좋은 TV 요리 쇼를 만화 식으로 과장한 〈미스터 초밥왕〉의 세계에서 심사위원들은 하나같이 호들갑스럽다. 천재 요리사의 초밥을 먹고는 뒤쪽으로 전혀 다른 풍경이 그려지며 실신하다시피 한다. 만화의 극적 재미를 위해 엔터테인먼트 성격이 강한 일본 요리 프로그램을 극단적으로 과장한 결과다. 요리 만화의 유행을 따라 이후 히트작들이 〈미스터 초밥왕〉의 심사 스타일을 계승하면서 이는 일본 요리만화의 클리셰로 굳어간다. 중국으로 넘어가 요리마다 우주를 새로 그리는 〈요리왕 비룡〉이 만들어지는가 하면, 인도 사람 수만큼 많은 카레를 가지고 일본을 뒤집어 놓는 요리 활극 〈화려한 식탁〉같은 작품까지 호들갑 리액션은 확대 재생산 된다. 훨씬 사실적으로 요리에 접근하는 것으로 유명한 〈맛의 달인〉같은 만화를 보면, 일본 요리 배틀 만화가 얼마나 과장을 발전시켰는지 확인할 수 있다. 그 마지막에는 빵을 소재로 제빵사 사이의 요리 대결을 그린 〈따끈따끈 베이커리〉가 차지하고 있다. 이 만화는 요리 대결 만화의 호들갑 심사 클리셰를 패러디하고, 코미디 요소로 사용한다. 극단적으로 과장하고 프랑스에서 열리는 세계 제빵 대회에서는 심지어 삐에로를 심사위원으로 등장시키기도 한다.

비슷한 방식으로 요리 대결을 그렸지만 일본 만화의 영향력에서 자유로운 1995년 작 〈금옥만당〉은 포커스가 요리사에게 맞춰져 있다. 홍콩 신무협 말기에 만들어진 작품인 만큼, 홍콩 무협식 과장이 물씬 묻어난다. 심사위원의 평가는 잘 드러나지 않는 대신에 요리사 사이의 대결은 무협 영화 권법사들 사이의 대결을 보는 듯 하다. 이 영화에서 천재 요리사 용곤보 역을 맡은 이는 무술 대회 우승으로 두각을 나타낸 후, 이연걸이 떠난 〈황비홍〉의 네번째 영화부터 황비홍 역을 맡은 조문탁. 일본 요리 대결 만화가 사무라이 대결을 요리로 각색한 것이라는 평가를 많이 받는 것처럼 〈금옥만당〉의 요리 대결은 중국 무협의 각색이라는 평가를 흔하게 받는 편이다.

훨씬 강렬한 주성치 식 유머를 요리 대결에 도입한 〈식신〉이 파워에서는 한 수 위다. 마니아 층을 거느리고 있는 주성치의 작품인 만큼, 격렬하고 독특한 유머가 요리 대결이라는 소재를 훌륭한 코미디의 영역으로 끌어올린다. 다만, 너무 강한 주성치의 존재감 때문에 ‘요리’라는 소재가 가리는 것은, 주성치 영화가 가진 특징일 듯.

요리를 묘사하는 스크린의 능력

냄새 하나 나지 않고, 맛을 볼 수 없으면서도 요리를 너무나 맛있게 묘사하는 것이 요리 영화가 가진 매력이다. 지나치게 과장이 심하고 유머 역시 막나가는 감이 있는 〈금옥만당〉도, 청나라 최고의 요리라는 ‘만한전석’을 묘사하는 점에 있어서는 맛깔스러운 화려함이 압권이었다. 비슷한 시기에 중화요리라는 소재를 들고 나와 대결을 펼쳤던 〈북경반점〉과 〈신장개업〉은 둘 다 큰 흥행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지만, 면밀하게 중화요리를 연구하고 화면으로 옮긴 〈북경반점〉의 요리 장면이 훨씬 강한 인상으로 남아있다.

한국 고전 요리를 세상에 알린 〈대장금〉의 대성공 역시 화려하고 맛있게 묘사한 요리 덕분이 아니었나. 유럽에서 가장 형편없다고 알려진 영국 요리에 대한 생각을 바꾸어 놓았던 것도 탁월한 요리 프로그램 〈제이미의 부엌〉과 〈지옥의 부엌〉 덕분이 아니었나. 원작만큼 친철하고 여유있게 요리에 대해 설명해 주지는 않지만 〈식객〉에서 차려주는 한 상도 맛깔스럽게 식욕을 돋군다. 영화관에서 요리를 시키는 것도 제법 쓸만한 에피타이저가 된다.

2007년 11월 1일 목요일 | 글_유지이 기자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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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qdmsaksu
식객 보고싶었던 영화에요... ^^   
2007-11-02 02:09
ldk209
눈으로 맛보는 요리세계...   
2007-11-01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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